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코리아] 인터뷰 - 난민 출신 UN위원 '욤비 교수' 편

[원코리아] 인터뷰 - 난민 출신 UN위원 '욤비 교수' 편

2017.02.26. 오전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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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욤비 토나 / 광주대 교수 : 우리는 난민들과 같이 살고 있어요. 제가 난민이에요. 제가 잘 알아요.]

[욤비 토나 / 광주대 교수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욤비 토나 / 광주대 교수 : 제가 한국 2002년 왔어요. 2003년부터 제가 난민운동 그때부터 시작했어요.]

[욤비 토나 / 광주대 교수 : 오늘 아침부터 밤까지 난민들 계속 전화 왔어요. '도와주세요. 제가 여기 법무부 있어, 출입국에 있어요. 내 카드 뺏어요. 난민 신청 취소했어요. 우리 집에 아기 아파요. 병원 있어요.]

난민 출신 처음으로 아태 지역 난민단체 의장 선출 최근 UN 기구 위원 위촉 전 세계 시민단체 가교 역할

[욤비 토나 / 광주대 교수 : 우리는 난민들과 같이 살고 있어요. 제가 난민이에요. 제가 알아요. 한국에서, 일본에서, 필리핀에서, 어디 아시아 태평양에서... 난민들 어떻게 사는지, 제가 잘 알아요.]

[욤비 토나 / 광주대 교수 : (제가 일할 때) 공장에서 아프리카 사람들 기계 같이 취급해요. 계속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흑형, 힘 많아! (일) 계속 해!']

콩고 왕자 출신으로 우연히 한국 난민 신청.

난민 인정까지 험난했던 한국 생활

[욤비 토나 / 광주대 교수 : 제가 콩고에서 어릴 때부터 학교 졸업할 때까지, 힘든 일은 한 번도 안 했어요. 기계 몰라. (공장에서) 그 기계 제가 처음 해 봤어요.]

난민 인정 뒤 그리던 가족들도 한국행, 그러나 쉽지 않았던 한국 적응.

[욤비 토나 / 광주대 교수 : (자녀들을 위해) 우리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연락했어요. 첫 번째 답, 어느 나라 사람? 콩고. 콩고가 어디야? 아프리카. 어, 안돼! 다른 학교 갔어요. (이해할 수 없네요.) 그냥 다른 아프리카 사람도 다 불법인데, 미국 사람들 다 괜찮아, 유럽 사람들 다 괜찮아. 이거 문제예요.]

[욤비 토나 / 광주대 교수 : 한국 사람들 이 책('내 이름은 욤비') 읽고 연락 오면 첫 번째로 이야기해요. '미안해. 미스터 욤비, 진짜 미안해요!' ]

전 세계 난민 6천만 명…이제 한국이 도울 때!

[욤비 토나 / 광주대 교수 : 똑같아. 1980년대, 1950년대 한국도 힘들었어요. 한국 사람들도 나갔어요. 거기서 지원받았어요. 이승만, 김대중 대통령 미국에서 무슨 비자 받았어요? 난민 비자! 거기 지원받아서 다시 한국 와서 이승만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됐어요.]

둘째 아들 조나단의 중학교 졸업식.

욤비 교수만큼 가족들 한국 적응기도 화제.

자녀들 유쾌한 입담으로 SNS에서 유명세.

[조나단 토나 / 욤비 교수 둘째 아들 : 여러 가지 저희가 흑인이라서 겪는 불편함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데. '아 저거 공감돼. 여기에서 이야기해줘서 고맙네'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욤비 토나 / 광주대 교수 : (광화문 집회에) 3번 갔어요. 우리 이거 진짜 이 모델 본받아야 해요. 촛불 집회 세계에서 한국이 1등이에요. 콩고 사람들도 이런 시위를 1주일만 하면 변화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많은 콩고인들은 무서워합니다.]

[정유신 / YTN 기자 : 언젠가는 콩고로 돌아갈 거죠?]

[욤비 토나 / 광주대 교수 : 네, 꼭 가야죠. (콩고가) 우리나라니까요!]

두 가지의 꿈, 하나는 콩고의 민주화,

다른 하나는 한국을 난민들이 살아가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

욤비 교수가 생각하는 한국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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