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있저] 노동자들의 동반자...故 노회찬 의원 1주기

[뉴있저] 노동자들의 동반자...故 노회찬 의원 1주기

2019.07.23. 오후 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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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변상욱 앵커
■ 출연 : 김영숙 / 국회 환경미화노조위원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고 노회찬 의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든든한 동반자였죠. 오늘 1주기입니다. 아주 특별한 분을 그래서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국회 환경미화 노조위의 김영숙 위원장을 스튜디오로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위원장님. 얼굴 보니까 참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떠오르는데. 김 위원장님은 노 의원하고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셨습니까?

[김영숙]
아무래도 저희가 국회의사당 내의 청소노동자이다 보니까 만나게 된 계기가 제 기억으로는 2011년도, 2012년도에 뵀어요. 그런데 많은 국회의원님들이 의사당이니까 당연히 계시겠죠. 그런데 바쁘게 의정활동 하시다 보면 많이 지나치기도 하시고 인사 정도 하시고 하는데 노회찬 의원님은 제가 그때 기억으로는 가장 저희 가까운 곳에 다가오셔서 지금도 따뜻한 미소를 저희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앵커]
그때 국회 사무처에서 방 빼라고 할 때 아닌가요?

[김영숙]
그때는 2016년도에 청소원 끝나고 사무실이 부족해서 저희가 불가피하게 사무실을 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었어요. 그런데 그때 선거를 통해서 노회찬 의원님이 국회로 입성하셨잖아요. 그때 처음으로 저희가 5월 30일경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때 저희를 청소 노동자들을 특별히 국회 귀빈식당에 저희들을 식사를 초대해서, 그 자리에서 저희는 큰 기대는 안 하고 갔어요, 사실. 그냥 식사 정도, 한 끼 정도 하는 거구나 하고 갔는데 애로사항이 없냐, 부탁할 거 없냐. 그래서 그때 마침 지금 말씀하신 대로 노조사무실하고 휴게실을 뺄 지경에, 퇴고장을 저희가 받았거든요, 그때 당시에는.

[앵커]
쫓겨나게 생겼습니다 얘기를 하셨군요.

[김영숙]
그래서 정말 저희는 다급했고 절실했기 때문에 그 얘기를 안 드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그래요? 사무실이 정 없으면 우리 사무실 같이 씁시다. 그 얘기하시는데 마치 저희가 사무실을 얻은 것처럼 그런 기쁨이 있었고. 그 이후로 저희가 지금은 노조 사무실도 번듯하게 사무실을 갖게 됐고 휴게실도 에어컨 빵빵 나오는 데로 잘 옮겼습니다.

[앵커]
신분도 바뀌셨죠. 용역노동자에서 이제는 신분도 정규직 노동자가 되신 거죠?

[김영숙]
지금도 그때를 기억하면 가슴이 막 뜁니다. 수십 년 동안 용역에 있으면서 저희가 갖은 설움과 아픔을 겪었다면 직접 고용하고 1월 1일날 17년도죠. 저희가 시무식을 참석을 했어요, 처음으로.

[앵커]
국회 시무식에?

[김영숙]
그러면서 저희 신분증을 그때 받았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할 정도로 그런 기억이 생각납니다.

[앵커]
방 빼시오라고 하는데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는데 그러면 내 방이라도 쓰시오 하는 사람이 있고. 그러면서 비정규직으로서 국회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초점이 모아지고 하면서 여론이 달라졌던 거죠.

[김영숙]
그렇습니다.

[앵커]
노회찬 의원은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저희가 부탁을 드렸더니 옆집 아저씨라고 바로 답을 주셨던데.

[김영숙]
왜냐하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가까이에 오셔서 저희들 친히 그냥 저 같은 경우는 장갑 낀 상태로 덥석 잡으시는데 제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옆집 아저씨 아니고는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걸로 제가 생각이 들어서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신 분이라고 그렇게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여러 연설이나 사자후 같은 폭로, 이런 것들이 많았습니다마는. 유명한 2012년 당대표 수락 연설 때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라고 하면서 그 새벽에 그 버스를 타고 가는 비정규직 또는 비정규자라고 얘기할 수도 없는 일용직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죠. 처음 그 얘기를 들으셨을 때 어떤 느낌이셨는지 기억이 나십니까?

[김영숙]
저는 12년도에 그런 연설을 하셨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그분이 안 계시고 나서 그분의 일상들이 많이 알려져서 저도 전날 밤에 아들이 기사를 봤나 봐요. 그런데 제가 새벽에 출근하려고 일어났는데 엄마, 기사 한번 보래요. 그래서 바쁘다 보니까 그래? 그러면 내가 출근해서 봐야지 그러고 사무실에 와서 그 기사를 보는 순간 저희들의 얘기고 제 얘기예요. 그래서 얼마나 통곡하고 울었는지 몰라요, 정말. 그러면서 저희가 발인날 정말 이런 분을 우리가 인사를 안 하면 누가 하겠는가. 계획도 없었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시간 되는 분들끼리 해서...

[앵커]
동료들하고 같이 발인할 때 가셨군요. 하긴 그렇죠. 장례식장에 들어가기가 꺼려지더라고요. 가서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울음이 나오면 어떡하나 고민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노회찬 의원과 청소미화원들의 얽힌 사연 이야기도 했고 방도 다시 찾게 된 얘기도 했습니다마는 지금도 불편하신 게 혹시 남아 있는 게 있습니까?

[김영숙]
굳이 한 가지를 좀 말씀드리자면 저희가 인원이 많이, 청소노동자들이 많이 부족해요. 그래서 병가자들이 많이 생기거든요. 수십년 동안 일해 왔던 그 인원이 계속 일을 해 와서 제일 시급한 게 인원 충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국회 사무처에서도 그 부분을 많이 신경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신경 쓰시는 김에 빨리 좀.

[김영숙]
속히.

[앵커]
과감히 많이 이렇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마는. 그런데 예전하고 좀 국회의원들이 달라졌습니까? 이름도 불러주시고 와서 손도 잡아주시고 또 환히 인사도 많이 나누고 하시나요?

[김영숙]
그 부분을 얘기하면 전 국회 직원들이 저희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희가 피부로 느껴집니다. 정말 국회 직원으로 저희가 존중받고 대접받는 것 같아서. 저희는 요새 의원님들이 그래요. 불편한 거 없냐, 도와줄 거 없냐 그러면 너무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이런 말씀을 서슴없이 얘기하게 됩니다, 지금은.

[앵커]
좀 비극적으로 우리 곁을 먼저 떠나셨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들을 지켜보실 거라고 생각을 하고. 노 의원에게 이 자리에서 영상편지를 만약에 쓰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시고 싶으십니까?

[김영숙]
어떤 말로 표현을 해야 될지. 많은 얘기를 정말 하고 싶어요. 그런데 의원님 같이, 이 자리에서 저희가 같이... 국회의사당에서 같이 봬야 하는데 못 뵌 거에 대해서는 너무 안타깝고 좀 보고 싶고 우리 곁에서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돌봐주실 것 같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저희들 잘 있으니까 의원님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이 자리를 빌려서 평소에 저희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말씀을 전하지 못한 게 좀 많이 마음 한켠이 늘 그랬었거든요.
그래서 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앵커]
국회에서 아마 노 의원이 이 문제를 이야기하고 만나다 보니까 그런 얘기를 저하고 나눴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청소 미화원과 관련해서 아는 얘기 있냐고 얘기를 하다가 제가 그런 얘기를 들려드렸던 것 같아요.

외국의 어느 의과대학에 기말시험 문제가 나왔는데 다들 앉아서 시험을 보는데 시험문제 마지막에 어떤 시험문제가 있었냐면 우리 사무실과 실험실을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니의 이름을 쓰시오. 청소미화원 아주머니의 이름을 쓰시오가 기말시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서 다들 못 썼죠. 나중에 야단을 맞았다고 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겠다고 하는 녀석들이 매일 신세 지고 있는 아주머니들의 이름조차 모른다면 나는 너희들을 믿을 수 없다.

아마 그 얘기를 제가 노 의원에게 전해 드렸던 것 같은데. 늘 관심을 갖고 애정어린 눈빛으로 노조원들을 지켜보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귀한 걸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영숙]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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