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자유!'…개인 빚 갚아주는 시민 연대

'당신은 자유!'…개인 빚 갚아주는 시민 연대

2014.03.22. 오전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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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의 가계 빚이 천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빚을 감당 못해 개인 회생을 신청한 사람도 지난해 사상 최고인 10만 명을 넘어섰는데요.

빚의 수렁에 빠져 고통받는 사람들을 시민의 힘으로 구제하는 사회운동이 미국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뉴욕 김창종 리포터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김창종 리포터!

'개인의 빚을 시민들이 갚아준다'는 얘기죠?

어떤 계기로 이런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 겁니까?

[기자]

이 프로젝트는 '롤링 주빌리'라는 이름의 시민 모금 운동입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낸 돈으로 개인의 부실 채권을 사들여 대신 갚아주는 것인데요.

2천 12년 11월 시작한 이 운동은 1년 간 약 천 4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50억 원에 이르는 빚을 해결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혜택을 본 채무자는 미국 전역에서 2천 7백 명에 이릅니다.

지난 2천 11년 미국 금융위기 와중에 일어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 기억하실 겁니다.

'개인 빚 갚아주기' 운동은 당시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끌고 있습니다.

[인터뷰:앤 라슨, '롤링 주빌리' 운영진]
"시위 현장에서 만난 우리들은 대부분 빚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학업, 의료 등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빚을 지지 않으면 안됐다. 그래서 조직화의 필요성을 느꼈고 함께 모여 해결해 보려고 모이게 됐다."

[앵커]

상당한 금액인데요.

이 150억 원이라는 기금이 시민 모금으로 마련된 건가요?

[기자]

먼저 미국의 개인 빚 정리 절차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요.

은행 등 금융권은 개인이 빚을 갚지 못하면 90일 후 부실채권회사에 이 빚을 넘깁니다.

어음 할인을 하듯 원래 갚아야 할 빚에서 상당액을 빼고 싼 값에 파는 것이죠.

이 회사에서도 일정 기간 빚을 회수하지 못하면 그 다음은 더 싼 가격에 또다른 회사로 채권이 넘어갑니다.

이렇게 몇 단계를 거치면 갚아야 할 금액은 극히 일부만 남게 되는거죠.

그래서 '롤링 주빌리'가 150억 원 상당의 빚을 갚는데 들어간 실제 비용은 약 4억 원 정도였습니다.

[인터뷰:앤드류 로스, 뉴욕대 교수]
"채권자들은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들에 대해 '모럴 해저드'라며 비난한다. 하지만 누가 더 도덕적으로 문제인가? 빚의 실제 가치는 그렇게 싼 것임에도 불구하고 채권자들은 그렇게 많은 돈을 뜯어가지 않나?"

[앵커]

그렇게 되는 거군요.

전국에서 자기 빚도 좀 갚아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 같은데요.

수혜자를 선정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기자]

'롤링 주빌리' 운영진은 특정한 사람을 수혜자로 선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부실 채권을 묶음으로 사들이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누구의 빚인지 모른다고 하는데요.

운영진은 빚을 갚은 뒤 당사자를 확인해 이제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편지를 한 통 보낸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개인 파산 신청자의 60% 이상이 비싼 의료비 때문에 빚을 진 경우인데요.

수혜자 대부분은 의료비를 갚지 못해 고통받아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앵커]

앞서 자본주의의 탐욕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에서 개인 빚 갚아주기 운동이 시작됐다고 하셨는데요.

이런 운동이 이어지는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봐야 할까요?

[기자]

'롤링 주빌리' 운영진이 수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이런 문구가 담겨 있습니다.

'누구도 의료나 주거, 교육 등 기본적인 삶의 조건으로 인해 빚에 시달려서는 안된다'는 내용입니다.

2011년 당시 월가 시위는 세계인이 현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성찰하게 만든 사회 현상이었습니다.

일부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긴 했지만 상징적 구호에 그쳤다는 평가도 있었는데요.

'롤링 주빌리' 운동은 그 한계를 뛰어넘어 서민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키자는 실천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앤드류 로스, 뉴욕대 교수]
"우리의 장기적 목표는 채무자들의 연대를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빚을 지게 되면 채권자의 지위는 올라간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불평등을 선거로 뽑힌 정치인들은 감시하지 못한다. 채무자들의 연대를 만드는 일은 민주주의를 재건하는 일이기도 하다."

[앵커]

이 운동의 미래가 궁금해지는데요.

다른 분야로 활동을 넓힐 계획은 없나요?

[기자]

'롤링 주빌리'의 다음 목표는 학자금 대출입니다.

미국내 대학과 대학원생의 대출금 총액은 지난 2012년 1조 달러, 우리 돈으로 천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학생 한 명이 평균 3천만 원 가까운 빚을 안고 사회에 나오게 되는 셈인데요.

최근 취업까지 어려워지면서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롤링 주빌리 운영진은 앞서 의료와 함께 교육의 권리 역시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라고 밝힌 바 있는데요.

전국에서 모인 기부금 약 70만 달러와 추가 모금을 통해 순차적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아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앵커]

얼마 전 가수 이효리 씨가 손배소와 가압류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며 4만 7천 원을 기부해 화제가 됐는데요.

어려운 사람의 손을 기꺼이 맞잡아주는 시민들의 연대가 자본의 횡포에 맞서 인간다움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아닐까요?

김창종 리포터,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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