홍대 인디뮤지션의 성지, 25주년 롤링홀에는 젊은 아빠 '김천성'이 있었다

홍대 인디뮤지션의 성지, 25주년 롤링홀에는 젊은 아빠 '김천성'이 있었다

2020.01.29. 오후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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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인디뮤지션의 성지, 25주년 롤링홀에는 젊은 아빠 '김천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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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뉴스FM, 조현지입니다’]
■ 방송 : YTN라디오 FM 94.5 (12:20~14:00)
■ 진행 : 조현지 아나운서
■ 대담 : 김천성 롤링홀 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홍대 인디뮤지션의 성지, 25주년 롤링홀에는 젊은 아빠 '김천성'이 있었다





◇ 조현지 아나운서(이하 조현지)> 홍대 하면 떠오르는 것, 몇 가지가 있죠. 젊음과 예술, 그리고 라이브 클럽인데요. 세월의 풍파 속에 그 많던 라이브 클럽이 속속 문을 닫고, 홍대 거리 모습은 조금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홍대가 인디 음악의 1번지로 불리는 이유, 바로 이곳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뉴스FM 조현지입니다> 초대석, 오늘은 올해 25주년을 맞은 롤링홀, 김천성 대표와 함께 인디음악과 라이브홀에 관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 김천성 롤링홀 대표(이하 김천성)> 네, 안녕하세요. 롤링홀 대표 김천성입니다.

◇ 조현지> 제가 앞서서 스튜디오에 등장하시자마자 여쭤봤던 질문이기도 한데요. 대표님, 너무 젊으셔서 제가 깜짝 놀랐어요. 25주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래도 나이가 지긋하게 드시지 않으셨을까 생각을 했는데요.

◆ 김천성> 감사합니다.

◇ 조현지> 너무 젊으셔서요. 그만큼 아주 젊을 때, 일찍 롤링홀을 시작하셨다는 이야기겠죠?

◆ 김천성> 네, 20대 초반부터 했습니다.

◇ 조현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오늘 할 이야기가 정말 많으시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홍대 롤링홀은요. 가보지 않았어도 이름쯤은 누구에게나 익숙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고, 라이브 뮤지션들의 성지라고 불리는데요. 25주년, 이게 5주년, 10주년은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도 25주년은 길거든요.

◆ 김천성> 저도 이렇게 25주년이 될 줄 몰랐습니다.

◇ 조현지> 우선 고생 많으셨고,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 김천성> 감사합니다.

◇ 조현지> 저희 청취자 분들 중에서도 인디 음악 좋아하시는 분들은 홍대 라이브 클럽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계실 거예요. 제가 워낙 유명한 곳이라고 앞서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그게 뭐야? 하시는 분들도 분명 계실 수도 있어요. 롤링홀에 대한 소개를 직접 해주실까요?

◆ 김천성> 롤링홀은 원래 전신이 있어요. 신촌에서 1995년도에 라이브클럽 롤링스톤스라는 이름으로 시작했고요. 초창기에는 형과 함께 운영했고, 그러다가 제가 독립적으로 하면서 2004년도에 합정동 카페 골목 초입부, 이쪽으로 이전하면서 상호도 롤링홀로 바뀌었습니다.

◇ 조현지> 그 당시가 나이가 스물셋이셨다고요?

◆ 김천성> 네.

◇ 조현지> 어떤 포부였을까요?

◆ 김천성> 일단 저희 친형님이 원래 음악을 하셨고, 저도 고등학교 때 밴드부를 했었어요. 음악을 자연스럽게 좋아했는데, 글쎄요. 이게 운명인지 한 번 형 공연 보러 갔다가 그것을 바로 해버리게 됐네요.

◇ 조현지> 지금 25년간 정말 많은 뮤지션들이 이 롤링홀을 거쳐 갔을 거고, 대표님과 또 인연을 맺었을 텐데요. 기억에 남는 뮤지션들, 어떤 가수들이 있죠?

◆ 김천성>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선배님들로 치면 시나위 선배님들, 블랙홀, 블랙신드롬, H2O, YB,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트랜스픽션, 최근에는 윤딴딴부터 해서 프롬, 1415, 젊은 친구들까지 너무 많은 추억들이 있습니다.

◇ 조현지> 얘기만 들어도 우리 한국 가요, 인디 가요에 있어서 역사를 대표님을 통해서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공연장을 운영해야겠다고 결심하셨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음악을 또 좋아하신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 같아요. 음악 사랑이 어떨지 너무 궁금한데요. 어떤 장르를 가장 좋아하세요?

◆ 김천성> 한때는 하드록을 많이 좋아했어요. 헤비메탈도 즐겨 들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음악장르는 가리지 않아요. 다양한 음악을 듣고 있고, 힙합만 제가 조금 어려워서, 이 부분만 힘들지, 다른 장르들은 다 듣고 있습니다.

◇ 조현지> 역시나 그렇군요. 라이브 클럽이다 보니까 물론 말씀하신 유명 뮤지션들의 콘서트나 이런 공연들도 하지만, 작은 공연이라고 해야 할까요? 신인 뮤지션들, 혹은 이제 막 인지도를 얻어야 하는 그런 친구들도 공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어떻게 무대 운영을 하세요?

◆ 김천성> 일단 저희가 무명의 아티스트 음원을 듣고 캐스팅하는 경우도 있고요. 작은 클럽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캐스팅하는 경우도 있고, 오늘 같은 경우도 저희 공연장에서 오디션이 있거든요. 이런 부분들, 세 가지 방식으로 보통 캐스팅이 진행됩니다.

◇ 조현지> 이 공연을 통해서 더 큰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텐데요. 사실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대표님은 홍대 라이브 클럽 1세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변천사를 다 보신 분인데요. 홍대가 일단은 정말 거리 모습만 봐도 예전과는 많이 변했어요. 예전하고 비교하면 조금 어떨까요?

◆ 김천성> 일단은 예전에 90년대 홍대라고 하면, 음악과 미술, 이렇게 표현이 됐다면요. 지금은 저도 많이 복잡해요, 요즘에는. 당시 라이브 클럽들도 일반음식점 허가를 내고 운영했었는데, 그 당시에는 1인 이상이 연주하면, 우리나라 법령이 그랬던 것 같아요. 불법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적발돼서 수갑을 찬 적도 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일이죠. 지금은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황당한 법이었던 거예요. 그때 유명 뮤지션부터 홍대에서 활동하는 라이브 클럽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까지 라이브 클럽 다른 대표님들하고 합법화 공연을 진행했었고요. 1년 동안 준비해서 2000년도에 라이브 클럽 합법화를 이뤄내기도 했어요.

◇ 조현지>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이런 라이브 클럽의 공연 문화가 그 당시에는 불법이었다는 거잖아요?

◆ 김천성> 그렇죠. 1인 이상은 안 되는 경우였어요.

◇ 조현지> 그렇군요. 그리고 또 클럽 하면 지금 청취자 분들 중에서도 “클럽이 뭐죠, ‘구락부’ 같은 곳인가요?”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분도 계시는데요. 춤추는 곳, 이렇게 떠올리는 분도 많을 것 같아요. 춤추는 클럽이 지금도 홍대에 있습니다만, 90년대에 엄청 유행했었잖아요?

◆ 김천성> 그렇죠. 예전에는 홍대에서 클럽이라고 하면 라이브 클럽이 먼저 생각났었어요. 그런데 2000년대 초반에 댄스클럽도 하나의 저는 문화 콘텐츠고, 어떻게 보면 문화의 한 장르라고 보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너무 많이 생기다 보니까 거기서도 또 사고도 많이 일어나다 보니 클럽이라는 게 좋은 건데 안 좋게 비춰지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당연히 라이브 클럽들도 안 좋게 이미지가 되는 경우도 있었고요. 지금은 어떻게 보면 라이브 클럽들이 많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또 많이 생기기도 했어요.

◇ 조현지> 인디 음악의 황금기라고 하면 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이렇게 본다고들 하는데요. 25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언더그라운드, 인디 씬, 사실 인디가 맞나 싶을 정도의 인디 뮤지션들도 요즘은 있기는 있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또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공연을 하는 친구들도 많은데요. 어떻게 달라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 김천성> 이제 공연장이나 이런 환경들을 보면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들은 굉장히 많이 좋아졌어요. 음악 시스템도 많이 좋아졌고, 공간도 굉장히 많이 생겼어요. 소극장도 많이 생기고 해서 음악적인 면으로 보면 90년대 중반, 2000년대 초반에 있었던 헤비메탈이나 하드록, 이런 쪽이 강세였다고 하면, 요즘은 어쿠스틱이나 팝, 이런 쪽이 강세이기는 하죠. 시장은 확장되었지만, 장르의 편식은 심해진 편이에요. 록이나 메탈, 펑크를 하는 친구들이 설 무대가 많이 사라진 것도 사실이고요. 언더그라운드 씬, 인디 씬이라고 표현을 하죠. 신선함도 많이 사라진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다 함께 고민을 많이 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 조현지> 맞아요. 지금도 인디 음악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말씀하신 것처럼 어쿠스틱, 기타에 잔잔한 노래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는 하거든요. 그리고 25년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라고 제가 계속 말씀드렸던 이유가 사실 홍대에 여러 라이브 클럽들이 재정난으로 문을 많이 닫았습니다. 지금에서야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그런 소극장들도 많이 생기고 했지만, 인디 음악 자체가 비주류에 속하기 때문에 이런 라이브 공연장의 운영이 쉽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 김천성> 네, 맞습니다.

◇ 조현지> 그동안 어떠셨어요?

◆ 김천성> 많이 힘든 것은 사실이고요. 그런데 그게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었고요. 저는 25년 동안 이것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관객 분들이 많이 오시면 도움은 많이 됩니다. 그런데 그게 해결될 수는 없다고 저는 보고 있고요. 현실적인 문제고요. 케이팝 시장, 세계적으로 지금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데, 저는 비주류 음악에 대한 투자도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많아진다면 저는 세계적인 음악 시장? 케이팝 시장이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음악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 조현지> 그렇죠. 저도 가끔 그런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보다 보면, 요즘은 트로트 장르도 있고, 다양하잖아요. 한국 사람만큼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케이팝이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대형 기획사에서 기획을 해서 키우는 그런 대형 가수들뿐만 아니라 인디 씬도 정말 세계적인 케이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어려웠던 운영의 순간들 중에서 큰 불이 나서 문 닫을 뻔한 적이 있었다면서요?

◆ 김천성> 그런 적이 한 번 있었고요. 쉬는 날이었는데 2000년인 것 같아요. 하루 사이에 잿더미가 된 상황이었고요. 그때 생각하면 힘들기도 했지만, 저한테 어떻게 보면 전환점이었던 같아요. 그때 어떤 일이 있었냐면, 아티스트들이 롤링홀 살리기 운동, 정말 이런 공연을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노 개런티, 수익금 전액은 롤링홀 재건하자고 해서 그 당시에 시나위 선배도 했었고, 체리필터, 크라잉넛, 긱스, 출연했던 아티스트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때 저한테는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 조현지> 그때 발목을 잡히신 게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해보는데요. 뮤지션들이 불에 탄 공연장을 살리기 위해서 그런 공연을 기획하고, 모두 합심했다는 스토리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그런 느낌도 드는데요. 그때 왠지 결심을 하셨을 것 같기도 해요, 내가 이것을 계속해야겠다!

◆ 김천성> 그때 저희가 롤링스톤스를 운영할 때 공연장 출입구 쪽에 당일 출연하는 라인업을 적는 란이 있었어요. 수많은 뮤지션들이 그때 응원 메시지를 남겨놓고 했는데요. 빈 공간이 없었어요. 그때 YB에서 베이스 치는 태희 형이 진짜 너무 멋진 글을 남겨 주셨는데요. “너희는 꼭 다시 해야 돼,” 이 이야기가 저한테는 많이 와 닿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이건 내 팔자구나, 이거는 절대 그만둘 수 없겠다, 이런 생각도 했었죠.

◇ 조현지> 그거는 본인 혼자 계실 때는 그럴 수 있는데, 오늘 방송국에 아내 분도 함께 오셨어요. 가족들은 그때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 김천성> 늘 고마운 분이죠. 저를 많이 이해해주는 분이고.

◇ 조현지> 쑥스러워하시는데 방송 통해서 마음 한 번 표현해보세요.

◆ 김천성> 정말 저한테는 멋진 파트너이면서 늘 미안한 사람이에요. 그냥 그것으로 저는 다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늘 미안한 사람.

◇ 조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을 응원하고 남편을 응원하니까 오늘도 이렇게 함께 해주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얘기를 쭉 듣다 보니까 롤링홀이 25주년을 맞은 게 대표님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내가 롤링홀을 이렇게까지 이끌어오고 있다, 하고 자부심을 느낀 순간들도 있었을까요?

◆ 김천성> 네, 있죠. 뮤지션들은 저한테 대표님이라고는 잘 안 하고요. 형이나, 저도 아티스트들과 형, 동생 관계로 지내고 있는데요. 상담을 해올 때가 그런 게 있어요. 형, 저는 어디에 캐스팅이 들어왔는데 전속 계약을 몇 년을 하는 게 좋고, 이런 부분은 아무래도 뮤지션이다 보니까 잘 모르는 부분들이 많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제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거. 그리고 이 친구들이 음악을 그만두려고 할 때 찾아와서 상담하고, 개인적으로는 제가 사비 내서 음반을 내준 적도 있고요. 저는 음악하는 뮤지션들한테는 저는 특별한 존재는 아니에요. 똑같이 상생할 수 있는 동반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조현지> 대표님은 그렇게 이야기하시는데 뮤지션들한테 이야기 들어보면 아버지 같은 존재다,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하는데요?

◆ 김천성> 저 아직 젊습니다.

◇ 조현지> 아직 아버지라기엔 많이 젊은 분이기는 합니다. 꿈이 분명 20대에 롤링홀을 인수하면서 있으셨을 것 같아요. 그때 꿈을 지금 생각해보면 어떠세요?

◆ 김천성> 저는 꿈을 이룬 것도 있어요. 이룬 게 있다고 하면 현재 롤링홀을 하고 있는 게 꿈을 이룬 것 같아요. 아직 이루지 못한 게 있다고 하면 임대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공연장이 되지 못했다고 하는 거? 그거는 아직 이뤄야 할 숙제일 것 같아요.

◇ 조현지> 지금 롤링홀 개관 25주년 기념 공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게 4월까지 계속되는 거죠. 라인업이 역대급이라고 했는데, 몇몇 소개를 좀 해주세요.

◆ 김천성> 100여 팀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볼 빨간 사춘기, YB, 체리필터, 적재, 노브레인, 크라잉넛, 조문근 밴드,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한 거예요, 저한테는.

◇ 조현지> 그 뮤지션들도 이런 무대가 있어야 앞으로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런 멍석을 깔아주는 역할을 우리 대표님이 해주시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앞으로 10년 뒤를 상상해보신 적이 있으세요?

◆ 김천성> 늘 상상을 많이 합니다.

◇ 조현지> 어떤 모습일까요?

◆ 김천성> 저는 10년 뒤면 벌써 35주년이 되어 있겠네요. 좋은 시설하고 뮤지션들의 꿈의 공연장을 해보고 싶어요. 특별한 공연장을 해보고 싶어요. 한 달에 공연을 한 번만 하더라도 검증된 뮤지션들만 무대에 설 수 있는 약간 프라이빗한 공연장을 해보고 싶습니다.

◇ 조현지> 네, 그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저도 함께 기원하겠습니다. 오늘의 초대석, 홍대 롤링홀 김천성 대표와 함께했습니다. 대표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김천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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