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7년 백제왕이 아들 명복 빌며 만든 '사리보관용기' 국보 된다

577년 백제왕이 아들 명복 빌며 만든 '사리보관용기' 국보 된다

2019.04.01. 오후 12:30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백제의 왕이 죽은 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 공예품,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舍利器)'가 국보가 됩니다.

577년 백제왕이 아들 명복 빌며 만든 '사리보관용기' 국보 된다

문화재청은 보물 1767호인 이 사리기를 국보로 승격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사리기란 사리(불교에서 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기는 구슬 모양 유골)를 보관하는 용기를 뜻합니다.

577년 백제왕이 아들 명복 빌며 만든 '사리보관용기' 국보 된다

이 용기는 2007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백제 왕실의 사찰이었던 왕흥사터에서 발견했습니다. 발견 당시 목탑지에 있는 사리공(舍利孔), 즉 사리 용기를 넣기 위한 구멍 안에 진흙에 잠겨있었는데요. 이후 보존 처리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찾았습니다.

577년 백제왕이 아들 명복 빌며 만든 '사리보관용기' 국보 된다

사리기 겉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丁酉年二月 / 十五日百濟 / 王昌爲亡王 / 子立刹本舍 / 利二枚葬時 / 神化爲三"

해석해보면 "정유년(577년) 2월 15일에 백제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하여 찰(절)을 세우는데 2매(二枚)였던 사리가 장례지낼 때 신(神)의 조화로 3매(三枚)가 됨"이란 뜻입니다.

577년 백제왕이 아들 명복 빌며 만든 '사리보관용기' 국보 된다

'창'은 백제 27대 왕인 위덕왕의 이름입니다. 이 글을 통해 위덕왕이 577년에 죽은 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사리 공예품을 만들도록 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577년 백제왕이 아들 명복 빌며 만든 '사리보관용기' 국보 된다

더함도 덜함도 없는 단아한 형태의 이 사리기는 안정적이면서도 세련된 미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표면을 깎고 다듬는 기법과 구조물을 만들어 붙인 기법 등에서 백제 장인의 숙련된 솜씨 또한 살펴볼 수 있습니다.

577년 백제왕이 아들 명복 빌며 만든 '사리보관용기' 국보 된다

특히 사리기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손잡이(꼭지) 부분과 그 주변이 마치 '연꽃'처럼 보입니다. 연꽃 문양은 이 사리기보다 50여 년 앞서 만들어진 '무령왕릉 출토 은제탁잔'에서도 나타나는데요. 백제의 왕실 문화와 불교 문화에서 연꽃 문양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사실을 다시금 알 수 있습니다.

577년 백제왕이 아들 명복 빌며 만든 '사리보관용기' 국보 된다

(▲ 무령왕릉 출토 은제탁잔, 사진제공 : 국립공주박물관)

문화재청은 6세기 사리공예품의 대표작인 이 유물이 백제 왕실 공예품이라는 역사적, 예술적 가치뿐 아니라 가장 오래됐다는 희소성도 가지고 있는 만큼 국보로 지정하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지은 [jelee@ytn.co.kr]

(사진 제공 : 문화재청)

577년 백제왕이 아들 명복 빌며 만든 '사리보관용기' 국보 된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