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죽음의 행렬'...연 100일 더 일한다

집배원 '죽음의 행렬'...연 100일 더 일한다

2017.10.13. 오전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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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최근 집배원들이 과로사나 자살 등으로 잇따라 생을 마감하면서 큰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15명, 지난 5년 동안 77명에 이릅니다.

너무 혹독한 근무 여건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데요.

전체 근로자 평균과 비교했을 때 1년에 100일을 더 일하고, 휴가조차 제대로 쓸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연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집배원'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는 장면을 떠올리기 쉽지만, 진짜 일의 시작은 분류작업부터입니다.

새벽부터 출근해, 산더미같이 쌓인 물량을 배달지별로 나누고 나면 시간과의 싸움이 본격화됩니다.

[허영무 / 세종우체국 집배원 : 출퇴근 시간 엘리베이터 문제도 있고. 여기는 입주키가 없으면 경비실에서 거의 문을 안 열어줘요. (지금 엘리베이터 때문에 이렇게 빨리 뛰시는 거죠?) 네, 그런 것도 있어요.]

우편함에 꽂아 넣으면 되는 일반 편지와 달리, 점점 더 늘어나는 등기나 택배는 훨씬 더 힘들게 합니다.

[허영무 / 세종우체국 집배원 : (등기가 한번 안 받으면 곤란하시겠어요?) 네. 일반 등기는 두 번 방문 드리고요. 많이는 3번 정도. 보통 까다로우신 분들은 시간 맞춰서 가져다 달라고 하니까. (그럼 시간 맞춰서 가져다 드려요?) 네. 어쩔 수 없어요. 안 그러시면 민원을 올리시니까.]

시골은 절대적인 배달 물량은 도시보다 적지만 이동 거리가 훨씬 깁니다.

[오기덕 / 청주남이우체국 집배원 : 시내 같은 경우는 길어야 20~30km 안 뛰는데 여기 같은 경우, 저희들 같은 경우는 많이 뛰는 사람들은 130km, 120km 조금 가까운 사람은 80km 이럽니다.]

집배원 한 명이 하루에 배달해야 하는 물량은 천 건 이상입니다.

이렇다 보니 집배원들의 1년 평균 근로 시간은 우리나라 취업자 평균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하루 법정 근로시간인 8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1년에 100일가량을 더 일하는 셈입니다.

또 한 사람이 빠지면 예비 인력 없이, 기존 인원이 일을 분담해야 하는 구조라 휴가는 거의 쓰지 못합니다.

[오기덕/ 청주 남이우체국 집배원 : 빠질 수도 없어요. 빠지면 서로 욕먹는 거야. 휴가도 없어. 여기는. (휴가가 없다고요?) 네. 휴가가 있는데 휴가를 못 가니까 없다는 이야기죠. 말하자면. 내가 가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니까.]

오랜 기간 이어진 고강도·장시간 노동이 영향을 미쳐 올해만 15명, 최근 5년 동안 77명이 과로사나 자살 등으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이정희 /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 평생 이 업무에 종사해 오셨던 분들이 누적된 그런 육체적인 피로나 오랜 기간 장시간 노동을 해 온 것에 따른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추정을 하는 것인 거고요.]

급기야 고용노동부가 실태조사에 나섰지만, 실효성 없는 권고에 그쳤습니다.

집배원이 공무원 신분이어서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무원 복무규정을 바꾸고 인력을 확충하면 되지만 정부가 집배원만을 위한 복무규정을 만들 수 없다거나 사업 적자를 이유로 난색을 드러내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YTN 한연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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