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코리아 42회

더 큰 코리아 42회

2018.03.01. 오전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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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따뜻한 봄을 그리던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만세를 외쳤습니다.

'우리나라'를 염원하던 목소리는 한반도를 넘어 일본에서도 울려 퍼졌지요.

그로부터 25년도 더 지나고, 한반도에 세운 '우리나라'.

그러나. 식민지와 분단을 넘어, 광복된 뒤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의 소용돌이에 있던 재일동포들의 삶.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새로운 시대는 찾아왔을까요?

[아베 신조 / 일본 총리 : 한국 측이 일방적으로 추가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문제가 있다는 우리 정부 조사 결과에 대해 "합의가 1mm도 움직이지 않는다"며 강경 입장을 밝혔습니다."

"일본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칠 전시관을 도쿄 중심가에 마련했습니다."

"소녀상 설치부터 위안부 합의 문제까지 갈등은 증폭되는 분위기입니다."

여전히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한일관계는 아슬아슬하기만 합니다.

아픈 역사가 남긴 상처는 끝없이 되풀이되는 것이 아닐는지요.

여기, 새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김새도, 쓰는 언어도 다르지만 하나 된 목소리로 노래 부릅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새로운 봄을 만나볼까요?

'현해탄 너머 봄 오는 소리'

매서운 칼바람이 한창이던 지난겨울.

우리는 추운 날씨가 무색하게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뒤섞인 현장,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조미수 / 시민 뮤지컬 한국 공동 대표 : 한국과 일본 시민들이 함께하는 뮤지컬이고요. 일본에서는 15년 넘게 이걸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2015년에 한일협정 50주년으로써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서 시작했는데….]

스무 살 예비 대학생부터 60대 어르신까지.

나이도, 사연도 제각각인 100여 명이 모였답니다.

공통점보다도 서로 다른 점이 더 많아 보이는데요.

[김영민 / 26세 :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 한국 할 게 없더라고요. 인식도 안 될 정도로 다 친구라는 생각이 들어서...]

[박하율 / 25세 : 학교 동기 추천으로 저도 여기 오게 됐어요. 100명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통합이 될까, 이렇게 생각했는데 오히려 전공자인 저도 배울 점이 정말 많았어요.]

[시노하라 모에코 / 33세 : 한국 참가자들은 못 본 사이에 점점 실력이 좋아졌어요. 둘도 없는 동료라는 느낌도 들고….]

오늘은 서울과 도쿄에서 공연이 열리기 전 최종 리허설 날입니다.

처음으로 가족과 친구 등 외부 손님이 왔는데요.

누군가 지켜보고 있어서일까요?

누구 하나 허투루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한나 / 참가자 : (리허설이지만 가족분들까지 왔는데 어떠세요?) 떨리죠. 가족들 있을 때가 제일 떨리는 것 같아요.]

[김기태 / 61세. 관객. 출연자 가족 : 아들이 출연해서 왔습니다. (공연 의미는 알고 계세요?) 국제 평화를 목표로 한일 간에 아마추어 출연자들이 자원봉사 비슷하게 본인들이 끼를 이 프로그램에 같이 협력하는 그런 프로그램으로 알고 왔어요.]

한국과 일본 시민들이 100일 넘게 준비해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어 커먼 비트'.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가상의 4대륙이 전쟁과 분쟁 끝에 화합으로 나가는 이야깁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심장 박동 소리를 빗대 '우리는 하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요.

[조미수 / 재일동포 3세, 한국 대표 : 이 뮤지컬의 의미 자체가 다름을 넘어서서 차이를 넘어서 문화가 달라도 우리가 하나라는 걸 느낄 수 있을까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거든요. 그래서 워낙 한일관계가 계속 정치적으로는 갈등이 많고 제가 넘어서지 못하는 역사, 슬픈 역사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시민으로서 함께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보면서… 그리고 그냥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춤과 노래를 같이 배워가는 과정에서 정말 깊은 교류를 할 수 있는 것 같았어요.]

프로들에게 쉽지 않을 대형 프로젝트입니다.

총 연출가인 한주선 씨의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데요.

주선 씨는 이렇게 힘든 일을 벌써 15년 넘게 연출을 맡고 있습니다.

[한주선 / 재일동포 3세. 총연출가 : 작품 연출보다 성장하는 그 (출연자) 인생의 100일 동안을 연출해주고 싶다고 그런 느낌으로 하니까 나에게 있어서는 그게 제일 재밌다고 해야 할까..]

일본 강점기에 주선 씨의 할아버지는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왔습니다.

할아버지 대부터 뿌리 내린 일본.

그래도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은 언제나 함께였습니다.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주선 씨는 24살까지 조선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했습니다.

[한주선 / 재일동포 3세 : 북한에도 제가 조선 국적을 가졌을 때 두 번 가봤어요. 조선학교에서 교원(선생님) 하기 전에 평양에서 교원실습(교생실습)도 하고…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를 가르치는 게 좀 현실적으로 안 맞았고 저 자신도 의문이 많았어요. 내가 믿을 수 없는 건 가르칠 수 없지 그런 마음이 들었을 때 우리 어머니가 팸플릿을 가지고 왔어요.]

미국에서 전 세계 청년들이 함께하는 뮤지컬 활동의 홍보물이었습니다.

그렇게 한국 국적으로 바꿔가며 주저 없이 택한 미국행.

주선 씨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습니다.

[한주선 / 재일동포 3세 : 일본에 있을 때는 마이너리티(소수자)였어요. 모두 일본 사람이고 그 속에서 나만 조선 사람이고 조선 차별도 받잖아요. 근데 미국에 가면 모두 다른 사람이에요. 미 제국주의라고 적의 나라라고 배워 온 곳에서 편안하게 느꼈던 거에요. 처음으로 모두 달라서 모두 괜찮다는 느낌. 이렇게 정의라는 게 약하다고 할까, 간단하게 바뀌는 것. 이 세상에 그런 것 많지 않을까, 사람과 사람 관계도 그렇고 나라와 나라도 그렇고. 내가 이 깨달음을 작품 속에서 살리고 싶다...]

마지막 연습을 끝낸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바쁜 걸음을 옮기는 조미수 씨를 만났습니다.

[조미수 / 재일동포 3세, 한국 대표 : (지금 어디 가세요?) 지금 사무실에 가요. 어제 마지막 공연 연습이 끝났거든요. 짐들이 막 쌓여있기 때문에 그걸 정리해서 공연 준비를 하려고요.]

가정집처럼 생긴 이 공간이 바로 한국 시민 뮤지컬의 산실입니다.

[조미수 / 재일동포 3세, 한국 대표 : 이것도 자원봉사로 스태프나 출연자들이 다 봉사로 만들어줬고 소중히 계속 입고 있어요.]

시민 참가자가 돈을 보태고 봉사에 나서야 이뤄지는 뮤지컬.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족한 부분도 많다는데요.

하지만 그런 게 뭐 중요할까요?

[조미수 / 재일동포 3세, 한국 대표 : 사회를 바꾸자는 큰 꿈을 그리고 있기보다는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만남으로 그것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감동, 이어져 가면서...]

조미수 씨는 일본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한국은 석사 유학을 오기 전까지도 잘 모르는 나라였습니다.

일본어와 문화가 더 익숙했던 재일동포 3세.

하지만 너무도 익숙했던 그곳에서 언제나 이방인이었습니다.

[조미수 / 재일동포 3세, 한국 대표 : 저는 고등학교부터 일본 학교를 다니게 됐는데요. 처음에 저의 이름이 일본 친구가 들으면 특이하잖아요. 그런데 한자로 쓰면 약간 애매해요, 제 이름이. 일본 이름으로도 보이고. 특이한 일본 이름으로 보이기도 해요. 조미수라는 이름이. 어느 날 친구한테 사실 나는 일본사람이 아니라고 문득 이야기했더니, 그럼 외국인이냐고. 외국어로 이야기해봐, 나 김치 좋아하는데 이렇게 말을 해주는데. 아 국적이 다르면 외국인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이제까지 일본어로 대화하고 일본 문화에서 살아왔고 하지만 국적만 다르다. 이런 것이 어떠한 존재일까 라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종종 생각하는 일이 많았어요.]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한국인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당연한 고민이었습니다.

오랜 친구인 주선 씨가 한일 시민 뮤지컬을 제안했을 때, 비로소 답이 보였습니다.

[조미수 / 재일동포 3세 : 역시 우리가 (재일동포가) 처음에는 일본도 아니고 한국도 아니라는 부정적이고 슬픈 그런 감정이 있거든요. 어딜 가나 참 힘들게 살고요. 일본도 저희 정체성에 있고 한국도, 한반도가 저희 정체성에 있다는,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런 의미로 보고 한국인과 일본인 그런 구별이 아니라 한국에 거주하는 시민이고 일본에 거주하는 시민이다. 국가와 국가를 넘어설 수 있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저희는 한국인, 일본인 이런 말을 최대한 안 하려고 해요. 그래서 재일동포들은 그 사이에서 조금 더 넓은 시야에서 이어질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파가 절정에 이른 서울.

드디어 마지막 공연 날이 밝았습니다.

코끝까지 얼얼한 추운 날씨에도 공연장을 찾는 발걸음이 이어집니다.

[김경은 / 한일 시민 뮤지컬 운영진 : 700석 넘는 자리인데 700명 가까이 오신… 표는 다 팔렸고요. 매진이었고.]

이렇게 많은 관객이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데, 참가자들은 얼마나 설렐까요?

대기실에는 긴장보다 그저 유쾌함이 감돕니다.

[변경섭 / 한일 시민 뮤지컬 운영진 : 부족한 게 많았는데도 잘 해나갔으니까 그 마지막이 더 좋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한 번, 한 번 할 때마다 진일보하는 그런 출연자들이니까 잘할 거에요.]

"지금 몇 시? 17분. 오케이!"

"곧 시작해요! 마지막 공연입니다. 그런데 출발이기도 하고, 중간이기도 해요."

"오늘이 역사적 첫걸음이라는 느낌도 있어요."

주선 씨의 애정 어린 잔소리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마지막까지 최고의 소리로 목소리 다 쓰세요. 끝나면 목소리 안 나와도 돼요. 공연이 다음 공연이 없으니까 모든 소리로 마지막 기분 좋게 끝내주세요."

한국인과 일본인.

대학생, 주부, 무용수, 디자이너, 소방관.

100일 전만 해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만났습니다.

하지만 무대 위에 선 이 순간, '우리'가 되어 하나의 노래를 부릅니다.

다 함께 부르는 평화의 노래에 연습 때보다 더 힘찬 몸짓이 담깁니다.

관객에게도 전해졌을까요?

[우덕룡 / 한국외대 명예교수.관객 : 너무 잘해요. 이렇게 얼마나 연습도 잘하고 굉장한 하모니였어요. 좋아요.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노태훈 / 50세. 관객 : 아마추어들의 반란이 프로를 넘어섰어요!]

[윤미희 / 31세. 관객 : 공연 진짜 재밌게 봤고요. 네 대륙 사람들이 평화를 유지한다는 개념이 정말 재밌었고...]

무대의 막이 모두 내린 지금 이 순간,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그저 뜨겁게 벅차오릅니다.

(끝났는데 어떠셨어요?) "너무너무 즐거웠어요." (왜 우세요?) "행복해요!"

[서순석 : 세계는 하나라는 느낌이 들고요.]

[하마리 / 32세. 재일동포 : 호응을 많이 좋아해 주시고 응원해주시고 감동, 눈물 났다는 걸 들어서 우리가 해왔던 게 전달 잘 됐다는 거에 보람을 느꼈어요.]

[시노하라 모에코 / 33세 : 끝나버린다는 섭섭함이 커요. 하지만 일생의 친구라는 느낌이 크기 때문에 끝이 아니라 계속 이어갈 관계라고 생각하니까, 그게 또 평화의 첫걸음이랄까, 구식표현이지만요. 우리끼리는 관계를 이어갈 것이기 때문에 나라끼리 어떻다 해도 관계없어요.]

[조미수 / 재일동포 3세 : 함께 해줘서 고맙다, 너무 자랑스럽고 사랑한다는 말 정말 나오는 거 같아요. 하나의 뮤지컬 체험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게 앞으로 우리 생활에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주선 / 재일동포 3세 : 마지막이라는 느낌은 없고 이것이 출발이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3년 동안 이 활동을 한일 같이 만드는 이 프로그램을 해오면서 토대를 만들었던 느낌이에요.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그런 마음입니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흑(黑)도 백(白)도 아닌, 회색 지대 사람이라고 여겨 좌절한 적도 있었습니다.

[조미수 / 재일동포 3세 : 재일동포는 '가운데'에요. 경계선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 일본과 한국도 그렇고, 남과 북의 가운데 있고,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어떤가요.

한국과 일본, 남북을 사이에 둔 재일동포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해낼 수 있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한주선 / 재일동포 3세 : 나는 (재일동포가) 조커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트럼프, 카드 게임이 있잖아요. 스페이드도 하트도 아니고 다이아도 아닌 조커.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모든 것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재일동포는 어쩌면 그런 존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있어요." 세상을 밝게 바꿀 수 있는 재밌는 조커가 되면 어떨까..]

재일동포 3세들이 첫 싹을 틔운 희망의 노래.

서로 달랐던 시민 100명이 모여 그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한일 양국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새로운 시대의 평화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김희주 / 재일동포 4세 : 이런 말 있잖아요. '나라로서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으로 봐라.' 서로 눈을 보면서 이야기하면 언젠가 이어지고 서로 이해하고 그럴 날이 올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시하라 미카 / 24세 : '서로 믿고 다가서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서로 뭘 같이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는 일이 평화로 가는 첫걸음이라 생각합니다.]

[조미수 / 재일동포 3세 : 한국에 거주하는 누구나, 다 이민자도 괜찮고 동포도 괜찮고 일본 분들도 괜찮고 그런 분들이 다 어울리는 자리를 한국에서 만들어가고 싶다는 게 앞으로의 계획이에요.]

[다카하시 리나 / 34세 : 나라라는 게 결국 사람이 만드는 거니까 한 명 한 명이 잘 지낸다면 분명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한주선 / 재일동포 3세 : 세계평화 이러면 큰 것처럼 느끼는데 한 명, 한 명이 마음속에 고요함을 가지고 빛을 잘 깨닫고 하면 알아주는 것...]

"우리는 민나데(모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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