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N팩트] '왜곡 지명 청산' 손 놓은 정부...5년간 0건

[취재N팩트] '왜곡 지명 청산' 손 놓은 정부...5년간 0건

2019.02.25. 오후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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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오동건 앵커
■ 출연 : 차정윤 / 기획이슈팀 기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우리 고유의 땅이름을 자기들 마음대로 바꾸고 왜곡했습니다.

정부는 지난 1987년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며 지명 정비 사업을 처음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고작 60여 곳의 이름을 되찾는 데 그쳤고요.

최근에는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문제 취재한 기획 이슈팀 차정윤 기자와 함께 자세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현장 취재한 지역은 어떻게 지명이 왜곡된 건가요?

[기자]
일단 YTN 취재팀이 다녀온 곳은 충북 진천군에 있는 구곡리라는 마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돌다리인 진천농다리로 유명한 마을이기도 한데요.

구곡리의 옛 이름은 구산동입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산 모양이 마치 거북이를 닮았다고 해서 조상 대대로 불린 그런 이름인데요.

YTN 취재팀이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을 보시면 거북이 모양, 거북이 머리와 등딱지 형상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 정부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마을 이름을 아홉구에 골짜기 곡을 쓰는 구곡리로 바꿨습니다.

그 이유를 마을 주민들에게서 직접 들어봤습니다.

[임일수 / 마을 주민 : 이순신 장군 거북선 때문에 일본군이 패한 거 아닙니까. 패해서 '거북 구' 한자를 못 쓰게 했다고 합니다. '거북 구'는 다 없애버리고 딴 글자로 바꾸든지 지명을 바꾸든지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앵커]
이유를 듣고 나니 좀 어이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거북선의 구 자가 있기 때문에 뺐다는 건데. 그렇다면 그동안 마을 이름을 다시 바꿀 수 없었던 건가요?

[기자]
지명 변경 시도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10여 년 전인 지난 2006년도 행정자치부에서 마을 이름을 구산동으로다시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자체 지명위원회를 열고 마을 주민들의 투표를 거쳐야 마을 이름을 바꿀 수가 있는데요.

당시 일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치면서 무산된 겁니다. 그 이후에도 구산동 마을을 지키고 있는 토박이 주민들은 마을 어귀마다 비석을 세우면서 고유 땅 이름을 지키려는 노력을 해 왔습니다.

지난 2014년이죠. 도로명 주소가 전면 시행되기 전에도 마을 주민들은 원래대로 복구해달라며 수차례 지자체에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현재 구산동 마을의 도로명 주소와 행정명칭은 모두 구곡길과 구곡리로 표기되고 있는데요.

일제강점기 때 왜곡된 이름이 10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앵커]
그렇습니다. 이게 왜곡된 이름이기 때문에 다시 이름을 찾아야 할 텐데. 이게 구산동 말고도 다른 곳도 여러 가지로 왜곡이 됐다는데 어떤 식으로 됐습니까?

[기자]
일단 대표적인 사례는 거북 구를 아홉 구로 바꾼 사례가 있고요.

[앵커]
무조건 거북 구면 바꾸는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또 대표적인 사례가 충남 논산의 왕암리 그리고 왕전리 같이 임금 왕 자를 앞에 날일 자가 붙어 일본의 왕을 뜻하는 성할 왕으로 바꾼 사례가 가장 많았습니다.

앞서 소개한 구곡리처럼 전북 전주시의 석구동과 충남 금산군 구석리도 일제강점기에 거북 구가 아홉 구로 바뀐 대표적인 왜곡 지명입니다.

금산군 구석리 같은 경우에는 거북이바위가 누워있는 폭포가 있어 거북 바위라는 뜻의 마을 유래를 갖고 있지만, 이 역시 아홉 개의 바위라는 뜻으로 왜곡된 셈이죠.

[앵커]
그렇군요. 그런데 지금 조사한 지역뿐만 아니라 서울에도 이렇게 왜곡된 지역이 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전통을 갖고 있다고 유명해진 종로구 인사동 역시 일제가 멋대로 바꾼 합성 지명입니다.

원래 인사동 지역은 '큰 사찰이 있는 터'라고 해서,절골, 대사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여기서 큰 절은 지금은 탑골공원으로 변한 원각사를 뜻하는 건데요. 하지만 1914년 일본 정부는 지금은 종로 1가 쪽인 관인방 지역과 탑골공원이 있는 대사동을 합쳤는데, 두 지명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인사동이라는 이름을 만든 겁니다.

결국 큰 절이 있는 터라는 뜻의 지명 유래는 희미해졌죠. 지난 2013년 서울시는 서울 옛지명 되찾기 사업을 추진하고 서울 시내 일제 잔재 지명 72곳을 발표했습니다.

취재진이 확인해 보니 아직 90% 이상은 지명이 그대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앵커]
지금 취재해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정부도 그 실정을 알고 있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은 없었습니까?

[기자]
있긴 했습니다. 일단 정부의 일제 잔재 지명 바로잡기는 유행처럼 반짝했을 뿐, 꾸준히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지도 그래픽 보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일단 읍면동 같은 행정구역명을 바로잡아야 할 곳은 행정안전부입니다.

지난 2006년 일제 왜곡 지명 31곳을 발표했는데요. 하지만 이 가운데 지난 2014년 강원도 강릉 왕산을 끝으로 지난 8년 동안 14곳만 바뀌었고요.

절반 이상인 17곳은 일제식 지명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습니다.

[앵커]
그렇습니다. 행정 지명 외에 산 하천 같은 지명도 많지 않습니까? 이 부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기자]
일단 자연 지명을 관할하는 곳은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 정보원이 1987년부터 지명 정비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광복 50주년을 맞아 1995년에 자연 지명 33곳을 한꺼번에 고치고는 현재까지 모두 52곳을 바로잡는 데 그쳤습니다.

경북 청송군에 있는 주왕산 제1, 2, 3 폭포를 각각 용추, 절구, 용연 폭포로 바꾼 지난 2013년이 마지막 사례입니다.

국토지리정보원 관계자는 일제 잔재로 의심되는 지명이 아직 200여 곳이 남아 있다고 말했는데요.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지명 정부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기획이슈팀에서 실제적으로 가장 필요한 부분들을 짚어주고 있는데요. 후속취재를 해서 변경된 부분들이 있는지도 좀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차정윤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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