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그 후...10년이 흘러도 그 자리에

용산참사 그 후...10년이 흘러도 그 자리에

2019.01.19. 오전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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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2009년 1월 20일, 철거민 5명과 경찰 특공대원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10주기를 맞는 유가족들의 아픔과 고통은 그대로입니다.

김대근 기자가 유족들을 만났습니다.

[기자]
10년이 지난 지금, 용산 남일당 건물터에서는 고층 건물 공사가 한창입니다.

이곳에서 남편을 잃은 김영덕 씨는 돌고 돌아 여기 다시 섰습니다.

예전에는 남편과 복집을 꾸려갔지만, 이제는 노점에서 호떡을 팔아 생계를 이어갑니다.

가족이 함께하던 기억에 기대볼까, 돌아왔지만 홀로서기는 갈수록 힘들기만 합니다.

[김영덕 / 故 양회성 씨 부인 : (진상 규명 요구하느라 남편을) 제가 10년 동안 보고 싶을 때가 없었거든요, 별로. 같이 살아서 같이 벌어서 먹으면 이렇게 고통받지 않고 서로 의지하면서 살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니까 요즘이 제일 보고 싶더라고요.]

망루에 함께 올랐던 아버지를 잃은 이충연 씨도 용산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운영하던 호프집과 같은 이름의 가게를 열었습니다.

화재 책임을 지고 4년간 옥고를 치른 충연 씨.

이곳에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이루고 아픈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충연 / 故 이상림 씨 아들 : 그날의 기억이 하루에도 10번, 20번도 계속 반복되죠. 그리고 그날의 후회들, 같이 살아났어야 되는데 저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그것들이 1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변하지 않죠. 예전에는 거의 매일 쫓기는 꿈을 꿨어요, 누군가에게.]

남일당 건물 망루에서 희생된 또 한 사람, 특공대원이었던 김남훈 경사의 아버지에게도 그날의 기억은 상처입니다.

택시를 몰던 아버지는 손님을 태우고 주변을 지나다 불길에 휩싸인 건물을 봤습니다.

그곳에 아들이 있을 줄이야.

황망한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10년도 짧습니다.

[김권찬 / 故 김남훈 경사 아버지 : 살아 있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지금도. 지나가다 경찰관을 보면 아들 생각이 나고, '우리 아들도 근무하는데' 하다가 '아, 우리 아들은 세상을 떴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때에는 (근무복을) 안아보고, 사진도 보고 그래요. 그렇게 세월을 보내왔습니다, 10년을.]

시간이 흐르고 장소는 변해갑니다.

하지만 남겨진 이들의 기억은 2009년 1월 20일, 그날 그곳에 머물러있습니다.

YTN 김대근[kimdaegeun@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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