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N팩트] 양승태 사법부, '박근혜 탄핵심판' 기밀도 빼돌려

[취재N팩트] 양승태 사법부, '박근혜 탄핵심판' 기밀도 빼돌려

2018.08.21. 오후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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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관련 기밀을 미리 빼돌렸던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검찰은 당시 헌법재판소 파견 판사와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고등부장판사들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취재기자 연결해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신지원 기자!

당시 탄핵심판에 관한 헌법재판소 논의는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됐는데, 어떤 내용이 왜 유출된 건가요?

[기자]
지난해 탄핵심판 과정에서 가장 관심이 높았던 부분은 헌재 내부의 논의 방향과 결정 시점입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 등 수뇌부의 의중을 파악해 내부 논의 방향과 최종변론 시점 등 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확보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내용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 이건 당시 헌법재판소의 구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탄핵심판 절차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1월 31일,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퇴임하면서 헌재는 '8인 체제'로 운영됐습니다.

그 자리를 이어받은 이정미 헌재소장도 임기가 3월 13일까지여서, 자칫 현직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7인 체제'에서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는데요.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후임 지명권을 쥔 사람이 바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었습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기는 하지만, 어느 시점에 누가 후임으로 지명되느냐에 따라 한명 한명의 의견이 중요한 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던 상황입니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2월, 양 전 대법원장이 후임 인선에 착수하자 박 전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최종변론을 연기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헌법재판소 내부 움직임이 탄핵심판의 지연과 결정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민감한 상황이었는데, 후임 지명권을 쥔 양승태 사법부가 관련 정보를 캐내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검찰이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앵커]
헌정사상 전례가 없는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내부 정보가 흘러나간 건데, 법원행정처가 어떤 식으로 기밀을 빼돌린 건가요?

[기자]
법원행정처에서는 2015년부터 올해 초까지 최 모 부장판사를 헌법재판소에 파견했습니다.

법원조직법과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헌법재판소가 요청할 경우 법원은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헌법연구관으로 파견을 보낼 수 있습니다.

기간은 1년인데, 연장도 가능합니다.

헌법재판소의 업무를 보조한다는 게 원래 목적인데, 뒤에서는 헌재의 비공개 정보를 몰래 파악해 대법원에 보고한 정황이 드러난 겁니다.

최 부장판사는 이메일을 통해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었던 이규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런데 이때 보고된 내용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USB에서 발견되면서 검찰은 윗선의 지시나 보고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앵커]
오랜 기간에 걸쳐 내부 정보를 보고한 것으로 보이는데, 탄핵심판 말고 다른 내용도 있었나요?

[기자]
당시 법원행정처는 대법원과 이해관계가 얽힌 헌법재판소의 결정 과정에 대한 정보도 입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한정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요.

헌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대법원의 법령 해석이 헌법 정신에 위반한다는 취지입니다.

헌재 결정에 따라 대법원의 판단이 뒤바뀌는 것을 우려한 당시 법원행정처가 파견 판사를 통해 내부 기밀을 빼냈다는 게 검찰의 판단입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대법원이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판결과 국가배상청구권 소멸시효를 형사보상 확정일로부터 6개월로 제한한 판결 등에 대한 헌법소원을 접수해 위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또 지난 2012년 파업노동자를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본 대법원 판결도 포함됐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판결에 반대되는 결정을 내리려 하자,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에 '국가경제 악화가 우려된다'는 내용의 문건을 보고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또 최 부장판사가 파견된 기간에는 대통령 탄핵심판뿐만 아니라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결정도 있었던 만큼, 대외적으로 민감한 정보들이 보고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앵커]
검찰이 서울고등법원과 중앙지방법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는데, 앞으로 수사 방향은 어떻게 됩니까?

[기자]
검찰은 어제 오전 서울고등법원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있는 이 전 상임위원과 최 부장판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혐의 때문입니다.

이 부장판사는 이 밖에도 인권법 연구회 소속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모임을 해산하려 한 사실이 드러나 현재 재판에서도 배제된 상태입니다.

이 밖에 다른 판사들도 '재판 거래' 의혹에 연루된 정황이 발견돼 검찰이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관련 문건이 이미 확보됐거나, 임의수사를 먼저 진행해야 한다며 기각했습니다.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재청구할지 검토하고 무엇보다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윗선에 대한 수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지방검찰청에서 YTN 신지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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