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이거실화냐] '강원산불' 한 달 후 참담한 현장을 가다

[제보이거실화냐] '강원산불' 한 달 후 참담한 현장을 가다

2019.05.17. 오후 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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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다. 이번 주 “제보이거실화냐”는 지난달 우리 모두의 관심사였으나 지금은 기억 속 어딘가 묻어놓은 고성, 속초 산불 피해 지역을 다시 한번 찾았다.

“태호씨, 유튜브 라이브 해야 할 거 같아요. 일단 출발하죠.”

2019년 4월 5일 오전이었다. 아직도 그날 아침 팀장님의 말을 잊을 수 없다. 출근길의 여독도 채 다 풀지 못한 09시 03분에 날아온 1박 2일짜리 출장 통보였다. 전날 발생한 강원도 산불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서 수많은 언론사가 취재를 나갔고, 그중 하나가 바로 필자였다. 뜻밖에 여정에 머릿속은 온갖 걱정으로 가득 찼지만, 미처 그런 참경까지는 상상도 못 했다. 현장은 뉴스를 통해 보던 것보다 훨씬 피해가 심각했다. 마을 하나가 통째로 불에 탄 곳도 있었고, 수백 평은 돼 보이는 사업장이 검은 재로 뒤덮인 곳도 있었다. 이재민들의 허망한 심정은 이로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필자가 인터뷰한 이재민 중에는 자자손손 100여년을 살아온 고택을 잃은 분도 계셨다. 그리 크지 않은 대피소 여기저기서 당장의 허망한 심정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2019년 5월 13일, 강원도 고성을 다시 찾았다. 최초 발화지점으로 알려진 전신주는 이미 새것으로 교체됐다. 피해 지역 곳곳에서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어떤 집은 벌써 시멘트를 다시 바르고 벽을 칠하는 곳도 있었고, 또 어떤 집은 다시 밭으로 나와 모종을 심고 있기도 했다. 언뜻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이재민들은 아직 부족한 것들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은 미비하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민가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다보니 자영업을 비롯한 기업 사업장의 복구와 지원은 차순위로 밀렸다. 하지만 피해가 가장 심한 강원도 고성군에는 영세 자영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산불 피해 당시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한 폐차장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겨우 다시 영업을 개시했지만, 고성군 토속면의 한 철물점은 화재 이후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건물은 무너지고 있었고 주위에는 각종 공구가 간신히 형체만 알아볼 수 있게 쌓여 있었다. 기업으로 분류된 폐차장과 철물점은 자력으로는 재기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집만 다시 올리면 바랄 것도 없어요.”

펜션을 운영하던 안대환 씨는 노후자금을 모두 투자해 만든 펜션을 한순간에 잃었다. 사라진 펜션은 소중한 일터였다. 당장 생계가 막막한 그가 바라는 것은 다시 그의 일터를 찾는 것뿐이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해서인지 피해를 본 사업장 곳곳에는 누군가의 책임을 묻는 현수막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불에 그을린 채 앙상하게 남은 건물 잔해들은 마치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화재로 인해 간접적인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시장 상인들이다. 취재를 위해 속초의 한 시장을 찾았을 때, 상인들은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한창 붐벼야 할 수산시장은 한산하다 못해 스산했다. 여느 때라면 성수기가 이제 막 시작할 무렵이지만 화재 이후 관광객들이 발을 끊자 시장은 활력을 잃었다. 비성수기 때보다 매출이 준 상인들은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4월 한 달간 우리 일상을 채웠던 많은 일이 이재민들에게는 사치였다. 피해를 복구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도 피해 지역에는 많은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경제적 지원은 물론, 피해자들의 심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 문화적 지원도 필요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도움은 대중의 지속적인 관심이 아닐까? 이 글을 읽는 짧은 순간이라도 다시 한번 이재민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기를 바란다.

제작: 서정호(hoseo@ytn.co.kr)
박태호 PD(ptho@ytnplus.co.kr)
유예진 PD(gh8767@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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