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헝가리 수교에 거액 차관 '비화'...일왕 방한도 검토

89년 헝가리 수교에 거액 차관 '비화'...일왕 방한도 검토

2020.03.31. 오후 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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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차관 계약 체결 후 89년 2월 한-헝가리 수교
헝가리, 동구권 ’차관수교’ 첫 사례…폴란드 등도
노태우 정부 때 日 외무상 "일왕 방한 긍정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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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30년 지난 외교문서의 비밀이 해제되면서 공산 체제가 무너지던 1989년, 노태우 정부가 동유럽 국가와 수교를 추진하며 거액의 차관을 제공한 사실 등 북방외교의 비화가 드러났습니다.

아키히토 일왕의 첫 해외방문으로, 한국 방문이 유력하게 검토되기도 했습니다.

장아영 기자입니다.

[기자]
1988년 8월, 한국과 헝가리가 외교관계 수립을 위해 서명한 합의 의사록입니다.

2억5천만 달러 규모 은행차관의 절반을 이행한 뒤에야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데 합의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실제로 12월 차관 계약 체결 후인 1989년 2월 1일, 두 나라는 수교를 맺습니다.

88서울올림픽 직후 자신감에 찬 노태우 정부가, 경제난에 몰린 동유럽 국가에 '돈을 주고 수교하는' 첫 번째 사례로, 이후 폴란드, 러시아와도 이런 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합니다.

노태우 정부 시절, 일왕 방한이 긍정적으로 검토됐던 사실도 이번 외교문서로 확인됐습니다.

우노 소스케 당시 일본 외무상이 아키히토 일왕의 최초 해외 방문으로 방한을 실현하고 싶다고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과거사 청산 요구와 일본 보수 우경화 흐름으로 일왕 방한은 무산됐습니다.

전교조와 공무원 노조 등을 인정하지 않던 1989년 당시 국제노동기구, ILO 가입을 놓고 우왕좌왕하던 모습과 조규광 당시 헌법재판소장와 조상호 대통령 특사가 각각 필리핀과 수단 출장 중 군사 쿠데타로 발이 묶였던 상황도 문서로 생생히 공개됐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24만여 쪽에 달하는 외교문서 원문은 외교사료관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지만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임시 휴관 중입니다.

YTN 장아영[jay24@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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