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N팩트] 뚜껑 까보니 '부결'...청탁금지법 운명은?

[취재N팩트] 뚜껑 까보니 '부결'...청탁금지법 운명은?

2017.11.28. 오전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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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애초 완화될 것으로 전망되었던 청탁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에 급제동이 걸렸습니다.

총리까지 직접 나서 개정을 여러 차례 시사했는데도, 막상 국민권익위원회 안에서는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좀 더 자세한 얘기는 이를 취재한 장아영 기자한테 들어보겠습니다. 장아영 기자!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청탁금지법 시행령이 개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는데요?

막상 뚜껑을 까보니 그 반대였어요, 어떻게 된 거죠?

[기자]
어제 주요 안건은 농·축·수산물에 한해 선물 상한액을 5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올리는 시행령 개정안이었는데요.

총리까지 나서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컨센선스' 즉, 합의가 됐다고 한 만큼 통과가 유력해 보였습니다.

어제 오후 3시 30분부터 열린 국민권익위원회 전원위원회는 오후 6시까지 진행됐습니다.

전원위는 모두 15명으로 구성돼 있는데요.

어제 회의에는 박은정 권익위원장을 포함해 2명이 자리를 비웠고 1명은 공석이어서 12명이 참석했습니다.

2시간 넘게 심의한 끝에 부결됐습니다.

개정안 찬성이 6명, 반대 5명, 기권 1명으로 찬성이 절반을 넘지 못했습니다.

[앵커]
부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도 권익위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이를 확인해주지 않았죠? 왜 그런 겁니까?

[기자]
어제 국민권익위 대변인은 부결인지, 아닌지 공식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정부 고위 관계자를 통해 최종 부결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청와대와 정부가 청탁금지법 개정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부결된 데 대해 내부적으로도 당혹해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국민권익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전원위원회 안에서도 찬성표가 더 많긴 많았죠?

[기자]
격론이 벌어진 만큼, 표차도 아슬아슬했습니다.

어제 참석한 12명 가운데 찬성이 6명, 반대 5명, 기권 1명으로 찬성이 오히려 1명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관련법상 전원위원회는 재적 위원 과반수 출석으로 개의하고 출석 위원 과반수가 넘어야 의결이 됩니다.

찬성이 6명으로 과반이 안 됐기 때문에 결국 부결됐습니다.

이번 투표는 거수투표로 진행했는데, 만일 비밀투표였다면 반대가 훨씬 많았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비상임위원들의 반대 의견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앵커]
어제 전원위원회에 불참했던 박은정 권익위원장도 취임 직후 부정 청탁방지법 개정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는데요, 개정 반대론자들의 핵심적인 내용은 뭡니까?

[기자]
가장 핵심은 청탁금지법이 궤도에 오른 지 1년 밖에 안 된 상황에서 크지 않더라도 개정을 한다는 것 자체에 부담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를 건드리면 결국 다 건드릴 수 있기 때문에 이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뜩이나 청탁금지법은 복잡하게 돼 있어 법 적용에 혼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또다시 시행령을 개정하면 혼돈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이번에 농축수산인들을 위해 개정을 하게 되면, 역시 청탁금지법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는 요식업 종사자들의 요구가 거세질 수 있겠죠.

이렇게 연쇄적으로 법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게다가 개정 움직임에 대한 여론도 좋지 않았죠?

[기자]
그렇습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올해 9월 발표한 청탁금지법 인식조사 결과, 일반 국민의 청탁금지법에 대한 호응도가 89.2%로 매우 높았습니다.

작년 조사에 비해 3.9%p가 오히려 높게 나왔습니다.

이번에 시행령 개정안에 들어간 선물 금액 한도, 5만 원의 경우에도 일반 국민의 61.4%는 적정하다고 답변했습니다.

청탁금지법에 대한 일반 국민 여론이 특히 언론인 같은 경우와 비교했을 때 매우 호의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여론조사의 조사대상은 일반 국민의 경우 1000명, 기간은 올해 8월 18일부터 21일까지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입니다.

[앵커]
원래 알려진 계획은 어제 개정되면 내일이죠? 29일 대국민보고대회에서 공식 발표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기자]
준비하고 있던 대국민보고대회는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내부에서 숙의 작업을 거치고 있다고 국민권익위원회는 밝혔는데요.

조만간 다시 전원위원회를 개최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개정안을 다시 상정해도 반대했던 위원들이 돌아설지는 의문입니다.

일단 어제 부결로 시행령 개정은 불투명해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앵커]
이번 부결 사태를 놓고 문재인 정부 안에서 정책을 둘러싼 이견 표출이라는 시각도 있어요, 어떻게 보십니까?

[기자]
어제 전해드린 대로, 이 총리가 현장에서 '늦어도 설 대목에 농축수산인들이 실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단언하지 않았습니까.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적극적으로 개정을 요구하는 등, 정부의 의지가 강하게 들어간 개정안이었는데도 제동이 걸리는 이런 일은, 사실 과거 보수 정권에서는 쉽게 일어나기 힘든 결과입니다.

권위적으로 일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이렇게 표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앞으로 결과가 나오기 전에 정부가 먼저 나서서 확정하는 모양새는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권익위 내부에서는 권익위 내부와 구체적인 논의 없이, 국민 여론에도 맞지 않는 개정안 내용을 정부가 흘리고, 일을 밀어붙인 것에 대한 불만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앵커]
그동안 부정청탁방지법 개정에 가장 적극적인 게 농축수산 업계였는데요.

총리가 직접 나서 개정을 시사했던 만큼 부결의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기자]
일단 내년 설 이전 개정을 추진하던 정부의 계획은 틀어졌습니다.

설 대목을 기대했던 관련 업계의 실망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업계는 주로 명절에 선물로 주고받았던 한우와 과일, 홍삼 선물세트 판매액이 지난 설 명절에 25% 이상 급감했다고 주장해왔는데요.

지금까지 국회에 꾸준히 법 개정을 촉구했던 만큼, 앞으로도 청원 활동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정부로서는 큰 부담입니다.

지금까지 YTN 장아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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