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뉴스 더콕] 삼성 '무노조 경영'의 그늘...그간 무슨 일이?

[더뉴스 더콕] 삼성 '무노조 경영'의 그늘...그간 무슨 일이?

2019.08.13. 오후 1:59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두 달 가까이 단식을 했고 두 달 넘게 고공농성 중인 김용희 씨.

1982년 삼성정밀에 입사했고, 일하던 곳이 삼성시계로 분사된 이후 노조설립을 추진하다가 1991년 해고됐습니다.

그는 1994년 삼성건설로 복직했지만 오래지 않아 부당한 해외 발령과 대기발령 끝에 사실상 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고공농성은 삼성의 반노조, 무노조 경영에 대한 항의 차원입니다.

삼성은 무노조 경영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수십 년 동안 각종 논란 속에 비판이 제기됐지만 삼성은 노조 설립을 가장 강력하게, 가장 조직적으로 막아온 기업으로 평가됩니다.

오늘 더콕에서는 삼성 무노조 경영의 그늘을 살펴보겠습니다.

삼성 내 첫번째 노조설립 시도였던 1977년 미풍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외친 구호입니다.

통계청이 제공하는 계산식에 의하면 97원은 지금 화폐가치로 800원에 해당합니다.

노조 설립을 추진한 여성노동자들은 최저생계비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회유, 강요, 친인척 협박 등을 통해 노조설립신고는 취하되고 핵심 인물은 해고됐습니다.

1987년에는 6월항쟁의 여파로 시작된 노조 설립 투쟁의 바람이 삼성에 불었습니다.

삼성중공업 민주노조 건설 투쟁으로 불리는 당시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 시도에 사측은 구사대로 대응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당시 복수노조 금지법을 악용해 사측이 노조설립신고서를 하루 먼저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노조 설립은 무산됐습니다.

이후에도 여러차례 노조 설립 시도가 있었지만 삼성의 대응은 일관됐습니다.

이른바 어용노조를 만들어 노조설립 방해했고 핵심 인물들에게는 해고 등의 보복이 가해졌습니다.

삼성전자와 하청 관계인 서비스센터의 노동자들이 삼성전자서비스노조를 만들었을 때는 노조 가입률이 높고 활동이 활발한 센터를 골라 위장폐업 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한 노동자가 "노조가 승리할 때 시신을 안치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습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이 조직적으로 실행됐다는 사실은 각종 문건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1989년 국정감사에서 폭로된 '비상 노사 관리지침'에는 당시 큰 이슈가 됐던 전교조 창립과 관련해 전교조 지지 서명을 방해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문건은 특히 전교조 지지가 노조 설립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밖에 감시, 사찰 등 구체적인 대응 방식이 담긴 문건이 공개됐고, 특히 지난해 삼성전자의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은 무려 6천여 건의 노조 탄압 문건을 찾아냈습니다.

그 중 하나인 서비스 안정화 마스터플랜에는 '노조를 지치게 해서 힘을 빼는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

앞선 사례와 이런 문건들을 종합해 보면 노조 설립에 대한 삼성의 대응에 일정한 유형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해고 사례가 적지 않았지만 사유는 노조 설립과 무관한 것들이었습니다.

삼성 사례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특이점은 '납치를 당했다'는 주장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업무 연관성이 떨어지는데도 외국에 장기 근무시키는 이른바 유배 의심 사례도 여럿 있었습니다.

고공농성 중인 김용희 씨는 세가지 유형 모두를 당했다고 주장합니다.

앞에서 설명한 삼성의 노조 대응 문건들에 MJ, KJ 등의 표현 등장합니다.

MJ는 문제 직원, KJ 가족 직원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삼성은 노조를 문제로 본다지만 우리 사회의 관점에서는 누가 문제인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