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모험단'을 아십니까?

'구국모험단'을 아십니까?

2019.04.09. 오후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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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해외에 안장 되어 있던 독립유공자 유해를 국내로 송환하는 사업을 1975년부터 이어오고 있습니다.

민간 차원에서는 해방 직후인 1946년부터 추진돼 왔습니다.

임시정부 100주년을 이틀 앞두고 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세분의 유해를 모셔오게 됐습니다.

사진 속 인물, 김태연 애국지사와 강영각 애국지사, 그리고 이재수 애국지사입니다.

김태연 애국지사는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해 상하이에서 대한적십자사 상의원으로 활동했습니다.

1920년에는 독립운동단체인 구국모험단에서 참모부장을 맡아 일제에 항거했고 이후 한국인 초등교육을 전담하던 인성 학교의 교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그에게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강영각 애국지사는 주로 하와이에서 독립운동 활동을 했습니다.

하와이 한인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조직한 '임시정부 후원회'에서 활동했고 20여 년 간 주간신문 국민보의 영문주필을 맡았습니다.

이후엔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의거에 고무된 한인들과 함께 독립자금을 마련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했습니다.

1997년 건국포장이 추서됩니다.

이재수 애국지사도 미국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했습니다.

항일운동단체인 공립협회 간사로 활동했고 1917년부터 30년 가까이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등 조국 독립을 위해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건국포장을 추서 받았습니다.

김태연 선생이 활동한 구국모험단은 부연 설명이 필요합니다.

'구국 모험단'은 1919년 6월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된 무장투쟁 지원 단체로 임시정부 수립 직후에 만들어졌습니다.

폭탄과 화약을 제조해 조선총독부 관서 공격 등의 활동을 벌였고 폭탄 제조 기술자를 양성했습니다.

국내에서 각종 정보를 수집해 임시정부에 보고하는 활동도 벌였습니다.

강영각 애국지사가 오랜 기간 몸 담았던 '국민보'는 1913년 하와이의 독립운동 단체 '국민회'가 발행한 주간지입니다.

국민회는 국내외에서 펼쳐지고 있던 독립운동 소식을 전하며 한인들에게 항일 독립의식을 고취 시킨 하와이 한인사회의 최대 기관지로 꼽힙니다.

이재수 애국지사가 활동한 공립협회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입니다.

안창호 선생이 1905년 4월 설립했고 초대 회장을 맡았습니다.

이재수 선생은 설립 직후 가입해 솔트레이크지방회장 등을 역임하며 재미 한인들의 민족의식 고취와 국권 회복을 위한 운동을 함께 펼쳐왔습니다.

"언젠가는 내 조국으로 건너가서 새롭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나라를 건설하는 봉사자가 될 것이다."

이재수 선생의 유언장에 담긴 내용입니다.

선생은 1956년에 돌아가셨지만 조국 땅을 이제야 밟게 됐습니다.

선생처럼 유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틀 뒤면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입니다.

독립유공자의 유해를 찾아 모셔오는 일이 더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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