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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꽃피었습니다] 같은 아픔 겪은 참전용사들 돌보는 박옥선 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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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2018-06-10 19:57
6.25 참전용사들의 영령이 잠들어 있는 현충원.

이 땅에서 일어났던 바로 그 전쟁의 기억을 가진 참전용사 250명이 오늘 이곳에 모였습니다.

1년에 한 번 있는 봉사 활동을 위해서인데요.

[김종환 / 87세·6.25 참전 유공자회 서울지부 : 쉽게 말하자면 국군묘지에 여러 전우가 잠자고 있잖아요. 그 잠자는 용사들께 살아있는 우리가 조금 더 성의를 보이기 위해서, 결국 청소하러 나오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정화. 작년에 했던 꽃을 새것으로 바꾸기 위해서 나와 있는 거예요.]

전장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러낸 이 용사들 사이에 눈에 띄는 유일한 여성이 있습니다.

박옥선 씨.

간호장교로 전쟁을 함께 겪어낸 여성 참전용사입니다.

[박옥선 / 6.25 참전 유공자회 종로구지회장 : 주로 봉사 활동 하는 게 이 지회장 자리에요. 우리 종로 지회에도 (회원 중) 17분이 (기초) 수급자로 되어 있어요. 힘들게 사시는 분이 너무 많아요. 그분들을 위해서 구청이나 동에 다니면서 협조를 구해서 쌀을 좀 드린다든지, 라면을 드린다든지…. 아직 연탄 때시는 분이 계세요. 작년에 천장을 해드렸는데 그런 활동을 하면서 (참전용사 봉사에) 협조를 하고 있어요.]

Q. 왜 지금까지 봉사하시나요?

[박옥선 / 6.25 참전 유공자회 종로구지회장 : 그분들이 나하고 똑같은 과정을 겪었잖아요. 나도 그런 고생을 해봤으니까, 당신들도 그런 고생을 하고 살았으니까 내가 살아있을 때 조금이라도 당신들이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게 내 의무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박옥선 / 6.25 참전 유공자회 종로구지회장 : 이 간호장교라는 게 참, 남의 생명을 만지는 거거든요. (전쟁 때는) 땅을 한 평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서, 38선을 긋기 위해서 최악의 상황이었어요. 울지 않고는 도저히 치료할 수가 없는 그런 상황에서 환자를 대하거든요. 그러면 하나라도 더 살리고 싶고 하나라도 더 구원해주고 싶고 한데, 그 당시에는 미군들에게 우리가 물자를 받았잖아요. 물자가 굉장히 부족했어요. 치료 물자가 부족하니까 정말 한 번이라도 붕대를 더 감아주고 싶어도 못 감아주고, 약을 발라주고 싶어도 발라주지 못하고, 정말 안타깝게 죽어가는 걸 많이 보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이분들에게 정말 감사하고, 살아 돌아왔다는 거 (하나에.)]

Q. 간호장교로는 어떻게 가게 되셨는지?

[박옥선 / 6.25 참전 유공자회 종로구지회장 : 그때는 간호사들이 굉장히 부족했어요. 그래서 간호사관학교 2기생 모집, 그런데 이제 저희 클래스에서 아홉 명이 가자, 이때다, 우리도 가서 무언가를 해보자 해서 저는 부모님께 거짓말했어요. (간호사) 시험 보고도 시험 봤다는 소리를 안 했어요. 그날 아침에, 서울역으로 다 모이라고 했을 때 책가방 든 채, 교복 입은 채 그냥 나 부산 가요 하고 나왔을 때 아버지가 쫓아 나오셨어요. 어딜 가느냐고 물으셔서 (아버지가) 우시는 걸 보고 나서는, 아, 이건 아니다. 내가 약해지면 아버지까지 더 약해지겠다 그 생각을 하고서는 제가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갔죠.)]

[박옥선 / 6.25 참전 유공자회 종로구지회장 : 지금 안타까운 게 뭐냐면 육군사관학교에 가서 강의했는데 애들이 몰라요. (6.25 전쟁이) 몇 년도에 일어났고, 몇 개국이 참여했느냐를 몰라요. 얼마나 안타까워요. 전쟁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파괴에요. 파괴도 구할 수 없는 파괴죠. 한번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는요, 아무것도 만들 수 없어요. 정말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다시 일어나는 상태, 지금 생각도 하기 싫어요. 전쟁은 절대 있어서는 안 돼. 정말 화평, 평화, 서로 협조해서 살기 좋은 나라. 서로 헐뜯지 말자 이거죠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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