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우드] 한국영화 걸작선 - 로맨스 빠빠

[한류우드] 한국영화 걸작선 - 로맨스 빠빠

2018.03.31. 오전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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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한국영화계 최고의 전성기를 보낸 이는 바로 신상옥 감독입니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를 벤치마킹한 대형 제작사 신필름을 창립해 당대 가장 활발한 창작 활동을 펼쳤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는 한국 가족 휴먼 드라마의 원형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금 만나보시죠.

제가 로맨스 빠빠 : 제가 로맨스 빠빠예요. 이제 겨우 쉰두 살밖에 되지 않은 나를 보고 노망을 부린다고 해서 애들이 붙여준 별명이 로맨스 빠빠예요.

영화 '로맨스 빠빠'의 도입부는 아주 신선합니다.

등장 인물들이 차례차례 직접 나와 관객들에게 자신의 캐릭터를 소개하는 방식이죠.

아내 : 제 남편이 노망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글쎄 쉰두 살이나 잡순 영감이 겨우 마흔다섯밖에 안된 절 보고 늙었다 늙었다 하잖아요.

보험 회사 사원으로 일하는 로맨스 빠빠는 아내와 2남 3녀의 대가족을 이끌고 있는 가장입니다.

별명에 걸맞게 아침마다 사무실에 꽃을 가져가 꽂아 놓을 정도로 낭만적인 성격인데요.

사원 : 할아버지, 이 꽃 저 주세요. 제가 꽂을게요.

로맨스 빠빠 : 인마, 넌 왜 밤낮 할아버지라고 그래?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리자니 로맨스 빠빠는 살림이 빠듯하기만 합니다.

낡은 신발을 둘러싸고 형제간에 벌어진 해프닝은 가난에 쪼들린 이 가족의 분위기를 짐작케 해줍니다.

어진 : 이거 어디 신어봐라.

바른 : 그만둬.

어진 : 왜?

바른 : 형은 내가 구두를 맞추러 나가니까 배가 아파서 그러는 거지? 이걸 내게 주고 형이 새 걸 맞추려고!

어진 : 그럼 이 신발은 버리니?

바른 : 내가 알아? 잘 싸서 장롱 속에 넣어 두었다가 형님 장가가서 아들 낳아 스물세 살 먹거든 꺼내 신기구려. 난 이제 형의 찌꺼기 물려받긴 아주 싫어졌어요.

이런 가운데서도 집안에는 나름대로 화목함이 넘쳐납니다.

로맨스 빠빠가 아내와 티격태격 부부싸움을 하는 상황을 순식간에 사랑 싸움으로 둔갑시키는 자녀들의 장난기는 이 가족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 보입니다.

로맨스 빠빠 : 그럼 내게 불만이 있단 말이야?

아내 : 그럼 내게 불만이 있단 말이에요?

로맨스 빠빠 : 아니, 당신의 행복은 그래…

아내 : 행복이고 불행이고 도대체 당신…

자녀들 : 사랑의 노래 들려 온다 옛날을 말하는가 기쁜 우리 젊은 날~

이런 와중에 혼기에 찬 큰딸 음전은 신랑감 우택을 집으로 데려와 부모님에게 소개하는데요.

예비 사위에 대한 질투심 때문일까요?

로맨스 빠빠는 기상대 직원인 그에게 괜히 심통을 부립니다.

로맨스 빠빠 : 좋아, 그럼 과학도인 자네와 비과학자인 나와 내기 한번 할 테야?

우택 : 무슨 내기요?

로맨스 빠빠 : 오늘 비가 오나 안 오나.

우택 : 비는 오지 않을 겁니다.

로맨스 빠빠 : 난 오늘 비가 꼭 오네. 적어도 두 시간 안에 비가 쏟아져.

우택 : 오지 않습니다.

로맨스 빠빠 : 오네. 와. 반드시 오고 말 거야.

우택 : 짐작으로요?

로맨스 빠빠 : 아니, 자신을 가지고 확실한 증거를 보여줄 테야.

아내 : 여보. 과학자가 안 온다는데 당신이 무슨 근거로 장담을 하시오?

결국 자신이 장담한대로 비가 오자, 로맨스 빠빠는 어린 아이처럼 기뻐합니다.

영화는 기존의 한국영화들과 달리 장난스럽고 천진난만한 아버지상을 앞세워 새로운 가족상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이런 가운데 아버지가 자식들과 토론하고 그들을 존중하는 모습도 눈길을 모읍니다.

여고생 막내 딸에게 온 러브레터를 보게 된 부부의 대화 장면.

아내 : 누구한테 온 거요?

로맨스 빠빠 : 이쁜이한테.

아내 : 아니, 이거 사내 글씨가 아니요? 봉투도 모양만 봉투에다가.

로맨스 빠빠 : 글씨도 서툰 걸 억지로 멋을 냈구나.

아내 : 사내 녀석이 보내온 것이 틀림없구려. 어서 좀 읽어 보오.

로맨스 빠빠 : 안돼. 인권 침해야.

딸의 인권을 논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란 영화가 개봉한 1960년 초 시대 분위기로선 상당히 파격적이었을 겁니다.

앞서 보신 도입부처럼 이 영화에서 군데군데 선보인 형식적인 파격도 개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영화 감독 지망생인 맏아들의 시나리오를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읽는 장면인데요.

로맨스빠빠 : 얘. 나 같으면 이 극을 그렇게 진행시키지 않는다. 좀더 고상하게. 예를 들면 말이야.

어진 : 안돼요. 왜 남의 걸 함부로 고치세요.

동생들 : 의견은 말할 수 있잖아.

곱단 : 아버지. 아버지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 대목에서 로맨스 빠빠는 바로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은 방식으로 아들의 시나리오를 각색하는데요.

신상옥 감독은 이것을 영화 속의 영화 장면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아내 : 요 위 반찬 가게 있죠. 거기서 왼편으로 꺾어 들어가면 우물이 있지 않소?

아내가 로맨스 빠빠에게 기생집의 위치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카메라는 트래킹과 줌인, 패닝 등의 다양한 움직임을 통해 유머를 가미합니다.

이런 형식적인 파격은 아버지 중심의 권위주의보다 모든 가족들이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영화의 메시지와 맞물리면서 '로맨스 빠빠'를 더욱 선구자적인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가족 공동체의 새로운 모델을 선보인 영화. '로맨스 빠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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