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생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면 '철심'

데생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면 '철심'

2019.09.21. 오전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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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손톱 길이만큼 짧은 철사로 명암이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요?

연필이나 펜으로 그린 데생 같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철심으로 만든 작품이 있습니다.

인내와 땀방울로 일궈낸 작품들,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김혜은 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자]
금세라도 눈을 깜박일 듯한 파블로 피카소.

얼핏 보면 펜으로 그린 그림 같지만, 작은 철심을 일일이 꽂은 작품입니다.

철심이 좀 더 많이 자리 잡은 곳에 주름이 일렁이고, 더 적은 곳에는 흰 머리카락이 돋아났습니다.

철사의 굵기나 높이가 달라서 보는 각도에 따라 형체는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작은 그림자들이 모여 수묵화의 '농담' 효과까지 냅니다.

30kg이 넘는 철사를 자르고 꼬아서 일일이 심는 작업은 고된 노동이지만 완벽을 위한 방식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김용진 / 작가 : 느림의 미학? 천천히 작업하잖아요? 그러면 완벽합니다. 하나하나 생각하고 들어가기 때문에 완벽해요.]

촘촘하게 줄지어 선 진주 알갱이들.

조지오웰 소설 '동물농장'의 한 페이지입니다

진주 한 알 한 알이 글자를 대신했습니다.

손으로 구긴 한지를 볼펜으로 색칠하고 그 위에 흩뿌린 2만여 개의 진주.

마치 허공에 떠도는 언어들을, 쉽게 전해지지 않는 진심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하루 꼬박 15시간씩 진주알을 붙이는 작업을 통해서 작가는 몸으로 사유하고 기억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고산금 / 작가 : 저의 시간을 기록하고, 저 개인뿐 아니라 시대의 장소성·시간을 이야기하죠. 그래서 아마 노동집약적 태도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복잡하고 입체적인 기술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오롯한 노동과 '점'으로 말하는 작품들, 또 다른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YTN 김혜은[henism@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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