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파일]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별세...'4·19 주역' 잠들다

[인물파일]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별세...'4·19 주역' 잠들다

2016.02.22. 오후 2:14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한국 야당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79살.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서전 원고에 공을 들였습니다.

6년 동안 준비해온 자서전 '우행'을 탈고한 뒤, "아, 큰일 마쳤다!"는 소감을 남기곤 깊은 영면에 들었습니다.

1960년 4월 18일, 독재 정권의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고려대 학생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교문 밖으로 나섰습니다.

이 사건이 4·18 고대 의거!

이튿날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고대 상대 학생위원장으로 시위를 주도했던 이기택 전 총재는 이후 정치의 길로 접어듭니다.

서른 살에 신민당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된 뒤, 정치 규제에 묶여 출마하지 못한 11대를 제외하고 7대부터 14대까지 7선 의원을 지냈습니다.

4·19 혁명을 시작으로 반평생 민주주의를 위해 살아온 이기택 전 총재.

YS와 DJ와 함께 민주화 투사로서의 길을 걸었지만, '양김'의 그늘 아래 그는 늘 2인자 자리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민주화 정국에서 통일민주당에 들어가 YS를 도왔던 이 전 총재, 하지만 1990년 '3당 합당'을 계기로 결별합니다.

4·19 세대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3당 합당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대신 노무현 전 대통령, 홍사덕, 이철 전 의원과 함께, '꼬마 민주당'을 창당했습니다.

이듬해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잡고 민주당을 창당해 공동대표가 됐는데요

92년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DJ가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그에게도 정치적 전성기가 찾아옵니다.

3년 가까이 제1 야당을 이끌며 일약 대선 주자로 발돋움하는 듯했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꿈은 물거품이 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에 복귀하면서 동교동계가 1995년 신당을 창당하기로 한 건데요.

이 소식을 접한 이 전 총재가 "갈 데까지 가는구먼"이라고 성토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2002년 대선 때는 꼬마 민주당을 함께 일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원했지만 이후 참여정부의 노선을 비판하다 2007년 17대 대선에선 고려대 후배이자 고향 후배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이기택 전 총재가 마지막까지 공들였다는 자서전의 제목은 '우행'입니다.

고인 생전에 좋아했던 경구, '호시우행'에서 따온 건데요.

호랑이 눈처럼 날카로운 안목을 가지고 소처럼 우직하게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비록 '양김'에 밀려 뜻을 펼치진 못했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길을 우직하게 걸어갔던 정치인, '호시우행'의 정치인으로 우리는 그를 기억하겠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