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점] "얼마 남지 않았는데"...강제동원 피해 신고도 안 받는 정부

[중점] "얼마 남지 않았는데"...강제동원 피해 신고도 안 받는 정부

2019.08.30. 오전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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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피해 신고…정부, 보상·신고 거부
정부, 2005년 강제동원 피해 신고받아
신청 못 한 피해자들은 조사·보상 無
특별법상 피해 신청 기간은 2014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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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은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격화하고 있는 한일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한, 현재의 문제죠.

그런데 정작 우리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요?

조사 기간이 지났고, 입법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추가 피해 신고조차 받지 않습니다.

한동오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태평양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서 군수 물자를 쥐어짜기 위해 강제동원에 열을 올렸습니다.

나이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1945년 봄, 13살이었던 김용덕 할머니는 그렇게 방직공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김용덕 / 아동 강제동원 피해자 : 여기서 무조건 막 두드려 보내더구먼. 이장, 반장이고 일본놈들이 뭐라고 했겠는가. 무조건 줄줄 줄을 세워서 갔지. 우리가 나이가 제일 적어. (이제는) 다 죽어버렸어, 많이.]

중노동이 고통스러웠지만,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건 잔혹한 폭행입니다.

[김용덕 / 아동 강제동원 피해자 : 여기를 때려 버리더라고. 콱 때려버려. 사정없이 때렸어. 아픈 것만 안 잊어버리고 다 잊어버렸는가 봐. 얼른 안 간다고 때리고 일 (해야 하는데) 얼른 안 일어난다고 때리고 그랬지.]

2005년,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 신고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김용덕 할머니는 글도 모르고 자식들도 비교적 넉넉해서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공장으로 끌려갔던 동네 친구 최점덕 할머니만 신고해, 피해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고 보상도 받았습니다.

[최점덕 / 김용덕 할머니와 강제동원 : (김용덕 할머니랑 일제강점기 때 같이 강제동원되셨어요?) 응. (해방 후 공장 담 넘으실 때도 김용덕 할머니랑 같이 넘으셨어요?) 응. 둘이. 다른 사람들은 다 가버리고 없으니까.]

김용덕 할머니는 최근 일본이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반발해 경제보복에 나서자, 뒤늦게라도 피해 내용을 정부에 알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주무부서는 보상은 물론이고 피해 신고 접수조차 거부했습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 : 추가 접수 기한을 놓쳐서 피해를 호소하는 분, 지원을 호소하는 분이 많이 찾아오고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 지원단이나 재단에서 추가로 조사할 수 있는 권능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특별법은 강제동원 피해 신청 기간을 2014년 6월까지로 못 박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사까지 금지한 건 아닙니다.

'위원회 종료 후 정부는 후속조치를 할 수 있다', '위원회 소관 사무는 행안부에서 승계한다'라는 현재의 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얼마든지 직권 조사가 가능합니다.

실제로 담당 부서는 '강제동원 피해 진상 조사 연구'를 주요 업무라고 홈페이지에 올려놨습니다.

결국, 권한이 없는 게 아니라 의지가 없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의 외면 속에 어르신들의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살면 죽을 것인데. 얼마나 살겠소, 이제."

YTN 한동오[hdo86@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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