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말하는 방북 비하인드 스토리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말하는 방북 비하인드 스토리

2018.09.21. 오후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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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송경철 앵커, 최영주 앵커
■ 출연 : 정동영 / 민주평화당 대표

[앵커]
최초와 파격의 릴레이였던 지난 2박 3일간의 평양 남북 정상회담. 어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워낙 새로운 일이 많다보니 그 사이사이 어떤 사건이 있는지 궁금하죠.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하신 분이죠.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모시고 이번 평양 남북 정상회담 비하인드 스토리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으로 벌써 평양만 세 번째 다녀오셨다고요?

[인터뷰]
북한은 여러 번 갔습니다만 평양에는 이제 2005년 특사로 갔다오고 장관급 회담하고 13년. 그런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앵커]
과거에는 통일부 장관으로 또 이번에는 정당 대표로 다녀오셨는데요. 그만큼 임하신 느낌도 남달랐을 것 같아요.

[인터뷰]
그런데 10년 사이 외관, 겉으로 보이는 것도 변화했지만 북한이 기술를 돌렸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몸으로. 남으로 기수를 돌렸다, 남쪽은 북으로 봐서는 엄청나게 잘사는 나라잖아요. 북쪽의 국가운행 방향이 이른바 강성대국 건설이니 군사강국 건설이 아니라 경제발전으로 확실하게 방향을 잡았다는 것을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의 말뿐만이 아니라 평양시민들의 그런 반응에서도 살필 수가 있었습니다.

[앵커]
지금 화면에 출발할 당시에 18일 오전 상황 화면이 나오고 있습니다마는 2박 3일 이렇게 쭉 보셨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뭐라고 보십니까?

[인터뷰]
역시 백두산 천지 앞에서 두 정상이 손을 번쩍 치켜든 거죠.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이고 백두산 천지에서 두 정상이 민족의 미래를 이야기했다라는 것은 그것은 세계인들 앞에, 저는 그렇게 봅니다. 한반도 문제를 한반도에서 사는 사람들이 결정한다는 그런 메시지를 전세계에 발신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대표님도 이제 천지 앞에서 여러 기념촬영을 하셨군요.

[인터뷰]
네.

[앵커]
가수 알리 씨와도. 백두산에서 알리 씨가 진도아리랑을 불렀는데.

[인터뷰]
제가 제안을 했어요. 창피한 일입니다마는 북한에서 저 가수 이름이 뭐지라고 해서 알리한테 사과했어요. 여기에서 내가 당신 이름을 몰라보고 왔다고. 그랬는데 그 전에 내려가면서 아리랑을 불렀어요. 그래서 마침 두 정상이 올라오고 우리는 내려가면서 만나서 여기에서 아까 부른 아리랑 한번 다시 해보시라고. 정말 노래 잘하더라고요.

[앵커]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잠깐 들어볼까요? 명절 앞두고 아주 감칠맛 나는 노래네요, 진도아리랑.

[인터뷰]
좋은 추석 선물입니다.

[앵커]
이번 정상회담에서 단연 화제가 됐던 장면입니다. 백두산 천지 방문인데요. 사전에 전혀 고지가 안 됐었나요? 가시기 전에?

[인터뷰]
사실 제가 일주일 전 청와대에서 정상회담 자문단 회의가 있을 때 제가 몇 가지 말씀 중에 마지막에 꼭 백두산 등정은 두 정상이 같이 가시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전 세계를 향한 우리의 의지를 발산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또 됐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때 문 대통령이 특별한 말씀이 없더라고요, 거기에 반응이. 그래서 뭔가 진행되는 것인가 하고 이렇게 짐작은 했었습니다.

[앵커]
대표님께서는 이전에도 백두산 천지를 다녀오셨다고 하던데.

[인터뷰]
제가 중국 쪽에서는 몇 번 갔어요. 갔는데 우리 땅, 북한을 통해서 가는 이 천지가 가장 웅장합니다. 그리고 천지 앞에 지금 펼쳐져 있는 백두산 고원. 2000m 이상, 2500m 그 넓은 백두산 고원의 산록이 장관이고 그다음 중국 쪽에서 보면 앞이 좁고 뒤가 넓은 형태인데 여기에서 뭐 앞부터 뒤까지가 확 펼쳐진 천지가 그리고 특히 중국 쪽에서는 내려갈 수가 없어요, 가파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삭도로, 케이블카로 물가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께서도 내년부터는 백두산 관광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2005년도에 이미 김정일 위원장이 현대아산에 백두산 관광사업권을 줬어요. 그리고 2007년 10.4 합의에서도 합의가 됐거든요, 백두산 관광이. 10년 동안 늦어진 건데 이번 정상들 대화에서도 우리 국민들도 자유롭게 여기에 왔으면 좋겠다. 김포공항에서 삼지연까지 1시간 반이면 가거든요.

[앵커]
제재 국면만 벗어나면 바로 내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인터뷰]
공항에서 40km예요. 울창한 가문비나무, 전나무같이 보였는데 가문비나무숲을 지나서 미니버스 40분 정도 지나면 정상에 가는 거죠.

[앵커]
공항에서 40분밖에 안 걸렸습니까?

[인터뷰]
네.

[앵커]
보니까 케이블카도 굉장히 현대화되어 있고요. 이제 관광 시대가 열린다면 뭐 더 보완해야 될 것은 있을까요?

[인터뷰]
한반도에서는 정말 최고의 명승 관광지가, 그냥 관광지가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산이죠.

[앵커]
반대로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 방문을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서울 오게 되면 한라산 방문도 이뤄질까요?

[인터뷰]
충분히 가능하죠. 한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죠. 그런데 한라산은 영실에서 걸어올라가야 하는데 꼭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죠.

[앵커]
송영무 장관이 헬리콥터 패드를 설치하겠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를 한 건 어제 봤습니다마는.

[인터뷰]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에 온다라는 것은 그건 뒤집어서 말하면 이제 핵을 내려놓고 경제 부국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봐야 되죠. 그리고 2000년에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이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던 것을 18년 만에 이제 지키게 되는 셈이죠.

[앵커]
백두산도 함께 두 정상과 오르셨고 또 첫날 만찬장에도 함께하셨고 여러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싶은데요. 김정은 위원장과 첫날 만찬장에서 직접 대화도 나누셨다라고 하는데 어떤 이야기를...

[인터뷰]
헤드테이블에 두 정상 내외하고 북측에 김영남 위원장, 김영철 통전부장 그리고 노광철 인민무력부장. 그리고 남쪽에서는 통일부 장관, 국방부 장관, 국정원장, 안보실장 그리고 3당대표가 있었어요. 만나서 2시간 반 동안이나 만찬이 진행됐으니까 들쭉술을 권하면서.

[앵커]
만찬 화면은 공개가 안 된 것 같아요. 옥류관...

[인터뷰]
꼭 서울에 오십시오라는 제안을 했죠. 오늘 평양시 연도에 10만 시민이 나와서 열렬하게 환영을 해 주었는데 서울에 오시면 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마 대부분은 크게 환영할 겁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 답변이 이랬어요. 내가 서울에서 환영을 받을 만큼 아직 일을 많이 못했습니다.

굉장히 겸손한 화법이었어요. 그리고 이제 김정은 위원장이 꾸는 꿈을 꼭 이뤘으면 좋겠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2049년 중국몽, 중국이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되겠다는 그런 꿈을 꾸고 있는데 우리 민족도 2048년에 한반도의 꿈, 대한민국을 만들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만들어서 2048년이면 100년이 됩니다.

우리도 한민족 한반도에 꿈을 꿔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이런 얘기도 좀 건넸고요. 어쨌든 김정은 위원장이 분명하게 북한의 기수를 돌려놓은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저는 다리를 건넜다 이렇게 느꼈어요. 그리고 그 다리를 불사질렀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그러니까 지금 보수 야당이나 보수 언론 일부에서는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아직도 좀 더 봐야 된다 이렇게 말하는데요.

이제 색안경을 집어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손을 잡았잖아요. 그러면 이제 북한을 인도해야 됩니다. 핵을 내려놓고 잘사는 나라로 잘갈 수 있도록, 우리는 경험도 있으니까요.

[앵커]
김정은 위원장이 이제 육성으로 비핵화 의지를 직접 밝히기도 했는데 사실 미국에서도 아직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대표님께서 말하시는 것은 굉장히 진정성이 묻어난다, 이렇게 봐도 될까요?

[인터뷰]
제가 이번에 특별한 경험을 한 게 대동강변을 산책했어요, 아침에. 그러니까 둘째 날 새벽에.

[앵커]
숙소는 고려호텔이였죠?

[인터뷰]
시내 고려호텔인데 제가 두 번 갔을 때는 엄두를 못 냈던 것인데 이제 아침에 새벽에 호텔 로비에서 요원들이 많이 있었어요, 안내원들이. 그런데 평양역 광장을 좀 산책하겠다라고 이렇게 말을 했는데 아무도 제지하지 않아요. 그래서 나갔어요.

나가서 평양역 100m쯤 떨어졌는데 평양역 광장이 있고 광장을 건너서 남쪽으로 쭉 2~3km 내려가니까 대동강변이더라고요. 대동강변에 많은 시민들이 출근도 하고 낚시질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고 체조도 하고 지나가는 학생들하고 사진도 제가 찍었어요.

[앵커]
직접 찍으신 사진인가요?

[인터뷰]
자전거로 출근하는 시민들의 모습이고.

[앵커]
과거에 방북하셨을 때 이렇게 자유롭게...

[인터뷰]
그러니까 평양 거리를 활보한 건 아마 제가 처음 아닐까 싶습니다.

[앵커]
사전에 허락을 받거나 그런 건 아니시죠?

[인터뷰]
그렇죠, 그렇죠. 강변에서 배드민턴 치는...

[앵커]
시민들이 뭐라고 하나요?

[인터뷰]
과학중시라고 하고 있죠, 그 옆에는 인재 중시, 과학기술혁명. 저 아파트에 누가 사느냐고 하니까 과학자들이 산다는 거예요. 그리고 전에, 10년 전에 거리 곳곳에 나붙었던 선전 간판에는 미 제국주의 타도 또 강성대국 건설 이렇게 전투적인 구호들이 즐비했는데 그게 다 바뀌었어요.

뭐로 바뀌었냐. 과학으로 비약하고 교육으로 미래를 담보하자. 과학과 교육을 강조하는 교원대학도 방문했습니다만 학교에 가서도 그런 걸 느꼈고요. 오로지 어떻게 하면 북한이 잘사는 나라가 되겠느냐. 마치.

[앵커]
학생들하고도 사진 찍으셨군요.

[인터뷰]
고3들인데요. 어디가느냐고 하니까 김일성종합대학 간다, 아침에 트레이닝복 입고 산책 나간 길이었습니다. 김일성 종합대학 간다라고 이렇게, 우수한 학생들인 것 같아요. 다른 중3 학생들도 만났어요. 그 학생들한테 꿈이 뭐예요 그랬더니 과학자입니다. 또 국가연구원입니다.

그러니까 사회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과학자를 중시하고 그리고 류경호텔이라고 105층짜리 이 호텔에 저녁에 불이 켜져 있는데 대형글씨로 뭐가 쓰여져 있었냐면 인민중심. 인민을 위하여, 인민의 삶 이런 것들이 익숙한 구호로 나붙어 있었어요.

그러니까 인민들 입장에서도 강성대국, 군사강국, 핵 뭐 이런 것이 강조되는 시대는 고달프잖아요, 삶이. 그런데 지도자부터 또 사회가 방향을 경제 발전으로 잡게 되니까 인민들도 좋은 거죠.

[앵커]
과거에 평양에 방문하셨을 때 시민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눈 적이?

[인터뷰]
처음입니다.

[앵커]
이번이 처음이신가요. 평양 시민들이 누구인지는 대강 짐작을 하고 있었던 거죠?

[인터뷰]
제가 누구냐고 물어보기에 남쪽에서 온 관광객입니다. 복장이 그러고 하니까 알아보지는 못하시더라고요.

[앵커]
대동강 물은 어떻던가요? 물이 좀 오염이 많이 돼서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
박원순 시장이 옆에 와서 대화를 같이 나누는데 대동강 수질 걱정을 했어요. 박 시장께서. 한강 수질 개선의 경험이 있으니 그것을 전수해 드리겠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해서 대동강 수질 책임져서 박원순 시장님이 하십시오.

[앵커]
이른 새벽인데 대동강변에서 낚시를 하고 계시네요. 시간이 7시경인데 낚시하는 모습은 특이하군요.

[인터뷰]
아침 일찍 나와서.

[앵커]
취미생활을, 평일 아침 7시인데.

[인터뷰]
은퇴자들인 것 같아요. 연세가 좀 든.

[앵커]
평양의 달라진 여명거리는 좀 어떻게 보셨습니까?

[인터뷰]
거기는 뭐 고층 아마 과학자거리라고 불리는 것 같아요. 미래과학자거리, 그 대동강변에. 그리고 창전거리, 여명거리, 미래과학자거리. 여기는 뭐 아주 고층 빌딩들이 환한 또 저녁에 불도, 불빛도 많이 환하더라고요.

발전소도 지었다고 하고요. 전에 안 보이던 송전탑도 많이 눈에 띄고. 그다음에 전에는 신호등이 없었던 것 같아요. 교통 수신호하는 교통경찰 여성 인상적이었는데 잘 보이지 않고 신호등이 네 거리마다 설치되어 있어서 이거 언제부터 놓은 거냐고 하니까 전에부터 있었습니다. 대답은 그런데 제 기억에는 전에는 없었던 것 같아요.

[앵커]
가장 큰 변화가 고층빌딩이라고 보면 되겠습니까?

[인터뷰]
겉모양보다는...

[앵커]
선전구호들이 사라지고.

[인터뷰]
북한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디인가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거죠.

[앵커]
이번에 정상대표 자격으로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다녀오셨는데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지 않으셨습니까? 그 전날 원래 일정이 어긋나면서 노쇼 논란이 있었는데요. 진실이 무엇입니까?

[인터뷰]
사실 일정을 짜고 관리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저희들이 관여를 한 바가 없기 때문에 그냥 아마 실무선에서의 혼선 연락을 기다리고 하면서 30분이 지나갔어요.

[앵커]
상대방 북한 쪽에 상대방은 기다리고 있었고요, 어디선가요?

[인터뷰]
네. 그건 저희들이 상황이 파악이 된 상황은 아니었고. 어쨌든 일정 차질이 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앵커]
이번 평양 정상회담. 평양 선언, 남북 정상회담의 총평을 해 주신다면 어떤 의미가 있다고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인터뷰]
군사적으로 보면 남북판, 한반도판 종전선언이 이뤄진 거예요. 1항에 그렇게 되어 있잖아요. 적대적 관계를, 1항에 그렇게 되어 있어요. 군사적인 적대관계 종식이라고 규정을 하고.

[앵커]
1조에 그렇게, 6개 조에...

[인터뷰]
군사적 적대적 관계를 종식을 근본적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나가자. 그러니까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이라는 건 남북판 종전선언인 거고요. 이걸 이제 남북미, 남북미중 이렇게 발전해 나가는 2단계가 남아있는 거고 그다음에 근본적 해소라는 것은 평화협정 단계를 말하는 거죠.

[앵커]
비핵화 관련해서 일단 북미 간에 대화의 물꼬를 튼 그런 상황으로 이어져 나가고 있는 상황인데요. 비핵화 관련해서도 어느 정도 좀 진전을 이뤘다 이렇게 봐도 되는 겁니까?

[인터뷰]
그러니까 답답하다라고 그랬잖아요. 김정은 위원장이. 나는 할만큼 하고 있는데 풍계리 핵시험장 같은 경우에는 무너져서 산분지가 못 쓰게 됐다,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도 들어냈지 않느냐. 이걸 의심하는 게 답답하다라고 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그러면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ICBM, 엔진시험장과 발사대를 유관국, 와서 봐라. 참관 하에 영구히 폐기하겠다, 그 말은 그냥 폐기가 아니라 영구폐기예요. 그리고 엔진시험장이 중요합니다.

발사대야 뭐 또 만들 수도 있지만. 북에서 3.18혁명이라고 불리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작년 3월 18일에 장거리미사일 엔진시험에 성공합니다. 그 전에는 중장거리미사일을 5발, 6발 쏘면 한 발이나 성공하고 쏘면 3월 18일에 이게 성공하는 거예요.

이게 3.18혁명라고 불려요. 그 이후에는 쏘는 족족 성공하는 거예요. 그래서 ICBM에도 성공하는 거죠. 그 미사일 엔진시험장을 폐기하겠다는 거고 와서 봐라 하는 거니까 미국 입장에서는 걱정되는 게 ICBM인데 그 부분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는 것이고. 그다음에 또 하나가 영변핵시설을 상응조치에 따라서 핵시설을 영구히 폐기하겠다라는 것은 지금 거기에는 흑연감속로 원자로가 있고 이것을 재처리하는 방사화학실이 있고 또 추출한 플루토늄 물질이 있고 또 거기다가 HEU 고농축우라늄 공장이 또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영변핵시설이라는 것은 북한이, 북이 보유하고 있는 핵시설의 70%에 해당합니다. 이것을 영구히 폐기하겠다는 거니까요. 아마 트럼프 대통령이 며칠 전에 굉장한 편지를 받았다. 엄청난 편지를 받았다라는 것은 이 대목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공개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16시간 동안이나 두 정상 간 대화 중 절반 이상은 핵 문제였다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비핵화의 절차를 밟아갈 것인지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생각을 소상하게 들은 것이고 그것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게 되면 아마 2차 북미 정상회담도 가시권에 들어오리라고 생각됩니다.

[앵커]
지금까지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다녀오신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얘기 나눠봤습니다. 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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