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우드] 한국영화 걸작선 '맨발의 청춘'

[한류우드] 한국영화 걸작선 '맨발의 청춘'

2017.10.01. 오전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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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영화의 별이 또 하나 졌습니다.

방금 보신 영화 '맨발의 청춘'을 연출한 김기덕 감독이 유명을 달리한 것인데요.

고 김기덕 감독의 대표작 '맨발의 청춘'은 1960년대 청춘 영화의 대명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고 김기덕 감독의 명복을 빌며, 이번 주 한국영화 걸작선에서는 영화 '맨발의 청춘'을 소개해드립니다.

깡패 두수는 밀수품을 파는 건달 두목의 심부름이나 하며 먹고 살고 있습니다.

의수에 밀수 시계를 담아 운반하던 두수는 깡패들에게 둘러싸인 여대생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깡패 : 넌 뭐야?]

[두수 : 이거 안 보여? 그 여학생들 놔줘. 야, 늬들 어느 패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이 자식들이 어디서 행패야, 썩 꺼지지 못해?]

결국 두수는 폭력배 두목과 결투를 하게 되고,

[두수 : 그런 장난은 안 하는 게 좋을걸?]

폭력배 두목은 두수에게 칼을 휘두르다 그만 자신이 찔려 죽고 맙니다.

이 사건으로 두수는 살인 용의자로 몰려 체포되죠.

[기자 : 범인과 피해자와는 과거에 어떤 관계가 있었나요?]

[기자 : 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한편, 두수가 구해준 여학생 중 한 명인 요안나는 외교관의 딸이었는데요.

두수가 자신들을 구해준 사실을 경찰에게 알려 누명을 풀어 줍니다.

[요안나 : 그 흰 잠바를 입은 분이 구해주지 않았으면 저희들은....]

두수는 자신을 풀려나게 해준 요안나에게 왠지 모를 호감을 느끼는데요.

때마침 요안나가 감사를 표하기 위해 두수를 직접 찾아옵니다.

[두수 : 아니, 친구들한테 얘기 듣고 왔어요?]

[요안나 : 아니요.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고 왔어요.]

[두수 : 이런 덴 아가씨 같은 분들이 올 데가 못 되는데. 자, 내가 바래다줄 테니까 갑시다.]

이렇게 수줍은 첫 만남을 갖게 된 두 사람.

어느새 서로에게 끌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둘은 주말마다 데이트를 하게 됩니다.

밑바닥 삶을 전전하며 살아온 두수는 상류층 집안의 요안나 덕분에 난생 처음 양복도 입고, 음악회라는 데도 가보죠.

이렇게 사랑에 빠지게 된 두수와 요안나.

[두수 : 나하고 이렇게 다니는 게 창피하지 않아요?]

[요안나 : 창피하다니, 왜요?]

[두수 : 나 같은 건달하고 요안나 씨 같이 예쁘고 깨끗한 아가씨하곤.]

[요안나 : 어머나, 그런 말 하면 싫어요.]

[두수 : 왜 그런지 자꾸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요안나 : 아이, 또 그런 말씀.]

폭력 조직에 몸담고 있어 자주 유치장 신세를 져야 하는 두수는 요안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자신의 신세에 자포자기의 심정이 됩니다.

요안나는 어머니를 통해 두수의 일자리를 알아보려 하지만, 그것마저 견고한 신분의 벽 때문에 쉽지가 않습니다.

[요안나 어머니 : 아니, 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저 사람을 네가 오 여사에게 소개하리라고 생각했단 말이냐?]

[요안나 : 엄마.]

[요안나 어머니 : 우리하고 교제할 사람이 못돼. 집에 찾아오는 것도 사양해 줘야겠다.]

점점 더 큰 걸림돌에 가로 막히는 두 사람.

두수는 요안나를 강하게 거부하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쉽게 놓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요안나 역시 두수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죠.

이제 두 사람은 세상이 정해 놓은 질서를 뛰어넘기 위한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됩니다.

영화 '맨발의 청춘'은 1964년 개봉 당시 서울에서만 25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당시로선 상당한 흥행 기록을 세웠습니다.

특히 영화 속에서 두수가 입고 다니는 가족 점퍼와 스웨터, 청바지 차림은 당대의 패션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는데요.

영화가 묘사하는 청춘 문화는 실제 60년대 젊은이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지만, 적어도 당대 젊은이들의 좌절감과 낭만을 동시에 투영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했기 때문에 당대 우리나라의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습니다.

주인공인 신성일과 엄앵란은 이 영화가 히트한 직후에 결혼식을 올려 또 한 번 세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고 김기덕 감독은 대표작 '맨발의 청춘' 말고도 20여 년 동안 70여 편의 작품을 연출했는데요.

특히 196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습니다.

4.19와 5.16을 막 경험한 60년대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 영화, '맨발의 청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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