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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터view] 산업화의 그늘에서 핀 인권의 꽃, 녹색병원
Posted : 2019-04-13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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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인터뷰]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당당히 올림픽을 개최한 대한민국. 사상 유례없던 급속한 산업화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지만, 산업 역군으로 추앙받았던 노동자들의 건강을 책임져주지는 못했습니다.

전 국민이 서울올림픽 개최에 들떠 있던 1988년. 15세 꽃다운 나이의 소년이 공장에서 일한 지 한 달여 만에 수은중독에 걸려 사망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문송면 군의 사망 사건은 국내 최대의 직업병 사건인 원진레이온의 산업재해 피해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일본 동양레이온이 헐값에 넘긴 인조견사 제조 기계가 국내에 들어옵니다. 1980년대까지 대한민국의 산업화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이 기계가 있었던 곳은 국내 최대 인견 제조 업체인 '원진레이온'.

한 때, 입사만 하면 결혼은 물론이고 넉넉한 삶이 보장되었다던 원진레이온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은 1981년이었습니다. 국내 최초의 직업병 환자가 발생한 1981년 이후, 노동자들 사이에서 공장을 가득 메웠던 가스의 유독성에 대한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회사와 정부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했습니다.

1988년 문송면 군의 사망 사건 이후 밝혀진 이 가스의 정체는 독일이 유대인 학살에 사용했던 '이황화탄소'였습니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월평균 320시간씩 들이마시던 이 가스는 전신 마비, 언어장애, 정신이상을 유발하는 독가스입니다.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고통받던 노동자들을 강제로 퇴사시킨 회사와 이런 회사에 무재해 2만 5천 시간 표창을 했던 정부의 안일했던 대처로, 원진레이온 직업병 환자들의 상태는 급속히 악화하였습니다. 원진레이온 사건은 지금까지 1000명에 가까운 직업병 환자와 23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국내 최대의 직업병 사건이자, 세계 최대의 이황화탄소중독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들은 오랜 시간의 투쟁 끝에 국가를 상대로 산업재해에 대한 피해 보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개인의 피해를 구제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재단을 만들어 산업재해 피해자들을 위한 활동에 나섰고, 직접 병원을 설립해 사회적 약자들과 산업재해 피해자들을 돌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1999년 구리 원진녹색병원이 개원했고, 2003년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녹색병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원진직업병관리재단 양길승 이사장은 "작고 낮은 목소리지만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서 해왔던 일은 힘든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거창하지 않은 이런 일들이 세상을 조금씩 달라지게 할 것으로 믿는다."며 "녹색병원의 목표는 모두가 건강한 몸으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와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원진 직업병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서 기금을 출연해 만든 녹색병원의 전 직원들은 매월 월급의 1%를 기부해 의료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조용한 울림이 되고 있습니다.

원진레이온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1988년 이후 30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산업재해 사망자 숫자는 1988년 1900여 명에서 2017년 1957명으로 오히려 늘었습니다.

김태형 [thkim@ytn.co.kr]

시철우 [shichulwoo@ytn.co.kr]

이자은 [leejaeun90@ytn.co.kr]

그래픽: 우희석

도움: 원진직업병관리재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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