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왜 그들은 필리핀에서 살해됐나...한인 피살 잔혹사

[와이파일]왜 그들은 필리핀에서 살해됐나...한인 피살 잔혹사

2019.06.22.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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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왜 그들은 필리핀에서 살해됐나...한인 피살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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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국인이었습니다. 이번에도 필리핀이었습니다. 두 손은 묶여 있었고 머리에서는 총상이 발견됐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닌 누군가에 의해 목숨이 끊어진 정황이 뚜렷했습니다. 신분증은 없었습니다. 호텔 열쇠 하나만 발견됐습니다. 현장에서 10km가량 떨어진 호텔, 필리핀 경찰이 숙박 내역을 확인해보니 신원이 밝혀졌습니다. 유명 여행 칼럼니스트 주영욱 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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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진 살해 장소도 불명확합니다. 시신이 발견된 곳에서 살해된 건지, 다른 곳에서 살해돼 시신만 옮겨진 건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살해 동기 역시 아직까진 알 수 없습니다. 피의자를 잡아야 범행 동기를 추궁할 수 있는데 검거되지 않았습니다. 주 씨는 여행업체 대표였습니다. 필리핀에서 새로운 여행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이틀 전, 혼자 필리핀으로 출국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주 씨의 피살이 여행 상품 개발과 연관되지 않았겠냐는 추측도 나오지만 피의자 체포 후 명확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우리 경찰은 필리핀 경찰과 공조하기 위해 현지에 수사팀을 급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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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5월 필리핀 한국인 피살 사건 당시 현지에 급파된 우리 경찰

필리핀에서의 한국인 피살은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2월 세부에서 한식당을 운영해온 것으로 알려진 40대 한국인이 괴한의 총격을 받고 숨졌습니다. 2017년 5월에도 세부에서 여행가이드로 일한 40대가 집에서 총을 맞고 살해됐습니다. 처음 지목된 용의자는 이웃 주민인 필리핀인이었습니다. 숨진 남성의 집 열쇠와 가방을 갖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의문점이 없어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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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필리핀 한인 피살 사건 당시, 용의자로 지목됐던 필리핀 남성들. 이후 진범이 잡히면서 혐의를 벗었다

나중에 밝혀진 범인은 숨진 한국인 남성의 필리핀인 내연녀였습니다. 경찰이 피살된 남성의 SNS를 확인했더니 내연녀와 메시지를 주고받은 내역이 나왔는데요. 내연녀가 사건 당일 남성의 집을 방문한 사실이 고스란히 메시지로 남았습니다. 내연녀는 결국 범행을 자백했습니다. 그녀는 "피해자 집에서 물건을 훔쳤는데 피해자가 그걸 알고 심하게 자신을 때렸고, 이에 격분해 자신의 필리핀인 남자친구와 공모해서 살해했다"고 동기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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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필리핀 한인 피살 사건 당시, 숨진 남성과 내연녀가 주고받은 SNS 메시지. "I`m here now."라는 내연녀의 메시지가 증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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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당일 내연녀가 피해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

더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습니다. 일반 시민도 아닌 필리핀 경찰이, 필리핀 경찰청사 안에서, 한국인을 살해한 겁니다. 2016년 10월, 50대 한국인 사업가가 필리핀 경찰들에게 납치됩니다. 경찰청 마약단속국 경찰 4명이었는데요. 피해자를 차에 태워 경찰청의 마약단속국 건물 옆 주차장으로 데려간 뒤 차 안에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납치범들은 살해 후 전직 경찰관이 운영하는 화장장에서 시신을 불태웠습니다. 납치범들은 범행 2주 뒤 피해자의 가족에게 몸값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돈으로 1억 2천만 원을 받아챙기고 피해자의 목숨마저 빼앗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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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0월, 필리핀에서 살해된 한국인 사업가

이 사건은 당시 필리핀 교민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피해자의 부인을 면담하고 깊은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는데요. 두테르테 대통령은 기존 마약 단속 조직의 해체를 포함한 쇄신책 마련을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필리핀 경찰이 가담한 아주 이례적인 사건만 없었을 뿐, 한국인 피살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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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월,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한국인 피해자 유가족에게 사과하는 모습

외교부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필리핀에서의 한국인 피살 사건은 13건이었습니다. 2016년 9건, 2017년 1건, 2018년 3건이었습니다. 올해 주영욱 씨 피살 사건으로 2019년에도 1건이 추가됐습니다. 해외에서 살해된 우리 국민 10명 중 3명은 필리핀에서 피살됐습니다. 2017년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당시 5년간 해외에서 살해된 우리 국민은 모두 164명, 이 가운데 29%인 48명이 필리핀에서 숨졌습니다. 미국은 21명, 중남미는 19명, 중국은 13명, 일본은 10명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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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사이트에 올라온 필리핀 여행경보제도 지도. 절반 이상은 여행 자제 지역이고, 일부는 여행금지, 즉시 대피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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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사이트의 필리핀 설명. "※ 필리핀은 살인ㆍ납치ㆍ강도 등 강력사건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므로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주황색으로 강조돼 있다

주영욱 씨가 살해당한 곳이 여행금지지역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는데요. 사실이 아닙니다. 필리핀은 지역별로 여행경보 수준이 다릅니다. 주 씨가 발견된 안티폴로시는 여행자제구역입니다. 안전에 유의하면 여행이 가능한 곳입니다. 필리핀에서 여행금지지역은 민다나오의 잠보앙가, 술루 군도, 바실란, 타위타위 군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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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로 본 전 세계 여행경보제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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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금지국은 필리핀(민다나오의 잠보앙가, 술루 군도, 바실란, 타위타위 군도),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시리아, 예멘, 이라크, 아프리카, 소말리아뿐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필리핀 전체를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니 필리핀 여행을 아예 금지시키자는 거죠. 정부가 마음먹으면 가능합니다. 외교부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안전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면 수시로 여행경보단계를 변경할 수 있다고 밝혔으니까요. 하지만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필리핀에는 우리 국민이 많이 놀러 가는 세부와 보라카이도 있습니다. 이곳까지 여행금지지역으로 지정하게 되면, 여행사와 항공사 등 여러 사업이 타격을 입기 때문에 쉽게 결정 내리긴 어렵습니다. 물론 일부 유명 여행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 전부를 여행금지지역으로 지정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결국 외교부의 판단에 달렸고, 여론에 달린 문제입니다.



취재기자: 한동오 (hdo86@ytn.co.kr)
그래픽: 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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