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무인계산대 이용해주세요" 패스트푸드점에 온 어르신들

[반나절] "무인계산대 이용해주세요" 패스트푸드점에 온 어르신들

2019.07.20. 오전 08:00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반나절] "무인계산대 이용해주세요" 패스트푸드점에 온 어르신들
AD

※ YTN PLUS가 기획한 '반나절' 시리즈는 우리 삶을 둘러싼 공간에서 반나절을 머물며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기획 기사입니다. 반나절 시리즈 4회는 종로3가역 인근 패스트푸드점에서 무인계산기를 이용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그립니다.


무인주문기(키오스크) 전용 매점인 종로의 한 패스트푸드점. 매장에 들어온 한 어르신이 현금을 손에 쥐고 점원이 서 있는 곳으로 향한다.

점원은 친절한 말투로 "무인계산기 이용해주세요"라고 응대하다가 당황하는 어르신의 모습에 함께 키오스크 앞에 서서 주문을 돕는다.

국내 3대 패스트푸드점의 키오스크 도입률은 60%를 초과했다. 패스트푸드점뿐 아니라 일반 음식점, 병원, 영화관, 공항까지 무인계산기가 들어서는 곳이 늘고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주문 대기 시간이 줄고, 사업자 입장에서는 주문받는 인력을 다른 일에 투입하거나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키오스크 활용이 확대되는 추세다.

하지만 기계 사용이 서툰 일부 어르신들은 무인계산대 앞에서 여전히 머뭇대는 모습이었다.



■ "무인 포스 전용 매장입니다"


[반나절] "무인계산대 이용해주세요" 패스트푸드점에 온 어르신들

수요일이었던 지난 17일 낮 12시. 서울 종로3가역과 종각역 인근에 있는 패스트푸드점들은 어르신들의 '모임 장소'가 됐다. 이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거나 홀로 사색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패스트푸드 매장의 절반 이상이 어르신들로 가득 찼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어르신들에게 최고 메뉴는 햄버거가 아니라 아메리카노와 소프트아이스크림이다. 여름이라 빙수도 인기다. 4시간 동안 햄버거를 주문한 어르신은 찾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무인계산기 전용인 롯데리아 매장에서는 간단한 주문도 무인계산기에서 주문해야 한다.

물론 이곳에 자주 오는 어르신들은 무인계산대 사용법이 익숙하다. 자연스럽게 무인주문기 앞으로 향해 평소 먹는 메뉴를 쉽게 선택한다. 간단히 아이스크림 주문을 마친 할아버지께 키오스크 사용이 불편하지 않냐고 묻자 "에이, 그런 거 없어~"라고 쿨하게(?) 말씀하신다.

[반나절] "무인계산대 이용해주세요" 패스트푸드점에 온 어르신들

하지만 처음 방문하거나 새로운 메뉴를 찾는 경우엔 주변 사람들이나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이었다.

무인계산대로 주문을 한 뒤에도 카운터에 나오는 주문번호를 확인하지 않아 직원들이 "주문번호 확인해주세요", "빙수 시키신 분"을 외치기도 여러 번이었다.

키오스크는 처음 사용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낯선 존재라서 디지털 기계와 거리가 먼 어르신들에게는 어려울 법했다. 나 역시 새로 나온 메뉴를 주문해 먹으려니 온통 영어인 이름에 메뉴 설명이 부족해 버벅거렸다.

이 매장에서 관찰한 27명의 어르신 중 3분의 1이 조금 넘는 10명이 직원 또는 주변에 도움을 청했다.

■ "여기요, 조금 도와주세요"

[반나절] "무인계산대 이용해주세요" 패스트푸드점에 온 어르신들

무인계산기 앞에서 주문하던 한 어르신은 옆에 서 있는 학생에게 주문 방법을 물었다. "치킨 너겟 2개 주문 좀 해주세요, 포장 포장!"

또 다른 어르신은 친구들 6~7명과 함께 들어와 빙수, 커피 등 여러 개 메뉴를 주문하던 중 직원을 불렀다. "여기요, 조금 도와주세요. 메뉴에서 빙수를 못 찾겠네요." 허허 웃으시던 이 어르신은 주문한 메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번호판에 주문 번호가 뜰 때까지 카운터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천천히 메뉴를 읽으면서 주문을 이어가던 한 어르신은 결국 카드 결제에서 막혔다. 마지막 결제 화면에서 카드를 거꾸로 끼우는 바람에 주문이 취소될 뻔했기 때문이다. 옆에서 이 모습을 보고 도와드리려 다가간 기자에게 어르신은 "카드가 안 되네. 복잡하네" 한마디 하신다.

■ 무인계산대로 주문해도 카드보다 현금

[반나절] "무인계산대 이용해주세요" 패스트푸드점에 온 어르신들

무인계산대 전용 매장에서는 키오스크로 주문해도 현금으로 결제하려면 결국 직원에게 가야 하는 구조였다. 그러니까 현금을 이용하려면 '무인 포스'라는 말이 무색하게 직원이 필요했다.

특히 카드보다 현금 사용이 더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경우 더 그랬다. 키오스크를 이용하는 어르신들의 절반가량은 현금을 이용했다. 또 관찰하는 동안 현금 결제를 이용한 이들은 모두 6~70대 이상으로 보이는 어르신들이었다.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마친 어르신들은 1,000원짜리 몇 장과 동전을 꺼내 카운터 직원에게 내고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받아 간다.


■ 무인계산대 없는 매장 가보니..."키오스크? 우린 그런 거 몰라"

[반나절] "무인계산대 이용해주세요" 패스트푸드점에 온 어르신들

오후 4시. 종로3가역 인근에 있는 주요 패스트푸드점 중 유일하게 무인계산대가 설치되지 않은 맥도날드 매장은 2층까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3분의 2가량이 어르신들이었다.

카운터에 줄을 서서 주문해야 해서 주문 대기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편이었지만 그 사실이 중요해 보이진 않았다.

자리가 없어 매장 한편에 서서 커피를 마시던 한 어르신에게 요즘 무인계산대가 있는 매장에 가봤냐고 묻자 "우린 그런 거 몰라, 관심 없어. 그냥 여기 커피 맛이 좋아. 사람이 많아도 여기가 편해서 자주 와"라고 답했다.

맥도날드는 전국 420여 개 매장 중 절반이 조금 넘는 260개 매장에 키오스크가 설치돼있다.

이 매장에 키오스크가 설치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맥도날드 관계자는 "예를 들어 면적이 좁은 매장 등 각 지점의 특성에 따라 키오스크 설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지 고객 특성에 따라 설치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 아는 만큼 활용한다

[반나절] "무인계산대 이용해주세요" 패스트푸드점에 온 어르신들

키오스크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 4~5년 정도 됐지만, 시도해보기도 전에 직원에게 주문을 대신 해달라거나 아예 이용할 생각이 없는 어르신들이 아직 있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 2월 발표한 '2018 디지털 정보 격차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제품 구매 및 예약/예매, 금융거래 등 서비스를 PC, 모바일 등 디지털 기기로 이용하는 장노년층(50대 이상) 비율은 69.8%였다. 일반 국민 평균 84.2%에 비해 낮고, 그중에서도 쇼핑을 하는 장노년층은 34.6%에 불과하다고 조사됐다.

디지털 기기 기본 이용 능력을 측정한 '디지털 정보화 역량'도 장애인(66.9%), 저소득층(85.3%), 농어민(63.0%)보다 장노년 층이 50.0%로 크게 낮았다.

다른 세대나 정보 취약계층에 비해서도 노년층이 디지털 기기를 어렵고 낯설어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키오스크 앞에 선 노년층 중에는 이미 여러 번 이용해서 익숙하게 활용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작은 외국어와 외래어 메뉴들을 천천히 살펴보면서 스스로 주문을 해보려고 노력하는 분들도 분명 있었다.

몇 번 시도하고 묻고, 배우면 무인주문기를 못 쓸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잘 이용하지 못한다고 배제할 게 아니라 디지털 기기에 대한 노년층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4년간 총 86억 원을 투입해 '디지털 문맹'이 된 노인을 찾아가는 디지털 교육을 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시는 애플리케이션 기차표 예매, 택시 호출, 모바일 뱅킹, 키오스크 주문 등 디지털 활용법을 담은 교육 콘텐츠 등을 개발할 계획이다.

70대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는 태어나 처음으로 키오스크를 이용해보고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돋배기(돋보기) 쓰고, 영어 공부도 좀 허고 그리고 카드 있어야 된다!"


YTN PLUS 문지영 기자(moon@ytnplus.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