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로맨스에 빠진 이탈리아 [최기송, 이탈리아 리포터]

황혼 로맨스에 빠진 이탈리아 [최기송, 이탈리아 리포터]

2013.11.09. 오전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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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해 이혼 건수를 살펴보니 신혼 부부보다 나이 지긋한 부부의 이혼이 더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른바 '황혼 이혼'이 늘어나는 세태는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닌데요.

한국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이탈리아에서는 60대를 넘겨 이혼한 사람들이 새로운 짝을 찾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펴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의 나라'다운 이탈리아 노인들의 '황혼 로맨스', 최기송 리포터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최기송 리포터!

한국에서는 지난해의 경우 3쌍 가운데 1쌍이 이혼을 택하고, 또 결혼 20년 이상된 부부의 '황혼 이혼'도 3만 쌍이 넘었는데요.

이탈리아의 이혼율은 어떤 추세입니까?

[기자]

이탈리아의 경우, 유럽에 불어닥친 경제 위기가 장기화 하면서 이혼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요.

지난 2009년 5만 4천5백건으로 정점을 찍었던 이혼은 이후 점점 줄기 시작해 급기야 지난해 3만 5천여 건으로 급감했습니다.

약 35% 가량 떨어진 셈인데, 이같은 추세는 무엇보다 위자료 등 경제적인 문제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60세 이상의 이혼은 전체 이혼율의 6.4%에 불과하지만 꾸준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보편적인 가톨릭 국가의 정서상 이혼보다는 별거를 택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헤어진 부부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위자료 등에 대한 부담과 함께 까다로운 이혼 절차도 별거를 선호하는 하나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앵커]

이탈리아에서는 '황혼 이혼'한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곧바로 새로운 배우자를 찾는다고 들었는데요.

60대 이상 가운데 재혼하는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기자]

60대 이상 남녀가 연령에 상관없이 새 배우자를 선택한 경우는 2년전에 1200여 건이 넘었습니다.

전체 결혼 비율 가운데 0.7%에 불과한 미미한 수친데요.

하지만 예식과 혼인신고는 하지 않고 사는 사실혼 관계 부부의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60대 이상끼리의 결혼도 2009년 300쌍, 2010년 272쌍, 2011년 296쌍으로 매년 300여 쌍 정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앵커]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를 '사랑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사실 요즘은 젊은이들도 연애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탈리아 노인들은 어떻게 짝을 찾아 나서나요?

[기자]

이탈리아에서는 60세 이상 노인을 '제 3세대'라고 부르는데요.

이들은 대개 은퇴 후에도 각종 사회 활동을 활발히 하며 삶을 적극적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는 이런 제 3세대를 겨냥한 댄스 교실 등 취미클럽이 발달해 있는데요.

주로 이 곳에서 노인들은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있습니다.

[인터뷰:시에나(65세), 토리노 시민]
"오늘 저녁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탱고를 추니 정말 행복해요."

또한 동네마다 있는 노인정에서 다양한 모임을 통해 짝을 찾아 재혼을 하거나 동거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인터뷰:산토, 토리노 시민]
"동거가 좋죠. 결혼보다는 동거. 동반자를 찾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80살인데요.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해요."

[앵커]

사랑을 찾아나서는 노인들이 많다보니 예기치 못한 일들도 벌어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얼마 전 90대 노인과 결혼한 뒤 전 재산을 빼앗은 외국인 가정부 사건으로 이탈리아가 시끄러웠다면서요?

[기자]

91살의 노인이 20대 루마니아 가정부와 결혼했다가 낭패를 당했는데요.

어처구니없게도 신부 가족들은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이 노인을 협박하고 폭행해 체류 허가와 재산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탈리아 노인과 동유럽 국가 출신 가정부 사이의 사건이 최근 이탈리아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인데요.

황혼의 로맨스를 꿈꾸다 이른바 '꽃뱀'에 걸려 피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아 이탈리아 당국이 주의를 당부할 정도입니다.

[앵커]

아직 한국에서는 환갑을 넘긴 어르신들이 이혼 뒤 공개적으로 연애를 하거나 배우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요.

이탈리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뭘까요?

[기자]

이탈리아는 아시다시피 세계 3위의 고령 국갑니다.

65세 이상의 노년층이 20.3%로 지난 2006년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을 정도인데요.

남성의 평균 기대 수명은 79.3세, 여성은 84.6세로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때문에 이탈리아에서는 60대를 삶을 정리하는 때가 아니라 적어도 20년 이상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나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예순을 넘겨서도 얼마든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이 일반화 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마리오(68세), 토리노 시민]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새 인연을 만나는 사람이 많아요. 내가 애인을 만난다면 내 나이는 별로고요. 한 열살 어린 사람을 만나고 싶네요."

[앵커]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라는 말이 생각나는데요.

오랜 세월 고심 끝에 새로운 인생을 찾기로 결심한 어르신들이 한국에서도 당당하게 연애하고 남은 삶을 멋지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최기송 리포터! 오늘 소식 감사합니다.

[기자]

지금까지 이탈리아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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