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비준동의 왜 어렵나? 여야의 정치적 셈법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 왜 어렵나? 여야의 정치적 셈법

2018.09.08. 오후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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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정부가 오는 11일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히면서 통과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미 올해 4월 첫 남북정상회담 직후부터 국회 비준동의를 놓고 여야가 설전을 벌여왔는데 쟁점은 무엇이고, 각 당의 생각은 어떻게 다른지 국회 취재기자 연결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전준형 기자!

정부가 다음 주에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는데, 결국 오는 18일 3차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처리해달라는 요구라고 봐야겠죠?

[기자]
판문점 선언은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처음 만나서 내놓은 합의안인데,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 교류, 경제 협력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전에 국회 비준동의가 이뤄지면 법적 효력을 갖게 되면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과 협상력에 더욱 힘을 실을 수 있습니다.

청와대에서 거듭 정상회담 이전에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를 요청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청와대는 이번에 판문점 선언 이행에 필요한 비용 추계서도 함께 제출하기로 했는데요.

지난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10·4 남북공동선언 당시 비용 문제가 논란이 됐던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김의겸 / 청와대 대변인 : 정부는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을 다음 주 화요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뒤 국회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판문점 선언 이행에 필요한 예산안(비용 추계서)도 함께 제출하게 됩니다.]

앞서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기 위해 국회 비준동의가 꼭 필요한가를 두고 제각각 해석이 달라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는데요.

지난달 법제처가 명확하게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검토 의견을 밝히면서, 국회 본회의 통과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습니다.

철도·도로 연결이나 민족공동행사 추진, 국제경기 공동 진출, 이산가족 상봉 등을 이행하려면 상당한 규모의 국가재정이 요구되기 때문에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앵커]
그런데 판문점 선언에 대한 각 당의 입장이 달라서 국회 통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죠?

[기자]
단순하게 말씀드리면 민주당과 평화당, 정의당은 찬성하는 입장이고, 바른미래당은 조건부 찬성, 자유한국당은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각 정당의 이념적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민주당은 국민 72%가 압도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며 연일 야당에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를 촉구하고 있고요.

평화당과 정의당도 한반도 평화시대를 열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며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한국당은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비준동의 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요.

바른미래당은 북한의 비핵화를 강력하게 촉구하는 국회 차원의 결의안을 먼저 통과시킨 뒤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도 처리하자는 입장입니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말 들어보시겠습니다.

[홍영표 /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 과거 남북 합의들이 국회에서 법적 기반을 갖췄더라면 남북 관계는 보다 안정적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이번만큼은 국회도 남북관계 개선에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른 시일 내에 판문점 선언에 대한 비준에 국회에서 합의가 도출되기를 기대합니다.]

[앵커]
자유한국당이 가장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데, 왜 그런 겁니까?

[기자]
한국당에서는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가 백지수표 위임장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선언문에 포함된 남북 교류와 협력 등에는 적잖은 비용이 필요한데,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추상적인 표현밖에 없어서 한마디로 믿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또 미국 등 국제사회가 대북 제제를 위한 단일대오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동맹 등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표면적인 이유와 함께 속내를 들여다보면 남북 관계가 이슈로 부각하는 것 자체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측면이 더 큽니다.

최근 한국당을 비롯한 대부분의 야당이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상황에서, 3차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가 이뤄지면 국민의 관심이 다시 남북 관계로 쏠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경제 이슈는 한국당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 출산주도성장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등 나름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남북 관계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핵심 역할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국 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김성태 원내대표의 말 들어보시죠.

[김성태 /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동의는 지금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경제에 실패한 문재인 정권이 종전선언 운운하며 북핵 이슈를 계속 끌고 가기 위한 정략적 접근이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앵커]
그렇다면 이번에도 캐스팅보트를 쥔 바른미래당의 입장이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기자]
바른미래당 상황은 좀 복잡합니다. 일단 손학규 대표는 원칙적으로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가 필요하다며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손 대표는 과거 국민의당 출신이죠. 같은 당 내 바른정당 출신인 지상욱 의원과 이준석 최고위원 등은 지도부가 개인 생각을 당론인 것처럼 얘기하지 말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당내 갈등이 커지자 김관영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북한 비핵화와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결의안부터 통과시킨 뒤 비준동의에 나서자는 절충안을 제시하기도 했는데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의 입장 차가 커서 내부적인 입장 정리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김관영 원내대표의 말 들어보시겠습니다.

[김관영 /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 저는 지금 시점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판문점 선언 지지를 위한 국회 차원의 결의안을 채택할 것을 제안합니다. 국회의 결의안 채택 직후 판문점 선언에 대한 비준안 처리에 관해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본격적으로 의논했으면 합니다. 초당적인 협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앵커]
이렇게 여야 입장이 갈리면 결국 본회의에서 표 대결이 이뤄지는 건가요?

[기자]
일단 본회의 상정까지 가는 과정부터 만만치 않습니다.

관할 상임위원회인 외교통일위원회부터 통과해야 하는데, 외통위원장이 한국당 강석호 의원이기 때문에 여야 합의 없이 본회의 상정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안은 직권상정 요건, 즉 천재지변이나 전시·사변 같은 국가비상사태, 의장이 각 원내대표와 합의하는 경우 등에도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문희상 국회의장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도 별로 없고요.

문희상 의장 본인이 13일부터 4박 6일 일정으로 해외 출장 일정이 잡혀 있어서 여야 합의를 중재할 시간적 여유도 부족합니다.

특히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는 야당 반대를 무릅쓰고 통과시킬 경우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행보에 힘을 싣기 위한 과정이 오히려 국론 분열로 부담만 지울 수도 있다는 점도 부담입니다.

문 의장은 일단 비준동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면 여야 합의가 되지 않더라도 표결에 부치겠다는 입장인데요.

18일 남북정상회담 전까지 여야가 머리를 맞대 합의안을 찾을지, 아니면 또 한 번 세력을 총동원한 힘겨루기가 펼쳐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국회에서 YTN 전준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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