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엽의 세상읽기] 신재민 전 사무관, 문제는 감수성 차이 아닐까요?

[송태엽의 세상읽기] 신재민 전 사무관, 문제는 감수성 차이 아닐까요?

2019.01.04. 오전 11:40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 기획재정부를 출입했습니다. 아직도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노털'입니다. 후배들의 연락으로 일요일 신재민 씨의 유튜브 방송을 봤고, 후속 기자회견에 대한 기사들을 읽었습니다. 2017년 국채발행 논란은 직접 경험한 상황이 아니어서 궁금했습니다. 신재민 씨가 언급한 사람들과 두루 통화해보았습니다.

먼저 11월의 '국고채 조기 매입 (바이백)' 취소 건입니다. 신재민 씨가 저보다 더 잘 알겠지만 그동안 바이백은 아랫돌 빼서 윗돌을 얹는 용도로 사용됐습니다. 5년 만기 국채를 발행해서 만기가 근접한 국채를 상환하는 평탄화 작업이죠. 그래서 재정중립적이었는데 2017년에는 초과세입이 있어서 논란이 됐습니다. 그날 국채과를 찾아갔던 모 기자의 말입니다. "보도 자료를 내지 않고 취소해서 시장이 요동친 건 사실이다. 국채과에서 전화를 안 받아서 찾아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큰 영향은 없었다" 김동연 부총리가 다음날 "초과 세수 처리 계산 중 실무적으로 다시 살펴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죠?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만 저도 구체적인 정황이 궁금하긴 합니다.

세입이 본예산 대비 23조 원이나 늘었는데 왜 적자국채를 발행하려 했느냐는 의문을 제기했죠? 국민 세금으로 지급하는 이자를 줄이자는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실제로 경제수석실에서 전화가 왔었겠죠. 여러 얘기가 오갔을 것이고 그 중에는 신재민 씨 말대로 "정권 초기에 국가채무를 줄여놓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를 보십시오. 적자국채 발행규모는 당초 계획보다 8조 원 정도 축소됐습니다. 초과세수로 그만큼의 국가채무를 상환한 겁니다. 세입증가에 비해 채무 상환 규모가 너무 작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과 세수 중 8조8000억 원을 이미 추경 재원으로 사용한 걸 감안하면 국가채무 상환 (적자는 매년 순증하기 때문에 적자국채 발행 축소를 채무상환으로 표현함) 규모가 작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세계잉여금으로 이월 (11.3조 원)됐습니다. 이에 대한 핵심 관계자의 말입니다. "연초에 시재금이 10조원 이상 필요하다. 세입 안 들어올 때를 대비해 준비해 놓는데, 잉여금이 없으면 유사시 채권이나 재정증권, 한은 일시차입을 해서 비싼 이자를 물어야 한다. 갑론을박하다가 순리대로 간 것이다"

KT&G 사장 선임 건입니다. KT&G에서는 당시 사장이 '셀프 연임' 하려한다는 논란이 있었고, 폐쇄적인 사추위 구성이 문제라고 언론들이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KT&G는 세수 및 국민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기업입니다. 민영화됐다고 해서 정부가 완전히 손을 놓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실적만으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당시 사장은 연임됐습니다. 기재부가 기업은행을 통해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세운 것이 그렇게 잘못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쓰다 보니 신재민 씨의 문제제기를 조목조목 반박한 꼴이 됐네요. 제 본 뜻이 아닙니다. 저는 신재민 씨가 근무했던 기재부의 선배들을 탓하고 싶습니다. 후배와 소통을 얼마나 안 했으면 퇴직해서 '공익제보' 형식으로 발언하게 하는가 말입니다. '미투'와 '갑질'이란 말이 표준어가 될 정도로 사회 각 분야에서 소수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데, 기재부 선배들의 권위주의는 아직 깨지지 않았단 말인가요. 예산총괄과장이 대통령과 독대하던 독재시절의 권력도 없어졌는데 뭘 가지고 일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기재부 선배들은 이제 '시장 감수성', '젠더 감수성'에 더해 '후배 감수성' 지수를 높여야겠습니다.

4~5년 전 기재부 수습공무원들이 언론사 탐방차 YTN을 방문했을 때 외람되이 2시간 교육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신재민 씨도 그 자리에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술 잘 사주는 선배를 믿지 말고, 바른 길을 가는 선배를 따르라"고 말한 적이 있죠. 바른 길이 뭐냐는 논란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찾는 과정에 충분한 토론과 소통이 있었다면, 결과가 적어도 나쁘지는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송태엽 해설위원실장 [taysong@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