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혐오는 몰라서 생기는 공포일 뿐, 미얀마 카렌족 만나고 온 가수 호란”

“난민혐오는 몰라서 생기는 공포일 뿐, 미얀마 카렌족 만나고 온 가수 호란”

2019.11.09. 오후 9:03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난민혐오는 몰라서 생기는 공포일 뿐, 미얀마 카렌족 만나고 온 가수 호란”
AD
[열린라디오 YTN]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방송일 : 2019년 11월 9일 (토요일)
■ 진행 : 김양원 PD
■ 대담 : 가수 호란, 신혜인 유엔 난민기구 공보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난민혐오는 몰라서 생기는 공포일 뿐, 미얀마 카렌족 만나고 온 가수 호란”





◇ 김양원 PD(이하 김양원)>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지구촌의 또 다른 우리 이웃, 난민 이야기. 오늘은 특별한 손님과 함께합니다. 가수 호란 씨 나오셨는데요. 안녕하세요?

◆ 가수 호란(이하 호란)> 안녕하세요.

◇ 김양원> 이 코너 늘 함께하는 분입니다. 유엔 난민기구의 신혜인 공보관도 함께 자리하셨습니다.

◆ 신혜인 유엔 난민기구 공보관(이하 신혜인)> 네, 안녕하세요.

◇ 김양원> 먼저 호란 씨. 오랜만에 방송에서 뵙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입니다.

◆ 호란> 제가 라디오 출연 자체가 3년 만인 것 같아요.

◇ 김양원> 어떻게 지내셨어요?

◆ 호란> 그냥 지냈어요. 공연도 소소하게 하고 하면서 얼마 전에 중요한 일이 있었죠.

◇ 김양원> 오늘 그 중요한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주실 건가요?

◆ 호란> 네, 그러려고 나왔습니다. 아직 3주도 안 됐어요. 태국에 다녀왔거든요. 2박3일의 짧은 일정으로 태국에 있는 멜라캠프, 태국에 있는 최대의 난민캠프라고 하는 멜라캠프에 다녀왔습니다.

◇ 김양원> 여기가 태국 최대의 난민캠프군요.

◆ 신혜인> 여기에만 3만 5000명 정도, 주로 카렌족 난민들이 살고 있는 그런 곳입니다.

◇ 김양원> 카렌족이면 미얀마의 난민들인데요. 카렌족이 거주하고 있는 태국 최대의 난민캠프에 다녀오신 거군요. 어떠셨어요?

◆ 호란> 생각했던 것과 되게 다르더라고요. 사실 저는 난민캠프라는 자체를 처음 가봤고,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난민이라는 사람들과 직접적인 접촉을 해본 것이 처음인 것 같아요. 엄밀히 말하면 두 번째이기는 한데, 처음 만났을 때는 우리나라에 계시는 난민 분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는 그냥 인사만 나눈 정도라고 해야 하나요?

◇ 김양원> 공연하러 가셨기 때문에.

◆ 호란> 네, 그러고 그분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거나 뭔가 직접적인 접촉을 할 일은 없었거든요. 이번에 처음 가서 어떻게 사는지도 들여다보고 실제 그분들이 난민캠프 안에서 어떻게 사시는지 봤을 때는 그냥 막연하게 제가 상상했던 거랑은 또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너무 영화 같은, 도식화되어 있는 그런 모습을 상상했던 것 같은데, 난민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스테레오타입 같은 게 있잖아요. 고정관념이. 딱 보고 둘러보고 공보관님한테 처음으로 첫 감상을 말씀드렸던 게 참 인간이 강하군요, 이런 얘기를 먼저 드렸거든요. 대뜸. 그런데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더라고요. 인간이 되게 강하구나. 불편한 환경이에요. 보면 집이나 이런 것들도 열악하게 지어져 있고, 그 안에서도 이렇게 살아가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구나, 이 사람들이. 이렇게 열심히 만들어놨구나, 이게 느껴져서 경이롭더라고요. 감동적이었어요.

◇ 김양원> 공보관님, 호란 씨가 다녀오신 멜라캠프. 잠깐 설명을 해주세요.

◆ 신혜인> 멜라캠프는 말씀드린 것처럼 태국 같은 경우는 미얀마와 국경을 나누고 있어서 많이들 아시다시피 미얀마에 소수민족들이 많아서 박해를 받는 민족 들이 많잖아요. 태국은 국가 전체가 60만 명 정도의 난민을 보호하고 있고요. 그중에서도 미얀마랑 국경에 위치한 멜라캠프 같은 경우는 호란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태국에서도 최대 규모의 난민촌입니다.

◇ 김양원> 호란 씨가 한국에서 공연 때문에 카렌족을 처음 만났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때는 그게 2년 됐어요?

◆ 호란> 네, 2년 전에 방금 말씀하신 우리나라에 재정착한 카렌 가족들을 모시고 토크 콘서트처럼 그때 홍보대사이신 정우성 홍보대사께서 같이 대담도 나누고요.

◆ 신혜인> 거기서 카렌곡을 연습을 많이 하셔서 카렌어로 불러주셨어요. 그래서 가족들이 굉장히 감동을 했고, 그 같은 곡을 멜라캠프에서도 공연을 하셨는데요. 굉장히 좋아했어요, 아이들이.

◇ 김양원> 왜 안 그랬겠습니까. 고향을 등지고 떠나온 분들이잖아요. 난민이라는 분들이. 고향을 떠나서 낯선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고국에서 했던 말들, 음식들, 풀 냄새, 이런 것들과 너무 오래 떨어져서 지내다 보면 향수병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 것들이 있을 법도 한데, 그분들한테 직접 고향의 말로, 모국어로.

◆ 호란> 그렇죠. 카렌어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이게 미얀마어도 아니고, 태국어도 아닌 거잖아요. 그 사실 자체가 저는 감동적이었어요. 사실 나라를 어떻게 보면 잃고, 떠나서 지내면서 문화와 언어를 지키고 있다는 게 자부심 같은 것도 느껴지고요. 자신의 뿌리를 놓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어느 곳에 있든 간에. 그래서 거기에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그 행위 자체가 가치가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알고 있다는 것을 당신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그 노래를 골랐죠. 그리고 또 그 노래가 카렌어의 의미 이상이 있는 게 노래 작곡자가 카렌난민이에요. 방금 말씀드린 멜라캠프 안에 거주하고 있는, 거기서 태어난 젊은이들이 이들 중에 음악에 관심이 있고, 음악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작곡을 하고, 그것을 유튜브를 통해서 공개를 하고요. 자기들끼리 뮤직비디오도 만들고 하더라고요. 그 곡 중에 하나에요. 가사도 정말 되게 벅찼어요. 이게 젊은이가 쓴 가사잖아요. 20대 젊은이가 쓴 가사잖아요. 그 가사의 내용이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쓸 수 없는 가사예요.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여기서 사람들이 죽고, 소녀가 죽고, 아이들이 울고 있고, 사람들의 몸이 부서지고,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살아가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웃고,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눈물짓고, 이런 이야기들이에요. 이런 이야기가 그 사람들한테는 소설 속 이야기라든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 엄마, 실제로 고국에 있는 우리 가족들이 겪고 있는 일들이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20대의 목소리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니까 더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김양원> 참 비극적인 현실인데, 그런 현실들을 담담하게 불러낸 노래를 직접 또 현장에서 불러주셨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어떤 이야기에요? 우쿨렐레 연주도 하셨다고요?

◆ 호란> 그거는 이번에 멜라캠프에 가서요. 기타 같은 경우는 해외에 가지고 갈 때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가 해외 공연을 가더라도 수화물로 보내야 하는데, 덩치가 있다 보니까 기내반입이 안 되거든요. 그런데 우쿨렐레는 기내반입이 돼요. 작아서. 카렌 사람들의 특징이 되게 조용조용하면서 수줍어요. 그래서 처음에 들어왔을 때는 눈이 반짝반짝 하는데, 다들 약간 어색. 저도 어색한데, 그 사람들도 어색하고, 숫기 없이 이랬는데, 노래 주고받고 하면서 얼굴이 조금 풀리고, 한국인 연예인 중에 누구를 좋아해요, 하니까 이민호를 좋아한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어느 나라를 가든, 어느 환경에 있든, 애들은 애들이구나.

◇ 김양원> 그러셨군요. 신혜인 공보관님, 우리가 전에 미얀마 로힝야족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다뤘잖아요? 그런데 저는 미얀마의 카렌족, 조금 낯설 거든요. 저희 청취자 분들을 위해서 잠깐만 어떤 히스토리인지 소개를 해주시겠어요?

◆ 신혜인> 아시다시피 미얀마는 95% 정도가 불교도인 불교국가인데요. 그 안에 많은 소수민족이 있고, 이분들이 민족도 다르면서 종교도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소수민족으로 인정받기도 힘들고, 소수민족인 경우에 많은 박해를 받는데요. 그중에 로힝야족도 있고, 많이 들어보신, 그리고 비교적 덜 알려진 분들이에요. 카렌족 같은 경우는 대다수가 기독교를 가지고 계시고, 그래서 이분들도 굉장히 오랜 세월 박해를 받으셨고, 아까 호란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멜라캠프 같은 경우는 1984년에 생겨난 캠프예요. 이때 떠나온 분들 같은 경우는 거의 3대째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태국에서 계속 생활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또 카렌족 같은 경우는 굉장히 가슴이 아프게도 미얀마에서 이분들의 귀환을 허가한다고는 하는데, 그게 조금 쉽지 않은 그런 상황이에요. 왜냐하면 고국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셔서 법적인 지위나 이런 것들에 있어서요. 그래서 한국 같은 경우 재정착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분들을 모셔오게 된 겁니다.

◇ 김양원> 저희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유엔 난민기구의 전문가시잖아요, 신혜인 공보관님. 전문가의 눈높이에서 난민 이야기를 풀어오다가 오늘 이렇게 저와 똑같은 평범한 눈높이로 미얀마 카렌족 난민을 만나고 오신 호란 씨를 만나니까 제가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여쭙고 싶네요. 우리에게 다가온 이웃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난민을 만나지 못한, 그래서 막연하게 나와는 다를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청취자 분들에게 직접 갔다 오신 한 사람으로서 마지막 말씀을 해주시죠.

◆ 호란>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 공포가 더 커지는 것 같아요. 거부감이라고 하지만 본질은 공포거든요. 도대체 이 사람들이 나의 삶에 위협이 되지 않을까, 이 사람들이 우리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까,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내 인생이 저 사람들 때문에 나빠지지 않을까, 이런 것들에 대한 공포인 것 같아요. 거부감이나 혐오 이전에. 그런데 그렇잖아요, 제가 기고문에도 쓰기는 했는데, 층간소음 해소법 중에 하나가 윗집이랑 안면을 트는 거라고 하잖아요. 윗집에 뛰는 꼬맹이, 맨날 쿵쿵 뛰는 꼬맹이랑 안면을 트고, 뛸 때 꼬맹이가 또 노는구나, 이렇게 그 애 얼굴이 떠오르면 화가 덜 난대요, 실제로. 스트레스도 훨씬 떨어지고요. 그래서 일단 난민을 좋아해주세요, 난민을 받아들이자,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가... 이렇게 시혜적인, 호혜적인 눈빛을 강요하기보다는 난민이 어떤 사람들인지 먼저 알고 싶은 마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난민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고, 어떻게 보면 이렇게 안전한 곳에서 안전하게 자라온, 살아온, 저보다도 훨씬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거든요. 일단 알게 되면 분명히 난민 문제나 난민 자체에 대한 시각이 달라질 거예요. 아직 많이 알지 못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계시거나 두려움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벌써 우리나라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으니까 한 번 찾아보시고요. 한 번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조금이라도 이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들인지, 어떤 삶을 피해서 어떤 삶을 추구하고 있는 사람들인지.

◇ 김양원>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희 프로그램에서 난민 알기, 이런 코너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자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 호란> 불러주세요.

◇ 김양원> 네, 오늘 귀한 발걸음 감사드리고요. 앞으로도 우리 난민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들 만들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 호란> 고맙습니다.

◆ 신혜인> 감사합니다.

◇ 김양원> 지금까지 가수 호란 씨와 유엔 난민기구의 신혜인 공보관이었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