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가 비디오 테이프·CD로?...청소년성보호법 '음란물 수출'의 맹점

요즘 누가 비디오 테이프·CD로?...청소년성보호법 '음란물 수출'의 맹점

2019.10.24. 오후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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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음란물에 대한 우리 법원의 처벌 수위가 적합한지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단 한 건의 영상 다운로드에도 징역 70개월, 반면 우리는 사이트 운영자가 겨우 징역 1년 6개월에 그쳤기 때문인데요.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지난 2015년, 19살 손 모 씨는 사용자 추적이 어려운 다크웹 사이트를 사들였습니다.

여기에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10GB 분량의 아동 음란물을 올리고 유료 회원을 모집했습니다.

만 두 살에서 세 살 유아가 성인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영상을 포함해서 25만여 건이 유통됐습니다.

2년 8개월 동안 비트코인으로 얻은 범죄 수익을 돈으로 바꿔 4억 원 이상을 챙겼죠.

손 씨는 회원들이 그동안 사이트에 없던 아동 음란물을 올리면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줬습니다.

돈 내기 싫으면 새로운 아동 음란물을 구해오라는 건데, 심각한 문제를 불러왔습니다.

사이트 영상 가운데 45%는 다른 사이트 수사에서 적발된 적 없는 음란물이었습니다.

직접 제작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 건데요.

실제 5살 아동을 성폭행하는 아동 음란물을 제작해서 이 사이트에 올린 영국인이 22년형을 선고받았고, 캠브리지 대학 출신의 지구물리학자도 아동 강간과 신생아 학대 동영상을 이 사이트에 올린 혐의로 2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렇게 아동 음란물 사이트가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키다 보니 미국은 단순 이용자에게도 철퇴가 내려집니다.

비트코인으로 대가를 지급하고 사이트에서 2,600개가 넘는 영상을 내려받은 남성은 돈세탁 혐의까지 더해져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단 한 차례 접속해 영상 하나를 내려받은 혐의로도 징역 70개월과 보호관찰 10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우리는 어땠을까요?

운영자 손 씨는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습니다.

어리고 별다른 범죄전력도 없고, 각 회원이 직접 올린 음란물이 상당수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2심에서야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징역 1년 6개월에 그쳤고 다음 달이면 형기가 끝납니다.

법률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아동이나 청소년 음란물을 제작하거나 수입·수출하면 형량이 꽤 높습니다.

무기징역 또는 징역 5년 이상입니다.

하지만 이 '수출'의 의미가 아주 엄격합니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해외 이용자로부터 돈을 받고 아동 음란물을 제공하면 수출로 보지 않고 단순 배포로 보는 겁니다.

처벌도 훨씬 약해집니다.

[손정혜 / 변호사 : 형벌 관련해서 엄격하게 해석한다고 하잖아요. 죄형법정주의 때문에…. 수출 정도 되면 음란물 제작물을 하나하나 특정 개인에게 수출행위를 해야 하는 거죠. 어떤 물체가 있어야 하는 거고…. 기술 발전을 그 법령이 못 따라오는 거죠. 실질적으로 보면 수출과 다름없으나….]

모든 법은 항목을 만든 이유가 있습니다.

입법 취지라고 하는데요.

수출, 수입을 단순 배포보다 엄하게 처벌하는 입법 취지는 음란물을 국제적으로 유통하는 행위가 더 위험하다는 판단이었을 겁니다.

비디오 테이프나 CD로 일일이 수출하는 행위는 무기 또는 징역 5년, 반면 인터넷 음란물로 동시 다발적으로 공유해서 더 널릴 퍼질 위험성이 크면 징역 10년 이하로 더 약하게 처벌이 가능한 겁니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의 입장 직접 들어봤습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 : 법 조항 관련해서는 아직 내부적인 논의 중이어서…. 내부적으로 문제의식은 있고 이것 관련해서 국회에서도 좀 검토를 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번에 국제 공조로 적발된 사람 310명 가운데 223명이 한국인이었습니다.

대부분 벌금형이나 기소 유예와 같은 가벼운 처벌만을 받았죠.

미국은 운영자 손 씨에 대해서 돈세탁 혐의 등을 더해서 미국으로의 강제송환을 요청한다는 계획인데, 국내 법원이 이미 처벌한 아동 음란물 배포 혐의를 다시 미국에서 처벌할 수 있는지, '일사부재리'에 해당하는지는 법조계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어쨌든 어린 아동에게 평생 씻기지 않는 상처를 입히는 '아동 음란물'에 대해 제대로 법령 정비가 필요한 건 시급해 보입니다.

박광렬 [parkkr082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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