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연속기획 - 재일동포 1세의 기록 ④신용상

신년 연속기획 - 재일동포 1세의 기록 ④신용상

2018.01.27. 오후 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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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1세 고국을 떠난 이들은 일본에서 무엇을 지켜왔는가

식민지와 분단, 차별 그리고 굴곡진 삶

신년 연속 기획 재일동포 1세의 기록

신용상 재일동포 1세
1925년 출생 (93세)
경상남도 창녕군 출신
10세 때 일본 교토로 이주
1994~2000년 민단 중앙 단장 역임

[신용상 / 93세 : 이제 뭐 몇 십 년 (일본에) 살고 보니까 한국에 가서 우리가 살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서 살아야 된다. 살지만 우리가 권리를 가져야겠다. 인간 대접을 받아야 되겠다.]

4화 재일동포 권리에 바친 평생

차별이 당연했던 시절

[신용상 / 93세 : 일본에 오게 된 계기는 생활이 어려웠으니까. 저는 된장을 먹고 자랐으니까. 그 정도로 힘들었어요. 일본의 옛날 경찰이라 하는 것은 지금 경찰과 달리 조선인과 일본인을 바로 구별할 수 있었어요. 파출소 앞을 지나가면 경찰이 여기로 오라고 했고. 길 걸어가기만 해도 알 수 있었어. 그때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는데." "(경찰이) 왜 조사를 한 거죠?]

[신용상 / 93세 : 조선인이니까. 아무 이유도 없어요. 결국 그 당시 그들이 말하는 '불령 조선인'인지를 조사하는 게 그들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러니까 여러 가지 각도에서 '뭐하고 먹고 사는지', '왜 여기 왔는지' 그런 여러 가지 것들을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아주 차별이 심했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불령 조선인(不逞鮮人) 식민지 시절 일본의 제국 지배에 반대하거나 민족 독립을 시도한 조선인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했다

신용상 씨가 일본에 온 지 10년이 지난 무렵이었다

해방,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

[신용상 / 93세 : 아, 이걸로 우리도 자유롭게 되는구나. 뭐 자유롭게 된다기보다는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차별도 해방 이후 없어졌어요?]

[신용상 / 93세 : 차별이 없어졌다고는 못 하지. (차별이) 없어지지 않았지만 우리 스스로 당당하게 살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자부심을 가지고 사니까 차별을 받아도 그전과 달랐지.(해방 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서 뭘 하려고 해도 취직할 길이 없었어요. 어려웠어요. 자기가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은 공장 일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는 사람은 결국 뭘 해야 하냐는 (고민으로) 머리를 쓰고 있었고, 밥은 먹어야 하니까. 그때 일본에서는 대중오락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니까 대중오락의 일종으로서 파친코가 생겼는데 그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머리를 쓴 것이 파친코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랑니가 가른 운명

"(해방 후) 한반도에 돌아가자는 생각은 없었어요?"

[신용상 / 93세 : 나도 (돌아)가려고 시모노세키(지명)까지 갔어. 그런데 우리가 부친 짐이 안 와. 그래서 내가 시모노세키에서 도치기(지명)로 왔어. 나는 탈 객차가 없어서 화물차 타고 서서 왔거든, 시모노세키에서. 그때 아마 한 이틀 걸렸을 거야. 거기에다가 내가 어금니(사랑니)가 나기 시작해서 몸이 피곤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열이 나서 말이야. 돌아와서 시모노세키로 못 (돌아)갔어. 아는 사람 집에 가서 일주일 이상 거기서 내가 움직이지 못했어, 열이 나서. 그 와중에 짐도 다 시모노세키에 도착하고 배로 우리 부모, 형제들 먼저 고향에 갔어. 나 혼자만 결국 남게 됐어.]

해방 직후 재일동포들은 '재일본 조선인연맹'을 결성했다.

조선인연맹의 공산주의적 성향에 반대한 동포들은 따로 '재일본 조선 거류민단'을 설립했다.

[신용상 / 93세 : 우리는 본국에 돌아간다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만든 조직이 (재일본 조선) 거류 민단이야.]

거류: 임시로 머물러 삶

[신용상 / 93세 : 그런데 몇십 년 살고 보니까 한국에 가서 우리가 살 수가 없잖아요. 한국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사람 누가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일본)서 살아야 한다. 박정희 정권 때 한일회담을 체결한 것은 잘했다고 우리(민단)는 보고 있어요. 그런데 그때 민단의 입장에서 아주 섭섭한 것이 무엇이냐면 (한국이) 재일동포의 권익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이 없었어요. 재일동포 3세쯤 되면 전부 일본인이 된다고 그랬어요.(그런데) 지금 4, 5세가 돼서도 일본 사람 안 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재일동포의 마음을 못 알아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일본 사람들의 차별이 얼마나 심했냐면, 외국인 등록증을 바꿀 때 14세 이상 되면 지문날인을 했어요. 일본에는 죄 없는 사람들은 지문날인을 안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14살이 되면 죄인 취급을 받는 거야.]

1952년 외국인등록법이 제정되면서 14세 이상 외국인에 대한 지문날인이 시작되었다.

1982년 이후에는 16세 이상 외국인이 5년에 한 번씩 지문을 채취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문날인은 1999년에 폐지되었다.

재일동포 권리를 위한 싸움

[신용상 / 93세 : 여기(일본)에서 살려면 여기서 권리를 얻어서 일본 사람과 같은, 동등한 권리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민단의 조직명에서, '거류'라는 말을 빼고. 동시에, 내가 단장 되었을 때 운동한 것이 지방참정권이에요. 내가 지방 참정권을 받아야 하겠다고 6년간 애를 쓰고서 했는데, 성공을 못 했어요. 그게 관철되었으면 지금 우리 재일동포의 입장이, 지위가 영 달라졌을 건데... 지금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 사는 데가 자기 고향인데. 여기(일본)에서 몇십 년이나 살았는데 어딜 가도 사는 곳이 제2의 고향이라 말이야.]

"재일동포는 일본인과 동등한 권리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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