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출근하면 '쿨쿨', 세금은 '줄줄'...어느 공사 간부의 민낯

[와이파일]출근하면 '쿨쿨', 세금은 '줄줄'...어느 공사 간부의 민낯

2019.03.12. 오전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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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출근하면 '쿨쿨', 세금은 '줄줄'...어느 공사 간부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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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이었죠. 경기도 고양에서 온수관이 터졌습니다. 땅속에 묻은 낡은 온수관이 갑자기 파열된 건데요. 100도에 육박하는 뜨거운 물이 도로 위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결혼을 앞둔 딸과 예비 사위를 만나고 돌아오던 60대 아버지는 차 안에서 온몸에 화상을 입고 숨졌습니다. 인근을 지나던 시민 50여 명도 다쳤습니다. 시설 관리를 맡은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추가 사고를 막기 위해 한 달 뒤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했습니다.

[와이파일]출근하면 '쿨쿨', 세금은 '줄줄'...어느 공사 간부의 민낯

불시점검한 곳은 난방공사의 한 사업소. 한밤중에 열 시설이 잘 돌아가는지, 사고는 없는지 관리해야 할 제어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현장 책임자인 A과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하고 10미터 거리에 있는 휴게실로 들어갔습니다. A과장은 소파에 누워 감사반이 온 지도 모른 채 쿨쿨 자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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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결과, 이날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주변인들은 A과장이 근무시간 대부분 잠을 잤다고 말했는데요. 이곳 보직을 발령받은 2016년부터 3년 가까이 그렇게 잤다, 밤 11시에 출근하면 휴게실에 들어간 뒤 오전 5, 6시쯤 나왔다고 진술했습니다. 감사에 적발된 그 날도 세탁실에서 작업복을 세탁한 뒤 계속 잠을 잤고, 휴일 근무 때는 현장에서 자기 차를 세차한 사실까지 추가로 나왔습니다. 열 시설 점검 같은 현장 순시는 거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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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직원들은 예전의 이등병만도 못한 내무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A과장에게 걸려온 내선 전화는 대부분 후임들이 받았고, 사내 온라인 강의도 대신 수강했습니다. 양도가 금지된 사내 콘도 이용권을 달라는 A과장의 말에 결국 이용권을 넘겨줬고, A과장이 휴게실에서 매일같이 자는 바람에 후배들은 마음놓고 휴게실 정수기조차 쓸 수 없었습니다. 미리 개인컵에 물을 담아놓고 근무해야 하는 직원도 있었고, 오죽하면 정수기를 추가로 설치해달라는 요청까지 했습니다. 직원들이 설비를 점검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A과장은 식사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는 눈치 없는 말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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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과장의 해명은 이렇습니다. 휴게실에서 잔 건 맞지만 매일은 아니었고 한 달에 4, 5차례 정도였다, 건강검진에서 역류성 식도염과 만성위염 판정을 받았고 체력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본인의 내선전화를 후임자들이 대신 받은 건 맞지만 내가 지시하진 않았다, 근무시간에 세차한 건 맞지만 물세차만 했다, 아래 직원에게 콘도 이용권 양도를 부탁하고 쓴 건 맞지만 나중에 갚아줄 생각이었다, 휴게실 정수기는 기존 정수기에 수질 문제가 있어 내가 직접 요청해서 추가 설치해달라고 했다. A과장은 결국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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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난방공사를 운영하는 돈은 결국 국민 세금입니다. A과장 월급도 우리가 낸 세금입니다. 물론 대다수의 공사 직원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일부라도 이런 비위 직원이 존재하는 게 사실입니다. 심각한 취업난 시대, 당신이 졸면서 일한 그곳은 누군가에겐 졸음을 쫓아가며 공부해서 들어가고 싶은 소중한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한동오 기자
hdo86@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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