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세계로 가다] 가방 디자이너 송지현, 뉴욕에 우뚝 서다

[청춘, 세계로 가다] 가방 디자이너 송지현, 뉴욕에 우뚝 서다

2015.08.29. 오전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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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패션의 중심지하면 뉴욕을 빼놓을 수 없죠.

이곳에서 당당히 핸드백 디자이너로 인정받은 한국인이 있습니다.

송지현 디자이너인데요.

치열한 패션의 도시 뉴욕에서 그녀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함께 만나보시죠.

린제이 로한, 바네사 허진스...

헐리우드의 패션 아이콘들이 들고 있는 핸드백을 보며 유독 즐거운 사람이 있다.

동포 디자이너 송지현 씨다.

[송지현, 액세서리 디자이너]
"내가 디자인한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아직도 짜릿짜릿하고 스릴 있고. 힘들었던 거 다 보상받는 기분이죠."

송지현 씨가 비교적 신생 브랜드인 이 회사에 온 것은 지난 2010년, 당시 이곳은 18명이 일하던 작은 회사였다.

하지만 불과 5년 만에 80명 가까이 일하는, 유명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그러기까지는 송지현 씨의 노력이 절대적이었다.

[레베카 미카, 패션 브랜드 공동 창업자]
"처음 지현이 우리에게 온 것은 신발 디자인을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한 직원이 그녀는 너무 뛰어나 다른 일도 할 수 있을 거라 했죠."

이후 그녀는 신발과 핸드백의 디자인과 샘플 작업 등 제품 시작부터 상품화되기까지의 전 분야에 걸쳐 활동했다.

그 결과 지금의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

하지만 그 과정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한국에서 이미 인정받는 핸드백 디자이너였지만 10년 전 뉴욕에 온 뒤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대학을 다시 다녔고 인턴과 보조 디자이너 생활까지 했다.

[송지현, 액세서리 디자이너]
"한국에서 다 했던 공부, 다 했던 일들이었기 때문에 과정 중에는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한국에서 일했던 친구들은 자리 잡고 성장하고 있는데..."

하지만 송지현 씨는 그 기간을 한국과 다른 미국 시장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여기며 공부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아시아인으로 여러 다른 문화와 편견에도 매번 부딪쳐야 했다.

[송지현, 액세서리 디자이너]
"유럽에서 온 친구들에 대한 좋은 선입견, 환상이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언어의 장벽 때문에 제대로 말하기 어려웠고, 그 때문에 억울한 일도 많았다.

현정 씨는 싸우는 대신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켰다.

[송지현, 액세서리 디자이너]
"다른 사람 한 장 그릴 때 저는 열 장 그리고 다른 사람이 한 시간 앉아 있을 때 열 시간 앉아서..."

이렇게 느리지만 탄탄히 다져온 그녀의 자리인만큼 이제는 주변 사람들의 신뢰가 두텁다.

나아가 한국인들에 대한 이미지마저 변화시켰다.

[레베카 미카, 패션 브랜드 공동 창설자]
"우린 많은 한국계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능력 있고 굉장히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창조적이죠."

송 씨 회사 제품의 70%를 생산하고 있는 이곳 역시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다.

송지현 씨는 이곳 공장과 회사의 소통을 담당하며 중간자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최영표, 제품 제조 공장 대표]
"아무래도 한국 사람이다 보니까 정서가 잘 맞으니까."

패션의 중심지 뉴욕에서 한국인으로서 당당히 꿈을 이뤄낸 그녀는 아직도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송지현, 액세서리 디자이너]
"디자인만 아는 게 아니라 생산, 개발 PR까지, 모든 패션 분야를 두루두루 아는 지휘자처럼 아우를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는 게 최종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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