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의 큰 별 故 신성일, 그의 길이 한국 영화 역사

한국 영화계의 큰 별 故 신성일, 그의 길이 한국 영화 역사

2018.11.04. 오후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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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영화계의 큰 별 신성일 씨는 우리 한국 영화 역사의 산 증인으로 꼽힙니다.

60, 70년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최두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신성일 씨의 데뷔작은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였습니다.

2년 뒤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고, 1964년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이후에도 '별들의 고향' 등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1970년대까지 최고 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지금까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만 5백 편이 넘는, 한국 영화계의 큰 별이었습니다.

[신성일 / 영화배우 (지난 2013년) : 저는 (지금까지) 507 작품의 주인공을 하면서 늘 시사회 때마다 참 마음 설레는 마음으로 봤습니다.]

인기 최절정기였던 지난 1964년엔 당대 최고의 여배우 엄앵란 씨와 결혼하며 '세기의 결혼식'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영화계 인기를 발판으로 정계에도 눈을 돌렸습니다.

세 번째 도전 만에 2000년 16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지난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와 관련해 금품을 받은 혐의로 옥고도 치렀습니다.

2011년엔 본인의 불륜 관계가 담긴 자서전을 출간하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신성일 / 영화배우 (지난 2011년) : 제가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좋아하듯이, 조금도 부끄러움 없이 거짓 없이 살아온다는 것을 생활신조로 갖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마음에 얘기를 못 담아두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 쏟아내는 속에….]

지난해 폐암 판정을 받은 뒤 투병 중에도 건강한 근황을 공개했고, 지난달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서는 등 끝까지 영화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여 뒤, 병세가 악화하며 한국 영화계의 큰 별은 우리 곁을 떠나 하늘나라의 별이 됐습니다.

YTN 최두희[dh0226@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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