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view] 운주사, 미완의 꿈이 서려 있는 땅

[人터view] 운주사, 미완의 꿈이 서려 있는 땅

2021.05.15. 오전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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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천불산 기슭에 자리한 천년고찰 운주사엔 5·18의 아픔과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천불천탑의 전설이 깃든 이곳은 기존 형식을 과감히 탈피한 파격적 외관으로도 유명한데요.

경내에 자유로이 자리한 수십 기의 탑과 불상은 오늘도 민중의 애달픈 삶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사람, 공간, 시선을 전하는 인터뷰에서 5·18 41주년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운주사에 담긴 여러 의미를 살펴봤습니다.

[영상리포트 내레이션]

"그해 봄 열흘 동안의 싸움은 하루 동안 천불천탑을 쌓아 세상을 바꾸려 했던 눈물겨운 무모함과 다르지 않았다."
- 이정우 작가, 「실패한 자들의 임시 망명정부, 화순 운주사」 中

광주 금남로에서 차를 타면 40분 거리에 있는 화순 천불산 기슭.

도선국사가 하늘의 선동선녀를 불러 이튿날 닭이 처음 울 때까지 천 개의 불상과 천 개의 탑을 세우려 했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지는 곳.

사찰 하나에 한 두기의 탑과 몇 분의 불상을 모시는 것이 보통인데, 운주사는 이런 정형을 모두 깬다.

천왕문과 사천왕상이 없고, 탑과 불상은 파격미를 이루며, 본래 이름보단 못난이·호떡·부부·동냥치(거지) 같은 별칭으로 불린다.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는데,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 각 일천 기가 있다. (雲住寺在千佛山寺之左右山背石佛塔各一千)"
-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무안 스님 / 화순 운주사 주지 : '국태민안(國泰民安)',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안온한 삶을 살게끔 하기 위해서 천 개의 탑과 천 개의 불상이 운주사에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실제로 천 개가 있었다는 의미보다는 우리 불교에서 말하는 '광대무변 무량무수(廣大無邊 無量無數)', 크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울타리 없는 골짜기를 따라 길게 뻗은 경내엔 현재 21기의 석탑과 80여 기의 석불이 남아 있다.

정유재란(1597) 때 폐사되었다가 1930년이 돼서야 법등을 다시 밝혔는데, 절의 역사를 살필만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발굴조사(1984-1990)를 통해 고려 초에 창건했고 이름이 雲住寺(운주사)라는 정도만 확인했을 뿐, 여전히 비어있는 부분이 많다.

그 빈자리엔 수많은 가설과 설화와 염원들이 담겼다.

한반도에서 불교는 줄곧 지배 세력의 문화였다.

운주사는 이러한 중심축에서 한참 벗어나 있던 곳이다.

역사에서 소외된 민중들이 저마다의 애환과 염원을 쏟아낼 수 있는 해방구였다.

운주사를 '구름이 머무는(雲住寺)' 완료형의 의미가 아닌, '항해하는 배(運舟寺)'라는 진행형의 의미로 해석하거나, 와불이 일어서면 세상이 뒤집힐 것이라는 믿음 모두 후대인들의 간절한 바람이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이태호 / 명지대 미술사학과 초빙교수 : 신라의 왕조, 고려의 귀족불교에서, 보다 다양한 민중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로운 사찰의 형식이 나왔다, 이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탑도 불상도 정형이 깨지고, 도상의 독특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개성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해줬다는 생각이 들어요. 못난 모습대로의 부처님이 바로 '내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그런 도상이다.]

운주사는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황석영은 소설 『장길산』에서 "세상의 모든 천민이여 모여라. 모여서 천불천탑을 세우자"라며, 새 세상을 향한 민중의 염원을 운주사에 담았고, 임동확은 「몸체가 달아난 불두에」라는 시에서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한 열망들이 드디어 찾아낸 스스로들의 유배지"라며, 운주사를 "임시 망명정부"로 칭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노순택은 사진전 『망각기계』에서 훼손된 영정사진 이미지와 운주사의 부서진 불상을 중첩시켜 묘한 느낌을 만들어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운주사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80년 5월 광주를 투영시켰다는 점이다.

[노순택 / 다큐멘터리 사진가 (전화 인터뷰) : 얼굴이 부서지고 목이 잘려 나간 채 운주사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미륵불들은 마치 1980년 금남로와 도청에서 총칼에 짓이겨졌던 광주의 열사들과 닮아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고 상심했던 유족과 친구들이 운주사 미륵불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곤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태호 / 명지대 미술사학과 초빙교수 : 1980년 7월 1일 자로 광주박물관 학예연구실 발령을 받아서 내려갔죠. 그때 처음 광주 시민들과 함께 버스에 모시고 운주사를 답사해서 안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민중들의 염원이 좌절되는 것, 그 다음에 혁명의 미완의 모습, 이런 것을 운주사의 못난이 불상과 파격의 탑에서 찾고, 광주항쟁의 아픔, 상처 이런 것들과 동질감을 느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도선국사가 천상의 선동선녀들과 하룻밤 새 완성하려던 천불천탑은 미완으로 남았다.

누군가가 거짓으로 닭울음 소릴 내, 와불을 세우지 못한 것이다.

새 세상은 오지 않았다.

5·18은 처참히 진압당했다.

항쟁 열흘간 최소 165명이 목숨을 잃었다.

독재는 이어졌고 민주주의는 미완으로 남았다.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미완은 진보의 다른 표현이다.

그 옛날 운주사를 만든 이들은 꿈의 완성이 아닌,
계속 꿈꾸는 것에 방점을 두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이루지 못한 꿈의 간절함을 후세에까지 전달할 수 있을 테니까."
- 이정우 작가, 「실패한 자들의 임시 망명정부, 화순 운주사」 中


제보/ buttoner@ytn.co.kr

버트너/ 이상엽, 박재상, 박지민, 홍성욱, 김자양

도움/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초빙교수, 노순택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정우 작가, 화순 운주사, 더블엑스엔터테인먼트, 전라남도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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