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요르단 난민 캠프 현장취재기: 난민에 대한 세 가지 편견을 깨다

[와이파일] 요르단 난민 캠프 현장취재기: 난민에 대한 세 가지 편견을 깨다

2019.01.10. 오후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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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요르단 난민 캠프 현장취재기: 난민에 대한 세 가지 편견을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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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요르단 난민 캠프 현장취재기: 난민에 대한 세 가지 편견을 깨다

●중동의 스위스, 요르단

인기 웹툰 '미생'에는 요르단이 중동에 속해있지만 개방적인 나라로 소개됩니다. 주대한민국 요르단 대사관 직원이 요르단에 대해 "전쟁이 나면 모두 요르단으로 피한다"고 소개하는 대사도 나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인 하심 왕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배하다 영국의 간섭으로 부존자원이 없다시피 한 광야의 땅 요르단에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요르단 국왕 후세인 1세의 외교 역량 덕분에 이스라엘, 시리아, 이라크처럼 바람 잘 날 없는 이웃국가들 사이에서 요르단은 평화 중재자로 부상하게 됐습니다. 팔레스타인 난민에 이어 이라크 난민, 최근엔 시리아, 예멘 난민까지 끌어안은 배경이기도 합니다.

UNHCR (유엔난민기구) 공식 집계 결과, 요르단 내 시리아 난민은 무려 67만2천 명, 이라크 난민은 6만7천 명, 예멘 난민 만2천 명, 소말리아 난민 8백 명 등으로 요르단 내 난민 수는 모두 76만 명에 달합니다. 요르단 정부가 집계한 난민 수는 130만~140만 명에 달하니까 난민 수가 요르단 총인구(990만 명)의 10%를 넘어서는 셈입니다.

8년째 이어진 시리아 내전으로 시리아인들은 이웃 요르단으로 피신해 난민 캠프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녀온 난민 캠프는 무려 8만 명이 거주하는 자타리 캠프와 4만 명이 거주하는 아즈락 캠프였습니다. 이밖에 상당수의 난민들은 일자리를 찾기 쉽고, 캠프보다 주거 환경이 쾌적한 요르단 수도 암만 등 도시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자타리 캠프의 경우, 2012년부터 조성돼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다 화장실도 공동 사용해야 하는 불편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타리 캠프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자타리 캠프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새로 조성한 아즈락 캠프에서도 화장실을 여러 가구가 공동 사용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제한적인 점도 난민 캠프의 불편함 중 하나입니다.

국제사회 지원으로 근근이 생활할 수밖에 없다보니 제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난민들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웠습니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이들은 희망을 향해 한발씩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런 희망적인 모습이 요르단 자타리 캠프 현지에서 제가 보도를 준비하게 된 원동력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에서 발생했던 난민들이 저지른 집단 성폭행 사건의 인상은 참 강했던 것 같습니다. 난민 캠프 취재를 가기 전에 저는 난민에 대한 세 가지 편견을 품고 있었습니다:

(1) 난민은 위험하다.
(2) 난민은 의존적이다.
(3) 난민은 잠시 이곳을 거쳐 가는 사람일 뿐이다.


●요르단 내 최대 시리아 난민 캠프, 자타리

자타리 캠프는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90km 북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자동차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주변엔 황량한 사막 밖에 없습니다. 처음엔 낮엔 무덥고, 밤엔 추운 사막 위에 난민들이 텐트를 치고 모여 살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사막 곳곳에 설치된 텐트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관리하는 케냐 다다브에 있는 소말리아 난민 캠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에 해당하는데 현재 난민 8만 명을 수용하고 있고, 20%가 5살 이하 아동입니다. 이런 가운데 매주 80명씩 신생아가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데 전쟁이 낳은 난민 캠프에선 삶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다 보니 캠프 거주 난민의 55.9%가 17세 이하 미성년자였습니다.

무려 5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시리아 내전을 피해 국경을 건너온 난민 가족 중 20%가 여성이 가장을 맡고 있습니다. 난민 5천 명이 캠프 안에서 일하며 현금 지원을 받고 있고, 만 명의 난민은 근로 허가를 받았는데 이 중 13%가 여성입니다.

버려진 사막 위에 정착촌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건 2012년 7월인데 옹기종기 모인 천막으로 시작해서 사막의 열기와 추위를 피할 수 없었지만, 든든한 컨테이너 주택이 천막을 대신하면서 지금은 '사막 위의 시리아'라고 불릴 정도로 거대한 도시로 변했습니다. 요르단 군인들의 삼엄한 경계가 펼쳐진 게이트를 지나자 외벽이 나타났습니다.

아래 있는 사진처럼 이제 이곳이 삶의 터전이 된 아이들이 그린 벽화가 외벽 곳곳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와이파일] 요르단 난민 캠프 현장취재기: 난민에 대한 세 가지 편견을 깨다

본격적으로 캠프를 돌아보기에 앞서 캠프 치안을 담당하는 알 수디 요르단 시리아 난민국 대령의 브리핑을 들었습니다. 요르단이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직후부터 인도주의적 이유에서 난민을 수용했고, 난민 캠프 내부 범죄율은 요르단의 다른 도시와 비교했을 때 보통 수준과 다름없다고 했습니다. 테러리즘 위협은 없었는지 물어봤는데 대단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 정도로 캠프 내에서 ‘테러’라는 말은 거의 금기어에 가까웠습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난민들이 테러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르단 난민국 대령이 방송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아 UNHCR 직원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이 직원도 '테러'라는 말을 언급하길 꺼려서 어렵사리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난민이 대거 유입되면 범죄율이 높아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지만, 8만 명이 사는 자타리 캠프는 양호한 치안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취재를 통해 저의 첫 번째 편견 (난민은 위험하다) 은 틀렸다는 것이 증명됐습니다.

[와이파일] 요르단 난민 캠프 현장취재기: 난민에 대한 세 가지 편견을 깨다

이어 방문한 자타리 취업 센터 (Zaatari Office for Employment) 는 취업 허가증(work permit) 을 발급해주는 곳이었습니다. UNHCR 현장 협력관 (Field Associate) 인 하닌 와베 (Haneen Wahbeh) 씨가 난민들의 취업 상황에 대해 설명해줬습니다. 와베 씨는 요르단 정부가 난민들의 일자리를 4개 직종 (수공업, 농업, 건설업, 요식업)으로 제한해서 요르단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고, 외국인 근로자인 이집트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르단의 실업률이 거의 20%에 육박하는 상황인데 난민들은 요르단 사람이 받는 임금의 절반만 받고도 기꺼이 일을 하는데다 돈벌이가 잘 되는 다른 직종으로 암암리에 일하기도 해서 요르단 내부에선 난민에 대한 여론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합니다.

국제사회 지원으로 한 달에 1인당 3만 원 정도의 밀가루와 채소, 고기 등이 지급되지만, 간신히 입에 풀칠만 할 정도입니다. 최근 시리아 국경이 다시 열렸지만, 난민들은 아사드 정권의 탄압을 우려해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난민들 사이에선 해외로 탈출한 시리아 국민들의 재산을 압류했다는 소문이 돌아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고국에 돌아갈 필요가 없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실제로 시리아 난민인 26살 탐만 알나벨시 씨는 "시리아 상황이 불안정해 돌아가면 징집당할 겁니다. 저로서는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어요."라며 그림을 배워 멋진 작품들을 작품당 100~200달러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한 달 식량 지원비가 3만 원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꽤 큰 소득인 셈입니다. 2013년에 시리아를 탈출해 레바논 베이루트를 거쳐 지난해 11월에 캠프로 들어온 그는 프랑스어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생계를 위해 붓을 들게 됐습니다. 시리아에서 우리나라로 치면 문화재청과 비슷한 관청에서 일하셨다는 탐만 씨의 아버지는 직장 경험을 살려 시리아 내 주요 사적들을 공예품으로 만들어 비싼 제품의 경우, 우리 돈으로 71만 원에 판매하기도 한답니다.

이처럼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새로운 삶과 희망을 개척하려는 의지는 어김없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난민들의 자활을 돕는 '커뮤니티 센터'에서 그 싹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알나벨시 씨와 그의 아버지의 작품은 커뮤니티 센터에 멋지게 전시돼 있습니다. 전시장 옆 작은 교실에서는 니캅을 쓴 소녀 10여 명이 ‘타이거 걸즈’라는 난민촌 여학생 모임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캠프를 보다 나은 모습으로 개선하기’를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UNHCR의 커뮤니티 센터 담당자 오마르 알무하이센은 이런 프로그램이 자칫 난민 생활을 하며 의기소침해질 수 있는 소녀들에게 자신감을 키워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취재를 통해 저의 두 번째 편견 (난민은 의존적이다) 역시 틀렸음이 증명됐습니다.

다음엔 자타리의 자랑거리인 태양광 발전소에 들렀습니다. 그동안 요르단에서 매년 5백만 달러어치에 달하는 전기를 끌어와야 했지만, 이젠 에너지 자립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자타리 캠프에 있는 태양광 발전소는 모두 4만 개의 패널로 구성되어 있고, 이는 축구장 33개를 뒤덮을 정도의 큰 면적을 자랑했습니다. 이곳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 곳입니다. 한전은 글로벌 봉사 활동 차원에서 2013년 7월 14일에 배전 시스템 진단, 요금과 계량 시스템 설계 등 난민 캠프 배전선로 개선을 지원했습니다. (참고로, 한전은 요르단에서 가스 373MW, 디젤 573MW, 풍력 90MW 규모의 발전소를 운영 중입니다.)

그래도 부족한 전기는 자전거 발전기를 이용해 보충하는 창의적인 난민도 있었습니다. 난민 가정 2곳을 방문했는데 22살 된 청년 아흐마디 살림 씨는 요르단 수도 암만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가 풍력발전소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풍향이 자꾸 바뀌어 어려우니 다른 방법을 찾다가 자전거로 전기를 만들게 됐다고 합니다. 이렇게 칼로리도 소모하면서, 전기도 생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창의적인 그에게도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전으로 형을 잃고, 다른 형제는 투옥되자 2013년 시리아에서 탈출한 살림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캠프 밖에서 일하는 대신, 캠프 내 심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그의 심경은 무척 복잡해 보였습니다. 왜 형제가 투옥됐는지 물어보는 기자의 질문에 한동안 답하지 못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응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시리아의 상황이 계속 위험하고,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굳이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것으로 저의 세 번째 편견 (난민은 이곳을 잠시 거쳐가는 사람일 뿐이다) 역시 틀렸음이 증명됐습니다. 하긴 요르단 인구의 70% 이상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입니다. 난민들이 기틀을 잡은 나라에 또 다른 난민들이 몰려든 셈입니다. 돈이 많은 이라크 난민들은 전쟁 이후에 요르단의 부동산 가격만 올려놓고 금세 돌아갔다고 하는데 시리아는 워낙 현재 사정이 안 좋은데다 반정부 지역에서 온 난민들이 많아 이곳을 새로운 터전으로 삼으려는 난민들이 확실히 많아 보였습니다.

[와이파일] 요르단 난민 캠프 현장취재기: 난민에 대한 세 가지 편견을 깨다

●자타리의 '샹젤리제'

지금 보시는 사진은 샹젤리제 거리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자타리 캠프 내 시장 거리에서 촬영했습니다. 물론 프랑스 파리에 있는 실제 샹젤리제 거리의 화려함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자타리 캠프 내에서 가장 활기찬 장마당입니다. 자타리 난민 캠프와 그 인근에는 3천 개의 상점이 성업하고 있습니다.

직접 만든 옷과 장난감에 식료품, 그리고 스마트폰까지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난민들이 무슨 스마트폰을 쓰느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일자리를 구하거나 친인척들과 연락하는데 매우 긴요하게 쓰인다고 합니다. UNHCR도 난민들과 문자 메시지로 연락을 하고 상담도 하고 있습니다. 난민 캠프에서 만든 빵을 먹어봤는데 양도 꽤 많고, 내용
물도 충실해서 이제 제법 안정된 식량 상황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자타리 난민 캠프의 경제 규모는 한해 천억 원 정도인데 황폐한 사막 지역에 불과했던 자타리의 경제까지 부양하는 활력소가 되고 있습니다.

자타리 난민 캠프 취재를 통해 난민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깰 수 있어서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난민에 대한 편견이 정말 심각한 수준입니다. 난민촌 취재를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비롯한 난민 관련 기사를 쓴 기자들이 인터넷 댓글을 통해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9·11테러, 김선일 씨 참수 사건 등을 통해 '무슬림 = 테러리즘'이란 프레임이 우리 사회에 강력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때문에 이슬람교를 믿는 난민들이 모두 위험해서 우리와 결코 공존할 수 없다는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은 이번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현장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느낀 것을 토대로 우리 사회의 편견을 조금씩 깨나가는데 앞장서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UN난민기구의 취재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이승윤 [risungyoo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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