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냄새가 난다"...사기꾼 취급당한 의인

"프로 냄새가 난다"...사기꾼 취급당한 의인

2017.04.23. 오후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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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음주 뺑소니 차량을 추격하다가 사고가 나 장애까지 생기고 극심한 생활고를 겪던 의인이 주변의 권유로 정부에 의사상자 신청을 했지만 결국 탈락했습니다.

의인이 받은 경찰청장 표창도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요.

알고 봤더니 이유가 황당했습니다.

YTN이 당시 정부 회의록을 입수했는데 프로냄새가 난다며 사기꾼 취급을 하는가 하면, 위험을 자초했다는 등의 어이없는 이유를 들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주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오늘도 김지욱(가명)씨의 하루는 강한 진통제와 함께 시작됩니다.

계속되는 고통에 일상은 엉망이 돼버렸고 가장으로서 생계를 꾸리지도 못합니다.

한때는 누구보다 건강했던 김 씨.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사건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택시기사로 일했던 김 씨는 길 건너편에서 앞 범퍼가 부서진 채로 황급하게 내달리는 차량 한 대를 목격하고 바로 직감했습니다.

[김지욱(가명) : 아 저거 뺑소니다. 차량 번호를 내가 외워뒀죠.]

그리고 곧바로 추격이 시작됐습니다.

도심을 가르며 시속 10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질주하는 뺑소니 차량! 뒤쫓는 김 씨를 따돌리기 위해 위태로운 역주행을 시도하는데요.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멈추려던 김 씨!

그러나 차가 미끄러지면서 공중전화부스와 가로등을 잇달아 들이받았습니다.

도주했던 뺑소니 차량 운전자는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 붙잡혔고 조사 결과, 당시 만취 상태에서 운전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일로 김 씨의 용기 있는 행동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고 경찰청장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렸습니다.

[김지욱(가명) : 잘 걷지 못하고 목이 너무 아파요. 처음에는 (목 척수에) 쇠를 6개를 박았는데 두 번째 수술할 때 6개를 더 박아서 12개가 된 거예요. 하늘을 못 보고 땅을 못 본다는 거죠. 이거는(좌, 우로는) 약간 되는데 위, 아래가 안 된다는 얘기죠. 쇠를 이렇게 다 박았으니까.]

그 사고로 김 씨는 장애 4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진단 받은 병만 무려 열세 개입니다.

더 이상 일을 할 수도 없다보니 안 그래도 넉넉지 않았던 형편이 지금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김지욱(가명) : 치료비가 수술비랑 해서 5천만 원 이상 나왔는데 저는 어떻게 삽니까? 여기 보증금 200만 원짜리예요. 결국 이리로 (이사) 왔어요. 내가 누구한테 이야기하겠습니까? 아들이나 와이프한테 다 제가 죄인인데….]

한 달에 삼십오만 원 가량의 기초생활수급비가 나오지만 매달 이십만 원씩을 병원비로 내고나면 생활은 늘 빠듯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씨는 지인으로부터 한 가지 소식을 듣게 됩니다.

[김지욱(가명) : (지인이) 의사상자를 (신청)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의사상자가 뭐예요?’ 그러니까 좋은 일 하다가 다친 사람이 있으면 나라에서 보상을 해준다고 해서 제가 의사상자에 대해서 좀 알아봤더니 ‘범죄 행위를 저지른 사람을 쫓아가거나 체포하다가 다쳤을 때 보상을 해준다.’ 라는 항목이 딱 있어요.]

민망한 마음도 있었지만 병원비라도 줄여봐야겠다는 생각에 아픈 몸을 이끌고 직접 서류를 마련해 의사상자 신청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김 씨에게 돌아온 건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차가운 결과뿐.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됐던 것일까?

의사상자 인정 여부에 대한 결정은 보건복지부 산하의 의사상자 심사위원회에서 이뤄집니다.

취재진 은 김 씨의 사례를 심사할 당시 작성됐던 회의록을 어렵게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위원들이 나눈 대화에는 황당한 지적이 여러 군데서 발견됩니다.

관련 서류와 증거들을 성실히 준비해 간 김 씨를 도리어 보상금을 노린 사기꾼으로 몰아갔습니다.

[김지욱(가명) : 내가 내 몸 다쳤다고 사기 쳤나? 내가 보상금 받기 위해서 (범인을) 쫓아갔나? 뺑소니니까 쫓아가지 않았을까요? 그건 나쁜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쫓아간 거예요.]

뺑소니 사고는 급박한 위험이라고 보긴 어려운 상황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쓴 후 당한 사고는김 씨 본인이 자초했다는 믿기 힘든 의견까지 있습니다.

사실상 김 씨더러 왜 굳이 뺑소니 차량을 쫓아갔느냐고 문제를 삼은 셈입니다.

[한유진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 : 뺑소니 추격사건은 가장 급박하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까지 급박하지 않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저도 사실 보건복지부측 논리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억울했던 김 씨는 결국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법정 싸움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2016년 8월, 1심 재판부는 뺑소니 차량을 잡기 위해 뒤를 추격했던 김 씨의 행동은 급박한 위해에 처한 피해자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직접적이 고 구체적인 행위가 맞다며 김 씨를 의상자로 인정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항소를 제기 했습니다.

같은 해 12월, 2심 재판부 또한 1심과 마찬가지로 김 씨의 손을 들어줬지만 보건복지부는 대법원행을 택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왜 김 씨를 의상자로 인정 해주지 않았던 것일까?

[보건복지부 관계자 : 저희들이 봤을 때 무리한 추격이 있었다(고 판단했고) 우리 입장에서는 (그런 행동이) 예우할만한 것이냐 이런 걸 봐야 되거든요.]

결국 최근 대법원도 김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복지부가 의상자 등급 판정을 다시 내려야해 또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모릅니다.

김 씨는 사고 이후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열네 번째 병이 생겼습니다.

선의에서 비롯된 오늘의 고통.

‘당신은 의인’ 이라는 당연한 결론이 나올 때까지 왜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 김 씨는 이해하기 어려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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