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맥뉴스] "집 계약 때 같이 가줍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이색 직업

[쏘맥뉴스] "집 계약 때 같이 가줍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이색 직업

2018.12.21. 오후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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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맥뉴스] "집 계약 때 같이 가줍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이색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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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계약을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이 있다. 이 큰돈이 오가는 계약이 덜컥 무서워지는 순간. 그럴 때 우리는 중개인과 집주인을 믿어야만 하는 결정을 해야 한다. 사회에 나와 처음 집을 갖게 될 성인도 이때는 다시 어린 애가 되어 부동산을 잘 아는 또 다른 '어른'을 찾는다.

부동산 계약에 관해 물어볼 가까운 친인척조차 없다면 누구를 찾아야 할까? 막막한 이들을 위해 '부동산 계약을 함께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아직 제대로 된 명칭도 없지만 윤기쁨(가명) 씨는 지난 8월, 성소수자와 여성,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1인 가구를 위해 부동산 계약을 도와주는 '온라인 상담소'를 트위터에 열었고 이 상담소를 통해 3달 동안 벌써 20명이 도움을 얻어갔다.

윤기쁨 씨를 직접 만나 부동산 계약을 도와주는 일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쏘맥뉴스] "집 계약 때 같이 가줍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이색 직업

기자: 부동산 계약을 도와주는 일이란 정확하게 어떤 일인가? 프로필에는 '버섯 피자' 사진을 걸어두었다. 얼핏 봐서는 신뢰가 안 갈 수도 있겠다.

- 말 그대로 부동산 계약할 때 따라가서 불공정 계약인지, 확인하고 보증금을 잃을 위험이 있는지 함께 검토해주는 역할이다. 저는 법학 석사 학위가 있고, 인권 운동 공부를 많이 했는데 처음에는 주변 친구들이 도움을 요청했다. 퀴어인 친구, 여성, 장애인인 친구들을 도와주다 보니 소수자가 겪는 문제가 부동산에도 그대로 있다고 느꼈다.

기자: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신다.

- 제게 상담을 하는 분 중에는 성소수자분들도 있고 장애인분들도 있다. 계약할 때 성소수자라는 걸 밝히면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저를 통해 불필요하게 드러나거나 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기자: 우리나라는 동성 간에 결혼할 수 없다. 성소수자 커플이 집을 함께 구할 때 겪는 문제가 크다. 부부로 인정이 안 되다 보니 한 명이 죽으면 상대방의 친인척에게 집을 뺏기는 경우도 있다.

- 맞다. 퀴어커플은 서로 법적인 관계로 엮을 방법이 없어서 임대차 계약을 할 때 공동명의로 집을 계약하기 힘들다.
보증금도 나눠 내야 하고, 권리관계가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일단 혼인이 안 된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법적으로 혼인을 하게 되면 '일상가사대리권'이라고 해서 집에 대해 공동명의를 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법률상 대리권이 부여된다. 즉 부부가 각각 자신의 집처럼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퀴어커플은 그게 적용이 안 돼서 별도의 계약서를 작성하기도 하고 임대차 계약을 복잡하게 해야 하기도 한다.

둘 중에 한 명이 사고로 사망할 경우 남은 사람이 집에 계속 살 수 있는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도 필수다.

기자: 퀴어커플 외에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는 어떤가? 기억에 남는 의뢰인이 있다면?

- 외국인 노동자는 언어적인 한계도 있고 나라마다 주거 문화에 대한 관행이 달라서 힘들다. 전세 계약은 우리나라만 있는 제도다. 비자 만료 시기와 관련된 애로사항도 있다.

미성년자라고 밝히고 상담을 한 사례도 있었다. 지역이 멀어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가족과 떨어져서 지내야 하는 상황에서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계약을 거절당했는데, 설령 제가 간다고 해도 법적인 관계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기자: 계약을 도와주지만 그래도 '무료'는 아니다. 부자는 거절한다고 했는데, 자문료는 어느 정도 받는지 궁금하다.

- 돈 벌려고 한게 아니기 때문에 가장 적게 받은 경우는 1만 6천 원을 받았고, 가장 많이 받은 경우는 5만 원을 받았다. 교통비 포함해서 평균 3~4만 원이다.
들인 시간과 노동에 대해 받기보다는 경제적 상황에 따라 받는다. 청소년이나 장애인이면 더 적게 받는다.

간혹 경제적 어려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상담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충 감이 온다. (웃음) 저에게 상담했던 사례 중 가장 안정적이고 깔끔한 계약은 신혼부부 사례였다. 이들도 계약이 이상해서 상담한 게 아니라 확실히 하고자 상담한 수준이었다.

기자: 온라인으로 검토하는 것 외에도 직접 계약에 동행한다.

- 동행이 이 일의 주된 일이다. 임대차 계약이 고도의 법률적 지식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법적인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의뢰인보다는 막연하게 불안하니까 같이 가줬으면 좋겠다는 분들이 더 많다.

대부분이 성인 남성을 주된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깔린 것 같다. 어려 보이거나 여성이거나 말이 어눌하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학생이거나 하는 경우는 기본적으로 온전한 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전문가랑 가면 나으니까 심리적 안정감을 원하는 분들이 많아서 동행하는 게 이 일의 주된 일이다.

기자: 혼자 살며 겪는 어려움에 대해 말해보자. 1인 가구 중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많다. 원룸에는 반려동물을 키울 수 없어 집 구할 때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많이 봤다.

- 반려동물을 키워도 되는지, 혹시 몰래 키우다 들켰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경우도 많다.

반려동물에 관련 법 규정은 없다. 제일 중요한 건 미리 합의를 하는 건데, 계약서에 반려동물을 키우면 퇴거한다는 조항이 적혀있으면 계약을 해제하고 퇴거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될 수 있다.

그런 조항이 없는데도 말다툼으로 반려동물을 키우지 말라고 한다면, 주인에게 반려동물을 이유로 퇴거시킬 권한은 없다.

반려동물을 키웠다는 이유로 벽지와 장판을 새로 해달라는 집주인도 있는데, 계약서에 '원상복구'라는 말은 말 그대로 상식적인 원상 복구다. 즉 사람이 살 수 있는 상태, 주택의 가치를 유지한채로 나가는 건데 개로 인해 벽지나 장판이 손상된 만큼만 해주면 되고, 만일 손상 부분이 없는데도 요구하면 들어줄 필요는 없다.

기자: 부동산 계약을 도와줄 때 집에 대해 조언도 하는가?

- 어떤 집이 좋다고 골라주는 건 부동산 중개행위가 될 수 있어 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동네 분위기가 좋다 이런 정도는 말해 줄 수 있다.

집 계약을 할 때 줄 수 있는 팁은 집주인이 취약한 보안 시설을 보충해 줄 만한 사람인지, 주변에 누가 사는지, 이웃은 어떤지를 보는 게 중요하다. 1층이라도 집 주인이 방범이나 보안을 추가로 해준다면 마냥 위험하다고 볼 수는 없다. 결국 '사람'이 문제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이라고 집주인이 맘대로 문 열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어서 제가 대신 집을 지키고 있던 적도 있다. 한 분은 택배를 제가 대신 받아주기도 한다.

기자: 주거는 정말 중요한 문제인데, 이런 계약에 대해서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는다.

- 학교에서 알려주면 좋을 텐데 이런 거 알지 않아도 될 만큼 주거 공간의 공급이 풍부해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주거공간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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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일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직업이라고 하기엔 돈 벌려고 한 게 아니고, 영업도 하지 않는다. 그가 가진 법적인 전문 지식을 활용하는 사회 활동이지만 정작 의뢰인들이 원하는 것은 법률 지식이 아니라 누군가 동행하고 있다는 안정감이다.

주거 공간을 가지려고 가진 돈 전부에 빚까지 져야 하는 나라에서 그와 같은 직업이 등장한 것은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저의 생계보다는 다른 분들의 생계를 위해서, 같이 살아야 하니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는 기쁨 씨는 집 계약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본인은 정작 철거될 위기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기쁨 씨의 [쏘맥뉴스] 인터뷰 영상은 아래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YTN PLUS 최가영 기자 (weeping07@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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