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걸작선] '꼬방동네 사람들'

[한국영화 걸작선] '꼬방동네 사람들'

2018.09.07. 오후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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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부조리함이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집중하는 영화를 리얼리즘 영화라고 부릅니다.

1980년대 초 리얼리즘 영화를 추구한 감독이 있었으니, 이장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배창호 감독이 그 주인공입니다.

도시빈민의 비루한 삶 속에서 건강한 낙천성을 길어 올리는 한편, 애잔하고도 감동적인 멜로 드라마 한편이 배창호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는데요.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입니다. 지금, 만나보시죠.

서울의 빈민촌에 사는 명숙은 남편 태섭, 어린 아들 준일이와 함께 그럭저럭 빠듯한 생계를 이어갑니다.

악착같이 모은 돈을 밑천으로 곧 반찬 가게를 열 꿈에 부풀어 있는데요.

동네 아낙들이 모인 빨래터.

-명숙: 이 팬티 어디서 나셨어요?
-이웃 여자: 아니, 이 여편네가 왜 이래? 돈을 벌더니 눈이 멀었어?
-명숙: 이거 우리 남편 팬티예요
-이웃 여자: 그걸 어떻게 알아!
-명숙: 틀림 없어요. 저번 날 빨래하다 섞인 모양이에요

속옷 하나의 소유권을 놓고 벌어지는 실랑이는 결국 막장 다툼으로 번지고 맙니다.

이 장면은 가난한 도시빈민의 억척스러운 삶을 해학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드러내 보이죠.

어쨌든 명숙은 드디어 가게를 열고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떠들썩한 잔치를 엽니다.

앞선 장면과는 대조적으로 정이 살아 있는 이웃 공동체의 살가운 풍경 역시 놓치지 않고 보여주죠.

동네 사람들이 혼자 사는 노인의 환갑잔치를 열어주는 이 장면에서 인간문화재 고 공옥진 선생이 특별 출연해 떠들썩한 춤 잔치를 이끕니다.

-봄 사세요 봄 소식!
-일선 집안에 가시덤불!
-소식 전하던 봄 소식!

자, 그런데!

어느날 명숙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납니다.

굳어지는 명숙의 표정.

과연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명숙: 언제 나왔어요?
-주석: 2년 전에
-명숙: 이젠 너무 늦었어요
-주석: 알고 있어

주석은 사실 명숙의 전 남편이자 준일의 친아버지였던 거죠.

그는 소매치기로 세 번이나 감옥에 갔고, 그 사이 지쳐 버린 명숙은 새 살림을 차렸던 것.

이제는 택시를 몰며 착실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명숙의 남편인 태섭은 주석의 등장에 잔뜩 긴장합니다.

-태섭: 나 말이오. 남한테 나쁜 짓은 않지만 나한테 해 끼치는 사람한테는 가만 있지 않수다. 긴말 할 것 없고 이 동네 떠나슈
-주석: 어디까지 가십니까. 손님

그래도 주석은 자신이 아버지인지 모르는 준일이의 곁을 맴돕니다.

-주석: 아저씨는 준일이 아주 어렸을 때 준일이 엄마하고 같은 동네에 살던 아저씨야. 준일이 어디 가고 싶은 데 없니?
-준일: 아프리카, 어린이 대공원, 디즈니랜드, 부산, 남대문 시장!

지금껏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주석은 이렇게 뒤늦게라도 아들 준일이를 챙겨 주는데요.

한 걸음 더 나아가 명숙에게 새 출발을 하자고 애원하는 주석.

하지만 결국 사달이 나고 맙니다.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인물들간의 대립과 갈등는 있지만 누군가를 악당으로 몰아가지 않습니다.

인물들마다 여기까지 밀려난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가 있는데요.

그 공통분모는 바로 극도의 가난입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끈질긴 사랑의 힘이 승리하는 멜로 드라마적인 틀을 통해 한줄기 희망을 빛을 비추는 걸 놓치지 않습니다.

민중의 삶을 직시한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금자탑, (꼬방동네 사람들)이었습니다.

글/구성/출연: 최광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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