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현지에서 본 유람선 침몰 참사

헝가리 현지에서 본 유람선 침몰 참사

2019.06.17. 오전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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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김정아 앵커, 오동건 앵커
■ 출연 : 김대근 사회부 기자, 김대겸 사회부 기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아직 3명의 실종자가 남아 있습니다. 유람선 허블레아니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헝가리 다뉴브강에서는 실종자들을 찾기 위한 수색작업과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고 당시와 수습과정 되짚어보는 것 중요할 텐데요. 헝가리 현지에서 소식을 전했던 취재기자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사회부 김대근, 김대겸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일단 김대근 기자, 지금 사고 관련해서 아직 3명의 실종자가 남아 있지 않습니까? 현재 수색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김대근]
아직 사건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 33명이 탑승해서 7명이 구조되고 23명이 숨졌습니다. 그리고 아직 3명이 실종 상태입니다. 사고지점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수색작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 책임을 가리고 사고원인을 조사하기 위한 절차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헝가리 법원에서 바이킹 시긴호 선장에 대해서 보석을 허가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인데요. 유리 차플린스키 선장은 중대한 과실로 인명사고를 낸 혐의 등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6200만 원의 보석금에 전자발찌 착용 등을 조건으로 해서 보석이 허가가 된 겁니다. 이걸 두고 논란이 되면서 헝가리 검경에서는 전담팀을 꾸려서 피의자를 철저히 감시하고 그리고 인양된 선박에서도 추가 증거를 확보하겠다, 이런 입장을 밝힌 상황입니다.

[앵커]
사고 발생 당시를 좀 다시 되짚어보겠습니다. 사고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 바로 얼마 안 돼서 출발을 한 거죠, 우리 취재팀이?

[김대겸]
그렇습니다. 사고소식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건 우리 시각으로 지난달 30일 아침 7시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다수의 한국인을 태운 유람선이 침몰했다 정도로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국인 30명 정도가 탔고 그리고 대형 크루즈선과 침몰했다는 사고 윤곽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서 저는 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전화 한 통을 받고 헝가리로 떠나게 됐습니다. 회사에서 급하게 떠나다 보니까 비행편을 가장 빠른 시간대로 구해서 출국을 했는데 이 때문에 취재를 준비할 시간조차 굉장히 촉박했습니다.

[앵커]
비행기 안에서 준비하고 했겠군요.

[김대겸]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는 휴대폰이 안 되다 보니까 제가 출국하기 전에 준비했었던 자료만 비행기 안에서 읽었었고요. 그리고 당시 헝가리 현지 날씨는 비가 내리고 있고 그리고 밤새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정도만 제가 알고 갔습니다. 그래서 비행시간 동안 취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급한 대로 경유지에서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취재상황을 지켜봤고요. 그리고 저희 대사관이라든지 외교부 그리고 여행사 측에 계속 취재를 시도했습니다. 정확히 취재가 안 됐었기 때문에 사고 원인이라든지 이런 탑승 인원도 좀 오락가락했었고요. 그래서 인명 구조가 제일 걱정이 됐었고 그리고 비가 내리고 있는 사고현장은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수습은 제대로 있을지가 가장 가는 내내 걱정됐습니다.

[앵커]
사고 당시 스튜디오에서도 참 긴박하게 상황들을 전하고 있었는데 참 궁금했습니다. 현장 상황은 도착하마자마 어떤 모습이었을지가 궁금한데요.

[김대근]
일단 김대겸 기자가 얘기한 것처럼 저희가 가는 동안에는 인터넷이 안 되다 보니까 경유지나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앵커]
그 사이사이에.

[김대근]
수색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확인하는 게 제일 중요한 일 중 하나였고요. 그래서 그런 내용을 바탕으로 가자마자 시청자 여러분들께 중계를 통해서 현장 상황을 전해 드려야 했는데 현장에 도착한 게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뉴브강이라고 하면 야경이 유명한 곳인데 이게 시간이 늦다 보니까 불이 대부분 꺼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좀 당황스럽기도 했고 그리고 현장 모습을 정확히 보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죠, 워낙 어둡다 보니까. 그런데도 눈에 띄었던 게 바로 강물의 높이와 속도였습니다. 보기에도 수위가 높았고요. 그리고 물이 흐르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습니다.

[앵커]
유속이 굉장히 보기에도 빨랐군요.

[김대근]
그렇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런 상황이 수색 작업이나 그리고 인양 과정에 영향을 미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고 또 날이 많이 추웠거든요. 저희가 도착하기 몇 시간 전까지도 비가 많이 내렸다는 얘기를 현지에서 들었는데.

[앵커]
처음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

[김대근]
그렇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사고 당시에는 얼마나 추웠을까 그리고 비가 많이 내려서 구조작업은 얼마나 어려웠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앵커]
더 답답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도 어려웠을 테니까. 두 주 가까이 머물렀을 텐데 두 기자 다 물어보고 싶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떤 게 있을까요?

[김대겸]
우선 저는 현장에서 기사를 쓰고 있으면 헝가리인들이 한국인이냐고 먼저 물어봅니다. 그리고 나서 외국에서 안타까운 사고를 당하게 돼서 정말 미안하다, 우리도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말을 건네더라고요. 그리고 사고 현장에서 이미 저희가 화면을 통해서 보도해 드렸는데 굉장히 편지도 많이 헝가리인들이 한글을 잘 못 쓰지만 삐뚤빼뚤한 글씨로 편지를 남기고 간 경우도 많았고요. 그리고 현장에 가보면 국화꽃다발도 굉장히 수북히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사고 맞은 첫 주말에는 헝가리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사고 지점인 머르기트 다리 아래에서 아리랑을 부르기도 했었거든요. 그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중에 현지 교민의 설명을 들었는데요. 이게 2017년에 헝가리 학생들을 태운 버스가 이탈리아에서 큰 사고가 나서 16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거든요. 그때 당시에 이탈리아에서 제대로 공조를 안 해 준 부분도 있었고 그리고 어쨌든 그런 큰 사고의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번 사고에 대해서 더 안타깝게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앵커]
김대근 기자들은 가족들을 만났죠?

[김대근]
그렇습니다. 김대겸 기자 같은 경우에도 실종자 가족분을 만나서 안타까운 사연을 듣기도 했는데 저도 실종자 가족분들 그리고 구조된 분들의 가족분들 이렇게 만나려고 시도를 하고 실제로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취재진, 언론의 관심 자체를 많이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앵커]
그럴 수밖에 없겠죠.

[김대근]
그렇죠. 그리고 또 오히려 저희가 이런 아픈 부분을 건드리는 게 아닌지 이런 고민도 계속하게 됐거든요. 실제로 가족분들을 찾아갔다가 좀 돌아가달라 이런 얘기를 듣고 발길을 돌렸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이후에는 가족들이 원하지 않는데 이렇게 억지로 만나려고 한다거나 좀 무리한 취재를 하는 건 지양하자 이렇게 방침을 정하고 사안에 접근하려고 노력했고 또 추가적으로 말하자면 날씨 얘기를 하고 싶은데 햇빛이 정말 강하더라고요.

[앵커]
많이 탔어요.

[김대근]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희 취재진이야 상관이 없는데 예를 들면 구조나 수색작업을 하는 구조대원들 같은 경우에는 수위가 높았고 그리고 물살도 세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이런 강한 햇살 아래 무더운 날씨도 좀 걸림돌, 어려움이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앵커]
실제로 본격적으로 인양작업을 하거나 수색작업을 할 때는 날씨가 낮 기온이 굉장히 올라가 있었죠?

[김대근]
그렇습니다. 30도를 보통 넘는 날씨였는데 기온뿐만 아니라 햇살 자체가 굉장히 강하고 그리고 그늘이 많이 없어서 좀 어렵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앵커]
한국에서 스튜디오에서 소식을 전하는 저희도 실종자들을 언제 찾을 수 있을까, 또 인양작업하다가 지연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굉장히 답답한 순간들이 많았거든요. 김대근 기자, 현지에서 직접 느낄 때 가장 답답했던 순간은 어느 순간입니까?

[김대근]
일단 인양이 언제 될 것인가, 이게 또 많은 관심을 받지 않았습니까? 왜냐하면 일단 헝가리 측에서는 수중에서 선체 수색을 하는 건 안 된다고 못을 박은 상황이었고요. 수중 수색을 하고는 있었습니다마는 혹시 모를 상황 있지 않습니까? 희생자, 실종자분들이 선체 안에 있을 수 있고요. 그래서 인양을 해서 안을 들여다보는 것도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였는데 그래서 인양을 하기 위한 대형 크레인, 클라크 아담이 언제 현장에 도착할지 이게 관심이 높았습니다.

[앵커]
현지에서 답답했던 그런 순간들 얘기를 해 주고 계셨는데요.

[김대근]
결국에 크레인선이 언제 도착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이었는데 수위가 높아서 머르기트 다리, 그러니까 침몰 현장인 머르기트 다리 아래를 통과하기가 어렵다. 그러면서 생각보다는 사실 이 크레인선이 빨리 움직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정박을 하더니 사흘이 훌쩍 가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도 가서 선장에게 언제쯤 출발할 수 있을지, 수위는 어떤지 매일 물어보고 체크하고 이런 확인하는 시간이 지났었는데 결국 구조당국에서도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양선을 이용해서 그 머르기트 다리 아래를 지나는 그런 방식을 활용했고요. 그래서 결국에 그 침몰한 선박을 인양하는 그런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앵커]
한국과 헝가리 양국 구조대가 함께 논의해가면서 여러 가지 작업들을 진행을 했는데 양국의 공조 옆에서 취재할 때 볼 때는 어때 보였습니까?

[김대겸]
우선 제가 봤을 때는 양국 간의 공조는 대체로 잘 됐다고 보였습니다. 다만 선체수색방식을 두고 약간 처음에 이견이 있었는데요. 그러니까 우리 측 같은 경우에는 선체 내부에 희생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선체 내부에 진입을 해야 된다 이런 입장이었고요. 헝가리 측에서는 수중의 유속도 굉장히 빠르고 시야도 좋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안전을 고려해서 굉장히 위험하다, 이건 불가능하다 이런 입장이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사고 초기에 수중수색에 투입됐던 헝가리 잠수사가 사고를 당할 뻔했기 때문에 잠수 요원의 안전을 고려해서 하루빨리 선체를 인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차례 논의과정도 거쳤고요. 그 이후에도 인양 준비 작업을 하면서 희생자 수습과정에서 굉장히 공조를 잘하는 모습을 보였고요.

다만 좀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언론을 대응하는 방식에 있어서 클라크 아담이 사고지점에 도착하는 시기라든지 아니면 인양이 언제쯤 이루어질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헝가리 측과 우리 측의 설명이 좀 약간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 양측 간의 공조가 잘되고 있는지 그런 부분에서는 약간 의구심이 들기는 했습니다.

[앵커]
지금 사실 이야기를 더 나눠보고 싶은데 조금 시간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중간에 속보가 들어오는 바람에 다 못 들었는데 이어지는 오후 뉴스 시간에 또 취재 후일담 들어보는 시간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더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더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헝가리를 다녀온 두 취재기자와 함께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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