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N팩트] 사법계에도 불거진 블랙리스트 의혹

[취재N팩트] 사법계에도 불거진 블랙리스트 의혹

2017.06.20. 오후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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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제 8년 만에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직접 조사하겠다고 결의해 양승태 대법원장이 수용할지 주목됩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법관회의 요구대로 조사 권한을 위임하면 조사결과에 따라 큰 파문도 일 것으로 보입니다.

최재민 선임기자 연결해서 어제 전국법관대표회의 결의 내용과 이에 따른 앞으로의 파장을 전망해 보겠습니다.

판사 100명이 참여한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비판적인 법관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관리했는지 확인하겠다고 결의했는데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알려주시죠.

[기자]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대법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법관들의 개인 성향과 동향 정보를 수집하고, 대법원에 비판적인 성향의 판사 명단을 만들어 관리했다는 겁니다.

이 문제는 법원행정처가 법원 내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 축소를 위해 부당한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과정에서 함께 불거졌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는 이규진 전 양형위 상임위원이 국제인권법연구회에 일부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런데 법관회의는 대법원의 자체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100%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앵커]
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게 법원행정처 기획행정 업무를 담당한 판사의 컴퓨터를 진상조사위가 직접 확인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은 거죠?

[기자]
앞선 진상조사위는 업무용 컴퓨터와 이메일 서버에 대한 조사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고영한 처장이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의혹의 문서나 이메일을 만들어 관리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작성자의 동의가 없는 한 처장에게 수락 권한이 없다고 못 박은 겁니다.

또한, 보안유지가 필요한 문서들이 많다는 이유도 수용하지 않은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같은 법원행정처의 비협조로 임의 제출 방식으로만 조사를 진행해 진실 규명에 한계가 있었다는 게 법관회의의 판단입니다.

[앵커]
양승태 대법원장이 법관회의의 요구를 수용할지 주목되는데, 법관회의는 일단 강경한 입장인 것 같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법관회의는 조사 착수 전부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이규진 전 상임위원을 비롯한 기획조정실 법관들의 지난해와 올해 업무용 컴퓨터의 보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5명의 소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에 나서겠다며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적극적인 지원 약속까지 전제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협조하지 않으면 법관회의에 보고해 추후 일정을 결정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앵커]
그런데 법관회의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기자]
회의 참석자 사이에서는 이번 법관회의 개최를 주도한 인권법연구회 측이 사실상 의사결정 과정을 독점했다는 불만이 나왔습니다.

한 회의 참석자는 미리 정해진 결론을 향해 달려갔고 인권법연구회 관계자를 제외한 나머지 판사들은 들러리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법원 내부에서는 전체 법관 대상으로 법관회의 결과에 대한 설문조사를 거쳐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앵커]
어제 회의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기자]
어제 회의에서는 법관회의 의장으로 이성복 수원지법 부장판사가 선출됐습니다.

인권법연구회 소속인 이 부장판사는 연수원 16기로 2009년 신영철 전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논란 당시 평판사들의 반발을 주도했던 인물입니다.

어제 회의는 철저하게 비공개로 진행됐고 회의가 열리는 사법연수원 3층 대형 강의실 입구에는 경비 인력이 배치돼 100명의 참석자를 제외하고는 입장을 막았습니다.

언론의 참석자 명단 공개 요구도 거부했습니다.

법관회의 요구대로 양승태 대법원장이 조사권한을 위임하면 조사결과에 따라 큰 파장이 몰려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양 대법원장이 조사를 거부하면 대법원과 일선 판사들 사이 대치 국면이 전개돼 불신의 골도 깊어질 전망입니다.

[앵커]
어제 회의를 주도한 인권법연구회는 어떤 조직인가요?

[기자]
1988년 6.29 선언 후에도 제5공화국의 사법부 수뇌부가 유임되면서 발생한 2차 사법파동으로 창립된 진보성향 판사들의 모임이었죠.

바로 우리법 연구회인데요.

박시환 대법관과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우리법 연구회 회원이었는데, 2010년 회원 명단이 공개된 뒤 탈퇴자 잇따르자 해산됐습니다.

이듬해인 2011년에 출범된 게 국제인권법연구회입니다.

일종의 우리법 연구회의 후신이 국제인권법연구회입니다.

현재 전국 판사는 3천여 명에 이릅니다.

법원 내에 등록된 학술단체는 15개입니다.

이 가운데 국제인권법연구회는 480명이 회원으로 등록해 법원 내 최대 모임입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은 우리법 연구회 못지않은 소신 판결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앵커]
양승태 대법원장이 추가 조사 요구에 응할지는 미지수이지만 매우 곤혹스럽겠어요.

[기자]
법원행정처에 대외비 문건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어 수용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관회의에서 결의사항을 정식으로 보내오면 검토할 예정이라며 수용 여부를 당장 말하기는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사실 이번 사태는 법원 내 이른바 엘리트 판사의 요직 독차지와 맞물려 내부의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오는 9월 퇴임을 앞두고 사회적인 개혁 분위기와 맞물려 법원에서도 변화의 요구에 직면한 상황입니다.

[앵커]
사법계에 불거진 이른바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시민단체가 양 대법원장을 비롯한 전·현직 법원행정처 고위직을 고발했는데 이 사건이 검찰에 정식 배당도 됐죠?

[기자]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지난 15일 고발한 사건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배당됐습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수집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검찰은 고발 내용과 자료 검토를 거쳐 본격 수사에 나설지 판단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5차례의 사법파동이 있었는데

특히 1988년과 1993년 벌어진 2차, 3차 사법파동 때는 당시 김용철, 김덕주 대법원장이 옷을 벗기까지 했습니다.

이번 사건도 앞으로의 상황에 따라 과거 사법파동 이상의 파장도일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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