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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현실판? 황당한 교수 수발 매뉴얼
[와이파일]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현실판? 황당한 교수 수발 매뉴얼
Posted : 2019-03-16 09:00
 

[와이파일]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현실판? 황당한 교수 수발 매뉴얼


● 사과 1/3 쪽·오렌지 1/2 쪽·배 1/4 쪽·저지방 우유 대령

"사과 1/3 쪽, 오렌지는 1/2 쪽, 배는 1/4 쪽으로 잘라 껍질을 벗겨
접시에 담아 교수님 책상에 올려놓는다"
성신여대 ○○학과 조교 업무 지침의 일부입니다.
교수님이 오는 날은 연구실에 에어컨 또는 난방기, 컴퓨터를 미리 켜놓고 물도 미리 떠놔야 합니다. 수업 1시간 전 야쿠르트 아주머니에게 받아온 저지방 우유도 준비합니다. 교수가 저지방 우유를 선호하는지 방학 중엔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도 적어 놨습니다. 수업 중 마실 교수의 홍차는 겨울에는 뜨겁게, 여름에는 차갑게 미리 우려놓고 교탁에 대령해야 합니다. 점심 도시락을 사 오고 교수님의 휴대전화 번호로 현금영수증도 발급해야 하고 교수 퇴근 후에는 설거지와 쓰레기 버리는 일까지 해야 합니다. 교수님이 대출받은 도서를 반납하는 것도 조교의 몫입니다.
이런 업무 지침은 A4 용지 9장짜리 문서로 정리됐습니다.
강의용 기자재 관리 같은 일반적인 조교 업무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먹고 마시는 지극히 사적인 일을 시중드는 것들입니다.

[와이파일]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현실판? 황당한 교수 수발 매뉴얼


●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현실판?

교수 수발 매뉴얼은 마치 소설 원작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현실판을 보는 듯합니다.
영화에서 커피 심부름부터, 쌍둥이 아들의 숙제, 도서 구매 등의 사적인 일을 시키던 편집장의 행동. 매뉴얼의 내용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마지막 주인공을 위해 친필 추천서를 써주며 훈훈한 결말을 맺은 영화와 교수 수발 매뉴얼의 현실도 달랐습니다.
해당 학과의 전 조교 A 씨는 지나칠 정도로 사적인 일을 시키는 교수의 지시에 점심을 거르거나 대학원 수업에 빠지는 일도 빈번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전 조교 B 씨는 하루는 학과 사무실에 계속 전화가 울려 받았더니 연구실 바로 앞에 있는 정수기를 두고 연구실로 물을 떠 오라는 지시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A 씨는 교수의 이런 갑질을 지난해 말 대학 측에 알렸습니다. 하지만 대학 측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무시했고, 관련 내용이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오르고 나서야 자체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조교들의 증언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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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과 출신에 대학원생도 아닌 조교가 대리 채점

밤새워 공부해온 뒤 작성한 시험지를 교수가 아닌, 타과 출신에 대학원생도 아닌 학사 조교가 채점했다는 것을 알면 학생들이 얼마나 허탈할까요?
지난달(2월) 한 커뮤니티 앱의 해당 대학 익명게시판에 조교의 시험지 채점 문제를 지적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한 시험지를 조교가 채점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조교에게 채점을 시키는 대학가의 관행으로 보기에도 도를 넘었다며 분노했습니다. 특히 서술형 답안지의 채점자가 대학원생도 아닌 타과 출신 학사 조교에게 시킨다는 사실이 충격이라고 했습니다.
공론화시켜야 한다, 언론에 제보해야 한다는 반응도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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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발 매뉴얼과 함께 대리 채점을 털어놓은 전 조교 A 씨는 ○○학과와는 전혀 관련 없는 학과를 졸업했고, 대학원생이 아닌 임기 1년의 계약직 학사 조교였습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끝날 때마다 교수에게 학생들이 한 줄 한 줄 써내려간 시험지 채점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밤새워 공부해서 낸 시험지를 전공 지식이 없는 자신이 채점해도 되는지, 학생들의 노력을 이렇게 자신이 평가해도 되는지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털어놨습니다.
하지만 계약직 신분이라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대리채점은 자신보다 먼저 일한 조교도 똑같이 해오던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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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채점했으니 책임도 네가 져야 한다"

2011년 대학원생으로 입학해 조교로 일했던 C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벌써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당시 악몽 같았던 조교 생활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시험 기간이 끝나고 교수가 내미는 수십 명의 시험지.
특히 영어 해석에 자신이 없는데 영어 서술 시험지까지 채점했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이 작성한 답안지를 제대로 해석해서 점수를 매긴 것이 아니라 답안지를 반 정도 채웠으면 반점, 다 채웠으면 높은 점수를 줬다며 제대로 점수를 줬는지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더 황당했던 건 점수를 정정해달라며 학생들이 교수를 찾아올 때마다 교수는 채점은 네가 했으니 네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식의 말을 했다고도 밝혔습니다.

조교의 대리 채점은 이제 학생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문제라고 인식하지만, 졸업할 때까지 해당 교수의 전공 수업을 들어야 하기에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리거나 대학 측에 항의 메일을 보내는 게 전부였습니다. 취재하면서 만난 재학생들은 400만 원이 넘는 등록금이 아깝다고 말했습니다. 교수가 채점을 다른 사람한테 맡긴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교수의 자질이 무엇이냐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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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교수 "조교 매뉴얼 처음 본다…허드렛일 안 시켜"

수발 매뉴얼과 대리 채점 지시 의혹을 받는 교수는 성신여대 ○○학과의 학과장.
해명을 듣기 위해 직접 만났습니다.
학과장은 수발 매뉴얼은 자신도 처음 보는 것이라며 자신은 우유는 물론 과일도 먹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일하고 있는 조교들을 직접 불러 확인까지 했는데, 지난해 9월부터 일을 시작한 대학원생 조교는 교수가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수발 매뉴얼과 대리 채점 문제를 털어놓은 전 조교 A 씨는 취재진에게 해당 매뉴얼은 교수가 직접 파일로 자신에게 전해준 것이라고 앞서 밝혔습니다. 그리고 취재진이 매뉴얼에 적힌 야쿠르트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한 결과 해당 교수를 알고 있으며 지난해 여름까지 우유를 사 먹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교수는 대리채점 역시 단 한 번도 지시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채점한 시험지를 공개하며 다른 필체를 확인해 보라고 했습니다. 기자가 직접 확인해보니 대리 채점을 털어놓은 조교가 채점했다고 밝힌 시험지 자체가 없었습니다. 채점한 필체가 다른 시험지를 발견하자 교수는 일부 객관식이 섞여 있는 과목은 자신과 함께 조교가 같은 자리에서 채점했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리 채점을 털어놓은 조교는 교수와 함께 채점한 기억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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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음해 세력이 포섭한 조교·학생이 꾸민 일"

학과장이기도 한 A 교수는 대리채점과 수발 매뉴얼, 익명 게시판 글까지 모두 자신을 음해하려는 다른 교수들이 꾸민 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성신여대는 지난 2017년 교비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심화진 총장의 자진 사퇴 이후 학과 교수들 사이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취재가 시작된 이후 해당 학과의 또다른 교수들이 학생과 조교들을 대상으로 갑질과 폭언을 일삼았다는 의혹이 추가로 확인됐습니다. YTN은 그것 역시 고발로 판단해, 취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홍성욱 [hsw050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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