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남자 강형구, 부드러운 비단으로 가다

강한 남자 강형구, 부드러운 비단으로 가다

2018.12.17. 오후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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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남자 강형구, 부드러운 비단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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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의 양상군자(梁上君子)

“작업실이 지내시기에 조금 추운 것 같습니다.” 지난 9일 초겨울 한파가 몰아친 날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화가 강형구의 작업실을 찾았다. 기자의 어색한 안부 겸 인사에 그의 답은 단호했다. “영하 15도의 추위라도 도둑놈이 남의 집 담을 넘어갈 때는 등골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른답니다. 이 정도면 견딜 만합니다.” 외모만큼이나 강한 이름을 가진 남자 강형구의 입에서 나올만한 대답이다.

화가 강형구 만큼 현대 화단에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던져준 작가도 흔치 않다. 1954년생으로 중앙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직업화가로서 첫 발을 딛기도 전에 직장인으로 사회에 나왔다. 사병 군 복무 시절 결혼한 그는 제대 뒤 농약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회화를 전공한 그였지만 농약회사의 원가계산과 업무계획이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부모의 희망과 당시 처지가 들어맞은 결과였다. 검사 출신으로 대법관을 역임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화가가 되는 것이 몹시 불안하고 못마땅했다. 초등학교 시절 사생대회에서 일등을 도맡아 했지만 그의 부모는 한 번도 어린 형구를 칭찬하지 않았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자칫 기를 북돋았다가는 아예 화가의 길로 들어설까 우려한 ‘담합’이었다.

그에게 미국 작가 척 클로스(미국, 1940년~)에 대해 묻자 시원하게 답이 나왔다. “척 클로스라는 사람이 전혀 회화답지 않은데 극사실 요소로 에어브러시를 동원해서 이렇게 표현하는 구나. 굉장히 심취해 있었죠.” 그러나 척 클로스의 포토리얼리즘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처럼 생생함을 목적으로 한다면 강형구의 리얼리즘은 정서를 그리기 위한 기법 위에 방점이 있다. 현대 한국화단의 하이퍼리얼리즘 1세대들의 주장처럼 사실적 표현의 목적이 객관적인 사물의 복제에 있지 않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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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즐거운 의무이자 권리

“하이퍼리얼리즘이 제 그림의 일부임은 사실입니다. 남들이 봤을 때 굉장히 정교하게 그린 그림이니까. 그러나 하이퍼리얼리즘은 내 그림의 완성 요소에서 5분의 1정도만 차지할 뿐입니다.” 나머지 5분의 4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작가의 상상력, 그의 언어로 말하면 ‘거짓말’이다. 현대 예술에 있어서 상상력은 작품의 원천이 아닌가? “허구라는 것, 거짓말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작가의 가장 즐거운 권리, 의무이기도 합니다.”

거짓말의 성분 배합 측면에서 보면 강형구의 그림은 극사실주의자인 척 클로스와 ‘냉소적 사실주의자’인 중국 작가 웨민쥔(중국, 1962~)을 이은 선 어디쯤에 있다. 웨민쥔이 과장된 표정과 색상을 통해 현실과 자아를 비판적으로 반추한다면 강형구는 실제적 인물을 허구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지금의 화가 강형구를 있게 한 대전환은 알려진 대로 2007년 홍콩 크리스티 아시아컨템퍼러리 경매에 출품한 ‘반 고흐’와 ‘자화상’ 두 작품의 높은 판매 기록이다. 당시 미술품에 대한 자본의 광적인 쏠림현상이 있었던 시기적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7억 원에 가까운 낙찰가는 놀라움과 기대를 불러오기 충분했다. 작가는 ‘상장 받은 느낌’으로 당시를 기억했다. “미술대회에 나가 상 타면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이 상장을 주잖아요. 그 기분하고 비슷했습니다. 아버지가 내가 그림 그리는 걸 그렇게 반대하시더니 이 소식 들으시면 좋아하시겠다,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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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가 그림을 처음 판매한 건 쉰세 살 때였다. 농약회사와 갤러리 운영을 거쳐 2001년 48살에 첫 전시를 열어 인정도 받았지만 작품 판매는 또 다른 일이었다. 화가로서 또 가장으로서 기로에 선 그는 오히려 단순함을 선택했다. “그림으로는 수입이 전혀 안 됐죠. 어떤 생각이냐면 그림은 안 팔린다, 이런 단순함, 안 팔리니까 팔아야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아예 실종되더라고요.” 작품을 팔아야 하겠다는 기대를 내려놓자 작품성이 오히려 높아졌다. 그게 승부처였다.

2007년 홍콩 대박 사건이 강형구의 주가를 한껏 끌어 올렸다면 그에게 화가로서의 자신감을 준 건 미국 시카고 아트페어였다. 2005년 작은 화랑을 통해 아트페어에 참석하게 된 그는 600호 크기의 자화상과 다빈치 초상화, 200호 두 점을 출품하자고 고집했다. 만만치 않은 운송비용에 화랑 측은 난감해 했다. “아니 작가님, 아트페어에 나가면서 600호 자화상은 왜 갖고 가세요?” 그러난 그는 고집을 부렸다. “600호를 보여줘야 200호 소품이 나갈 수 있죠!” “아니 200호가 소품이에요?” 결국 큰 그림 4점을 들고 간 그는 600호 다빈치와 200호 빌 클린턴 초상화를 팔았다. “인기 절정이었죠, 600호가 걸렸으니까. 호텔 로비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호텔 직원이 신문을 보여주면서 내 사진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시카고 아트페어를 결산하면서 내 사진을 대표사진으로 냈더라고요.” 그 당시 그는 600호 다빈치 자화상을 4천500만 원에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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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하이힐 VS 남자의 키높이 구두

39살에 대학로에서 운영하던 갤러리를 접고 48살에 연 첫 전시까지 10년 동안 그는 두문불출 오로지 작업에만 매달렸다. 당시 200호 위주의 큰 그림을 200~300점 그린 것으로 그는 기억했다. 지금도 큰 작품을 매년 50여 점씩 그리는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풀어지려는 마음을 용수철처럼 꾹꾹 눌러놓는다. 작품은 자신의 손끝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 그는 작업 조수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커졌다. “직접 안 그리는 작가들은 혼 좀 나야합니다. 직접 안 그린 작품은 대량 생산하는 판화처럼 에디션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주장이다. ‘무명 때 직접 작품을 그렸다면 지금 유명해졌다고 해서 직접 그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대량 생산하는 공장처럼 작품을 찍어낼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앤디 워홀처럼 조수를 쓴다고 공언을 하면 문제는 다르지만, 조수를 쓰는 작가들은 작품을 조수가 그렸다고 절대 말하지 않아요. 속임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자의 하이힐이 드러내놓고 키를 높이는 것이라면 남자의 키높이 구두는 남을 속이는 것입니다.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이죠.”



강한 남자 강형구, 부드러운 비단으로 가다


캔버스에서 시작해 알루미늄 소재까지 그는 인물화 작업 과정에서 다양한 방법적 실험을 진행해 왔다. 그런 그가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가 비단 작업이다. 명절 굴비세트 보자기를 버리기 아까워 시작했다는 비단 작업이다. 비단이 갖는 특징은, 오로지 일필휘지 일획의 잘못도 허용하지 않는 엄격함에 있다. 일호불사(一毫不似) 하이퍼리얼리즘에 익숙한 그에게도 어려운 도전임에 틀림없다. 비단이 갖고 있는 자체 무늬의 화려함 때문에 단순한 표현에 머물러야하는 이번 비단 초상화 작업은 이런 특징으로 전통의 전신사조(傳神寫照) 정신에 가까우며 상상력을 통해 정신을 구현한다는 그의 인물 작업의 목표와도 일맥 통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강한 남자 강형구, 부드러운 비단으로 가다


그가 좋아하는 화가 고흐는 고독과 광기 속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늦깎이로 세상에 알려진 그는 수백여 점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였다. “저는 선택받은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정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 99%의 작품은 팔려나가지 않습니다. 이 99%가 정상이지 어떻게 1%가 정상이겠습니까?” 에어브러시에서 뿜어져 나온 유화 먼지로 가득한 그의 작업실 바닥에는 여러 경구들이 쓰여 있다. 그 중의 하나, 만추가경(脕秋佳景). 세월이 깊을수록 아름답게 남고 싶다는 뜻이다.

강형구 작가의 새로운 신작이 개인전을 통해 선보인다. 전시에서는 오렌지색 비단에 생명력을 부여한 <오드리햅번> 신작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초이스 아트 컴퍼니> 측은 “다양한 사이즈의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대작이 대부분인 작가의 작품을 친근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내년 2월 1일까지. 문의 (02) 501-2486.


강한 남자 강형구, 부드러운 비단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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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근 (sgl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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