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경제] 월드옥타 신임 회장, “‘세계 한인 경제인들과 조국을 잇겠습니다!”

[생생경제] 월드옥타 신임 회장, “‘세계 한인 경제인들과 조국을 잇겠습니다!”

2018.11.14. 오후 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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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경제] 월드옥타 신임 회장, “‘세계 한인 경제인들과 조국을 잇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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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5:10~16:00)
■ 진행 : 김혜민 PD
■ 대담 : 하용화 세계한인무역협회 회장


[생생경제] 월드옥타 신임 회장, “‘세계 한인 경제인들과 조국을 잇겠습니다!”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해외에 친척 한두 명 없으신 분들 없으시죠? 정말 많은 분들이 세계 곳곳으로 이민 가셔서 삶의 터전을 열심히 일궈왔습니다. 낯선 곳에서 ‘을’로 산 분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을아차차와 맥을 같이 하는 인터뷰인데요. 최근 세계 한인무역협회, 월드 옥타(OKTA)라고 부릅니다. 월드옥타의 신임 회장으로 당선된 하용화 회장,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 하용화 세계한인무역협회 회장(이하 하용화)> 네, 안녕하세요.

◇ 김혜민>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 하용화> 감사드립니다.

◇ 김혜민> 세계 한인 경제인들을 대표하는 자리에 앉으셨으니 얼마나 어깨가 무거우세요?

◆ 하용화> 처음에 할 때는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많은 분들이 각계각층에서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고, 사랑하는 것을 보니까 축하라기보다는 어쩌면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 제가 어깨가 무겁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김혜민> YTN 라디오를 해외에서도 많이 들으세요. 앱을 통해서도 들으시고,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들으시는데, 아마 해외에 있는 많은 한인들이 응원을 보내실 것 같습니다. 먼저 세계한인무역협회. 요즘 월드옥타라고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소개를 조금 해주실까요?

◆ 하용화> 원래는 월드옥타가 바로 세계한인무역협회의 약자입니다. World Overseas Traders Associations라고 되어 있죠? 이것은 대한민국이 어려울 1981년도에 약 101명 정도가 모여서 만들어졌죠. 대한민국의 물건을 해외에 수출하는 데 우리가 돕자, 해서 구매사절단으로 시작했습니다. 아시겠지만, 그때 해외의 모든 분들은 금 모으기도 했고, 한국에 투자도 해드렸고, 이런 분들이 많으셨죠. 그분들이 바로 이 월드옥타의 주역들이었습니다. 그때부터 37년이라는 기간 동안 저희들이 같이 자생적으로 누구의 도움 없이 시작했던 이 모임이 벌써 전 세계 74개국에 147개 도시에 퍼져있고요. 그때의 그 인원 100여 명이 지금은 약 7,000여 명으로 늘어났고요. 아울러서 그 이후에 벌어졌던 저희의 차세대들이 20,000여 명으로 늘어나 있는 전 세계의 최대, 750만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중심 경제 단체로 자리를 잡는 단체입니다.

◇ 김혜민> 시작은 1981년도에 무역을 하시는 분들이 모여서 만든 작은 단체였는데요. 지금은 전 세계, 말씀하신 대로 디아스포라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무역으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경제인들이 함께하는 거죠?

◆ 하용화> 당연합니다. 지금은 13개. 통상으로 보면, 지금 업종별로 전 세계에 나 있는 다양화들. IT, 금융, 물류, 호텔, 요식업, 이 모든 업종에 계신 기업인들, 즉 비즈니스 오너라고 하죠. 자영업을 하시는 1인 이상의 종업원을 둔 분들만으로 구성된 전 세계에 있는 최대의 경제 단체입니다.

◇ 김혜민>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먼 국가, 어디까지 포함됩니까?

◆ 하용화> 제일 먼 곳은 남미죠. 여기까지 오시는 데 어떤 분들은 기다리는 시간 포함해서 약 30여 시간을 거쳐서 오십니다. 물론 자비로 오시죠.

◇ 김혜민> 남미에 있는 경제인들도 지금 이 단체에 포함되어 있고, 아프리카도 있고요?

◆ 하용화> 아프리카도 포함되어 있고요.

◇ 김혜민> 가장 낯선 나라는 어디일까요?

◆ 하용화> 제가 제일 낯선 곳은 보츠와나라고 들어보셨습니까?

◇ 김혜민> 아니요.

◆ 하용화> 저도 이번에 선거를 하면서 회원 중 한 분이 거기 지회장을 하는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보츠와나 혹시 아십니까? 굉장히 제가 막혀서 잘 모릅니다, 그랬더니 이 얘기는 제가 잘 안 하는 얘기인데요, 하면서 우리는 국민소득이 약 8천 불 정도 되는 나라라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아프리카 하면 전부 못 살고, 미개하고, 힘든 나라고 꺼려하시는데 우리나라는 저희들이 오히려 한국분들이 아시면 관광을 좋아하시잖아요? 너무 많이 오실까 봐 쉬쉬하는데, 회장 당선되시면 꼭 한번 와보십시오, 이러시면서 그 나라는 물도 맑고, 공기도 좋지만 사는 데 부족함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모든 자원이 풍부하고, 우리나라 정도의 규모 나라에 사시는 인원은 몇백만 명이 안 된다고 해요. 그러면서 너무 천국과 같은 생활을 한다는 말을 들을 때 우리가 정말 모르는 나라가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김혜민> 그렇네요. 그 곳곳으로 한인 경제인들이 퍼져서 자신들의 일터를 성실하게 열심히 가꾸고 있습니다. 이 많은 경제인들을 네트워크로 묶고, 같이 협력하는 일이 관건일 것 같아요, 회장의 역할 중에서요. 쉽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 하용화> 그렇죠.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지금까지 37년간 저희들이 면면히 내려오는 한민족이라는 하나 때문에 뭉친 거잖아요? 우리가 옥타 바이러스라는 표현을 씁니다. 정말 여기 한 번 걸리면, 1년에 적게는 몇천 불부터 많게는 몇만 불을 쓰면서 봄, 가을은 무조건 보고요.

◇ 김혜민> 함께 모이고요?

◆ 하용화> 함께 모이는 거죠. 그러면서 특히 2년에 한 번씩은 회장 당선자의 나라에서 모이고요. 그런데 1,000여 명 이상이 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놀라울 정도이고, 이 네트워크는 본부가 저희들이 일산 킨텍스에 있습니다. 여기서 전체를 하나로 묶는 일을 하고, 정부에서도 이런 일을 알고, 약간의 도움을 주시고 있고요.

◇ 김혜민> 처음에 자생적으로 만들어졌지만, 그만큼 많은 한인 경제인들이 있고, 또 제가 뒤에 말씀을 듣겠지만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기 위해 이분들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노력을 하시더라고요. 아마 그런 진심이 정부에도 통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하용화> 네, 맞습니다.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많이 알려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요. 저희들이 이러한 네트워크는 정말 설명하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라는 이 뿌리 때문에, 정체성 때문에 모이는 것도 한가락 하고요. 지금은 서로 비즈니스 협력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확실한 비전이 제시된다면, 아주 엄청난 조국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혜민> 애국심 때문으로만 모일 수는 없고요. 그렇다면 연속성이 없으니까요. 그만큼 모이는 분들이 실질적으로 사업에 도움이 되고, 인맥이 만들어지는 곳이라서 아마 조금 더 확장성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회장님 이민 몇 세이신 거예요?

◆ 하용화> 저는 이민 1세죠. 저는 1986년도에 제가 미국을 처음에 유학으로 갔습니다. 그때는 유학이 굉장히 힘들 때인데, 어찌해서 86년 1월에 가서 영어만 배우고 오겠다, 이런 생각으로, 또 그 당시에 한 교수님 한 분이 설명했던 것이, 그래서 강연이 참 중요해요. 영어와 컴퓨터가 앞으로 세상의 필수가 되는 세대가 온다고 하셨어요. 30년 전에. 그 말 한마디에 꽂혀서 영어와 컴퓨터 때문에 미국을 갔어요.

◇ 김혜민> 아무것도 없이요?

◆ 하용화> 그렇죠.

◇ 김혜민> 가셔서 어떤 일 하셨어요?

◆ 하용화> 처음에 갈 때, 그때만 해도 김포공항에서 플랜카드를 들고, 잘 갔다 와라, 이럴 때잖아요? 어쩌면 평생 못 볼지도 모른다. 도착하면 저를 분명 누군가가 플랜카드 들고나올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존 F.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는데, 아는 사람 한 명 없고, 저만 짐 7개 보따리를 들고 혼자만 떨어지는 신세가 저녁 7시였어요. 1월 13일. 그래서 그 자리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줄 알았는데, 같이 비행기를 타신 유학생 하나가 유학생이냐고 하시면서 자기 삼촌 집에 가자고 해서 처음에 여기 화물트럭을 타고 그 집에서 첫날 가서 자면서 미국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 김혜민> 그리고 금융업에서 굉장히 활약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 하용화> 그것은 처음에 제가 하고 싶어 한 것은 아니었어요. 제 꿈은 사실 삼각무역 같은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요. 집안에 엄청난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 김혜민> 진짜 용기와 열정만 가지고 가신 거네요?

◆ 하용화> 그렇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지금도 그런 분이 있었으면 정말 괜찮아요. 전 세계를 제가 많이 다녀봤는데, 그런 세상이 너무 많거든요. 한 10년만 참으면, 돼요. 5년에서 10년. 그것 못 견디시고, 못 참으시면 힘든데요. 저는 처음에 가서 유학이라고 갔지만, 졸업을 할 생각은 못 했죠. 그런데 환경이라는 게 만들어서 남들 1년 반에 4년에 졸업했고, 그리고 다시 돌아올 때 그때는 호황으로 바뀌었어요. 88올림픽이 끝나고, 89년이니까 그래서 자리도 좋은 자리가 있었는데, 그것을 뿌리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때 이자율이 무지 높았거든요. 그런데 집에 부채가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올 수가 없었어요. 제가 받는 월급으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아요. 남겠다. 미국에 남았는데, 아시겠지만 미국이라는 곳에서는 그냥 취업을 해주지를 않잖아요. 특히 어떤 합법적인 신분이 아니니까 대부분은 나는 취업이 안 되는 이유가 많잖아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이래서, 저래서, 다 그랬어요. 그런데 저는 그냥 할 수 없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원서를 여러 군데 넣는데, 되는 곳이 없죠. 영주권이 없고, 미국에 살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마지막에 제가 오퍼를 받은 곳이 70군데 정도 이력서를 냈는데, 그때 낸 곳 중에서 1년 정도 있는 기간에 보험회사, 생명 보험회사에 영업 사원으로 미국 보험사에서 오퍼를 받았어요. 그때 3년 반에서 4년을, 그 대신 제가 실적이 안 좋으면 회사에서 나와야 하는 입장이니까 하루에 15시간씩 일했죠. 구두가 다 해질 정도로요. 한인 동포들 때문에 그 생활을 겪다 보니까 영주권도 받게 됐고, 미국이라는 곳에서 안착하게 되었고, 그때 도와주셨던 그분이 바탕이 돼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 김혜민> 그러게요. 회장님의 인생 이야기를 짧게 들으면서도 느꼈지만, 한인들의 힘은 부지런함, 그리고 성실함, 아까 말씀드린 한민족이라는 동포애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민 초기, 지금 회장님 세대 이후의 세대들은 조금 행태가 다를 것 같아요. 일하는 분야도 조금 다르고요. 예전에는 과일가게, 세탁소, 그리고 회장님 같은 경우는 금융업 하셨는데, 요즘 사람들은 굉장히 다양할 것 같아요.

◆ 하용화> 맞습니다. 요즘에는 청년 창업도 많이 있고요. 그 당시에는 아시겠지만 그렇게밖에는 할 수가 없었어요. 우리는 처음에 소개하셨던 을. 갑이 아니었는데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까 미국이든, 한국이든 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갑도 을이거든요. 세상이 돌고 돌아서 정치, 경제 분야의 수장들이라고 해도 문화계나 어디든. 수장은 또다시 회원들에게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이니까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다만 요즘에 미국의 추세만은 아닐 거예요. 미국은 원래 한국보다 직업의 종류가 7배 이상 많다고 제가 들어요. 그러니까 갈 분야도 많고, 선택할 분야도 많은데요. 특히 요즘에 들어서는 분야들 중에서도 같은 분야라고 해도 굉장히 세밀하게, 세심하게 나누어지고 있죠. 그리고 또 하이테크 쪽에도 많이 들어오고요. 요즘 분들은 몸으로 때우는 비즈니스는 잘 안 하시잖아요? 그러나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역발상이라고 하죠. 그런 것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도 저는 봅니다. 저같이 공부를 아주 잘하지 않으시는 분은 이 방송을 청취하시는 분 중에 그분들은 그게 좋아요.

◇ 김혜민> 회장님의 말씀은 이런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명문대, 4년제, 이런 한계가 너무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그 한계에 너무 집착하거나 너무 절망하지 말고 눈을 들어서 해외를 보라는 얘기죠.

◆ 하용화> 해외를 제가 다니면서 느꼈던 것이요. 우리 한국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고 사는 나라는 전 세계에 10개 나라가 채 안 돼요. 그러면 그 나라만 꼭 가신다고 한다면 힘도 힘이지만 가셔도, 그렇다고 우리가 그 나라에 가서 경쟁력이 떨어지잖아요? 때문에 그 많은 나라 중에 조금 부족한 나라를 가시면 분명히 우위를 점하면서 잡을 찾을 수가 있거든요. 그렇게 먼저 말씀드리고 싶어요.

◇ 김혜민> 그래서 회장님께서 대한민국의 청년 실업자들을 위해서 프로그램을 개발하실 것이라고 들었어요. 어떤 것이 있을까요?

◆ 하용화> 제가 이번에 선거하면서 그런 약속을 했고, 이것은 정부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요. 각 대학에 계시는 학생들도 그러한 생각을 많이 해요. 얼마 전에도 유엔에 왔던 모국 대학 대표단들이 얘기한 것도 제일 먼저 청년 실업을 얘기하고, 취업을 얘기했거든요. 거기에 대해서 제가 생각한 것은 300 기도용사와 같은 청년 해외 취업을 제가 해보겠다. 그리고 그게 기본이 되어서 3,000명, 30,000명이 나가는 취업을 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아이디어가 있느냐? 저는 15년 전부터도 한국에 있는 학생들, 취업을 저도 필요하기 때문에 시켜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하면서 전국에 있는, 전 세계에 있는 한인 회원사들을 만나보니까 이런 거예요. 회원사하고 학생들하고의 미스매치가 많다는 거죠.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니까요. 제가 볼 때 취업에 제일 필요한 것은 나라별 외국인 고용법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것을 먼저 아셔야 할 것 같아요.

◇ 김혜민> 그렇죠. 기본이죠.

◆ 하용화> 그게 되자마자 취합을 했어요. 대사관을 통하든, 각 나라에 있는 지혜를 통하든, 언제 뽑을 수 있고, 어떻게 뽑을 수 있는지 해서 취업에 대한 기본부터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고요. 인턴 다음에 취업이 가능한지도 알아볼 수 있고, 그것을 첫째로 한 뒤에 정부에서 예산도 굉장히 많은 것 같아서 저희도 이번에 받은 예산이 있더라고요. 그것하고 그다음에 각 학교에도 취업 보도국에 있는 인재들. 구인자들과 또 구직자들, 이것을 우리가 라인업해서 서로를 매치하는 프로그램을 지금 만들고 있어요. 저희가 보니까 이런 것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영국 같은 곳에서는 YMS 비자라는 게 있어요. 그건 뭐냐면, 청년이 해외에 가서 경험하는, 그런 비자인데요. 영국 같은 곳에 1,000개가 있다고 합니다. 1,000명이 나갈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두 가지죠. 1,000명이 나가서 놀다 올 수도 있고요. 경험만 하고 올 수가 있고요. 취업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국에서 있는 저희 회원들은 이런 이야기를 해요. 회장님, 우리는 정말 사람이 필요합니다. 요새 한국인의 열기, K-MOVE, 이런 것 때문에 많은 분들이 한인을 찾고 있고, 호텔, 요식업, 이런 자리부터 시작해서 각자 무역, 물류, 다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막상 사람을 뽑으면 너무 고학력, 아니면 굉장히 좋은 자리를 원하시는 분이 많고, 어떤 분은 전공이 안 맞아서 안 된다는 거예요.

◇ 김혜민> 그러니까 딱 맞는 사람 찾기가 힘든 거죠.

◆ 하용화> 그리고 저희 같은 단체에서 만약 그런 사람들을 정확하게 구인자들의 리스트를 보고, 그런 분을 각 지방 대학도 좋아요. 지방에는 어떨 때는 안타까워요. 그런 학생들은 어떤 자리라도 좋다고 하고, 해외 다 좋다, 이런 분들과 라인업만 될 수 있다면 추첨을 하지 않고, 서로 매칭을 해서 해외에 나갈 수 있으면 취업으로까지 보장된다는 거죠. 그런 것은 호주도 마찬가지에요. 호주 달러 19달러가 기본급을 줘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가는 학생이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조금 부족한 것이 있을 텐데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6개월 정도만 어느 정도 보조해준다면, 분명히 그 회사에서는 뽑을 이유가 있다는 거죠. 이런 경우도 있고요. 사실은 취업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대학과 정부에서도, 그다음에 우리와 같이 해외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삼자가 머리를 맞대면 지금 얘기한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만들어내는 선물세트를 만들 수 있고, 그러면 충분히 해외 취업이 가능하고요. 또 후진국에도, 이것도 한 가지 제가 말씀드리고 싶어요. 학생들을 제가 만나보면, 아까 처음에 질문하셨던 것처럼 노동을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열악한 환경을 정말 견디지 못하시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A라는 어떤 해외 회사에 취업했더니 거기에서 커피 심부름만 시키고, 바퀴벌레가 나오더라, 그럴 수가 있거든요. 아시지만, 미국 뉴욕의 어떤 곳에서는 프라자 호텔에서도 바퀴벌레가 나오는 곳인데요. 그런데 그런 게 한번 인터넷에 올라오면 모든 사람의 선입견 속에 거기는 안 간다고 되잖아요. 그러면 그 나라나 그 지역이나 그 회사는 못 가게 되는 거죠. 즉, 가야 할 사람도 기회를 놓치게 되는 거죠. 이런 것에 너무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가능하면 힘든 일도 견디려고 하는 정신적인 무장이 있고, 해외 취업이 국내 취업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나 다른 방법으로 쓰시면 절대 위험하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 김혜민> 그 말이 핵심인 것 같습니다. 해외 취업이 국내 취업의 도피가 아니다. 더 힘들 각오를 하고, 대신 내가 힘든 만큼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 거죠. 월드옥타, 이제 한 걸음 더 도약하기 위해서 우리 신임 하용화 회장께서 많은 청사진을 그리고 계신데요. 그중 하나가 북한 시장 진출입니다. 대한민국의 대부분 상인들이 국적이 대한민국이 아니니까 오히려 대북 사업하는 데 자유로우시겠죠?

◆ 하용화> 그러나 이것은 전제조건이 깔리는 것이 지금 북미 대화의 문제가 있고요. 이게 모든 것이 국제적으로 완화되고, 화해 무드가 조성된 뒤라면 저희들은 2004년도에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회원 중에서 지금도 모든 것이 합법적으로 40% 정도의 생필품을 북한에 지금 수출을 하신 분도 계세요. 이런 분 외에도 저희들은 중국에 있는 회원들이 많습니다. 거기는 지금도 그쪽 국경 근처에서는 무역이 있을 수도 있고요. 이런 분들이 앞장설 수가 있죠. 또 하나는 중국 개방에도 제일 먼저 기여를 했던 분이 화교인 것처럼 우리가 만약 북쪽이 개방되면 제일 먼저 저희들이 앞장서서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혜민> 정말 그런 날이 오도록 현실적인 여건이 뒷받침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회장님 오셨으니까 이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사실 대한민국의 무역 현실이 지금 쉽지가 않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무역 갈등이 큰 위협이 된다고 하고요. 조언을 조금 해주신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 하용화> 글쎄요, 저는 경제학 박사도 아니고, 경영학 박사도 아니지만 실무에서의 경험과 저희 회원사가 많기 때문에 전 세계 147개 도시에서 오신 6,000여 비즈니스 오너들의 이야기는 그렇습니다. 한류 열풍이 참 잘 불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한다면 우리 인구가 2억, 3억 되고, 전 세계 인구를 상대로 이것을 잘 뻗어 나갈 수 있을 때 저희들과 같은, 비록 작은 규모의 비즈니스를 하시는 분들이지만 노하우도 가지고 있고, 현지에서 크게는 국왕과도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도 있고요. 이러한 그 나라에서 자생하고 있는 37년의 역사를 가진, 저희들과의 상담이나 이런 것을 통해서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다면, 우리가 빠져나갈 수 있는 다른 통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크게 한꺼번에 하는 것보다도 중요하지만 작은 게 많습니다. 예를 들면, 저희들이 이번 며칠 전이죠. 10월 말에 제 선거할 때 창원에서 경제인협회 대회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저희들이 수출 상담회를 했어요. 상담회가 2억 불 정도 됐고, 비록 완전 계약 성사는 6천2백만 불 정도 됐지만, 어떤 분들은 야, 그 정도 금액은 몇 개 회사면 돼, 이렇게 하시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에는 아직 대한민국에 있는 중소기업 중 한 번도 수출이라는 것을 몰랐던 기업들이 대부분이라는 거죠. 그런 기업들한테서 6천만 불이 넘는 금액이 계약됐다는 것은 상당한 의의가 있고, 그런 식으로 한 걸음부터 걸어 나가면 분명 전 세계로 우리 물건을 팔고, 어려울 때 하나의 통로로서 이런 일을 해결해 나가는 데 좋은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됩니다.

◇ 김혜민> 낙담만 했는데, 이렇게 현장에 오랜 시간 계신 분이 낙담하지 말고, 틈새시장도 노리고, 작은 규모의 무역업을 해봐라, 비전이 있다고 해주시니까 제가 조금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인터뷰 들으면서 집에 있는 청년 실업자녀나 아니면 답답한 경제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창업자들이 많은 인사이트를 얻으셨을 것 같아요.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월드옥타 회장님을 기점으로 해서 더욱더 발전되는 단체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오늘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하용화>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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