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호랑이 수완 대령

작은 호랑이 수완 대령

2018.06.10. 오후 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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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파병을 결정한 나라 태국.

태국 참전용사들은 체구는 작지만 호랑이처럼 용맹하다고 해서 리틀 타이거라 불렸는데요.

스무 살에 한국전에 참전한 작은 호랑이 수완 대령을 찾았습니다.

[수완 찐다 / 태국 참전용사 : 저는 수완 찐다 대령입니다. 1951년 5월 5일에 한국 전쟁에 참전했고, 1952년 1월 5일에 돌아왔습니다. 일본 배를 타고 12일 동안 달려서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유엔군 진영으로 가서 훈련을 3개월 동안 받고 전쟁터로 갔습니다.]

Q. 두렵진 않으셨나요?

[수완 찐다 / 태국 참전용사 : 제가 전쟁하러 갔을 때 여러분들 나이만 했었죠. 이목구비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가서 죽을 수도, 크게 다칠 수도, 어쩌면 다리나 팔이 잘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도 제 마음은 도와주러 가고 싶더라고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는?

[수완 찐다 / 태국 참전용사 : 폭찹 (Pork Chop)이죠. 폭찹힐 전투라고 불러요. 우리 군인들이 500m 좀 더 되는 전방을 감시할 수 있는 관찰용 렌즈가 있는 언덕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북한군들, 그런데 아마 중공군들이 더 많았을 거예요. 그들이 우리 언덕 쪽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저희도 맞서 싸우러 갔죠. 그 전투 때 저희 태국군들이 대략 26명 전사했습니다. 서로 찌르고 싸우고.]

Q. 급속하게 성장한 한국을 바라보는 마음은?

[수완 찐다 / 태국 참전용사 : 제가 한국전쟁에 1951년에 갔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이 훈장을 받으러 한 번 더 갔습니다. 나라가 엄청나게 바뀌어버렸어요. 모든 게 신기했어요. 한국전 당시의 모습이 기억도 안 나요. 당시랑 비교했을 때 한국은 발전을 엄청나게 했습니다. 한국은 이제 저희를 도와줍니다. 이 건물도 한국이 와서 지어줬고요, 그래서 주변에 이 주택단지도 있을 수 있습니다.]

Q. 마지막 소원이 있으시다고…

[수완 찐다 / 태국 참전용사 : 저는 슬픕니다. 요즘 매일 기도드립니다. 서로 총 쏘고 죽이지 않게 해달라고. 한국과 북한의 책임을 지는 각 나라의 지도자께 정중히 부탁합니다. 서로 손을 잡고 화합하고 단결해서 경제를 일으키고,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랍니다. 서로 고통스럽게 쏘고 죽이는 무기를 더는 만들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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