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가 된 청년들...땀으로 일군 삶

광부가 된 청년들...땀으로 일군 삶

2013.06.09. 오전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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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50년 전 부푼 꿈을 안고 독일 땅을 처음 밟은 젊은 광부들의 삶은 어땠을까요?

이들의 땀방울은 그 뒤 14년간 후배 광부들의 독일행을 이끈 밑거름이 됐습니다.

하지만 젊음과 목숨까지 바쳐 일한 광부들 가운데 일부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등 힘겨운 나날을 보내며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운경 리포터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1963년 12월, 광부 1진으로 선발된 청년 123명이 독일로 떠납니다.

1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은 이들은 대학을 그만뒀거나, 공무원 출신 등 대부분 고학력자였습니다.

당시 대구에서 5급 공무원으로 일하던 유한석 씨도 그 중에 한 명입니다.

당시 월급의 10배가 넘는 돈을 벌 수 있다는 신문 광고가 유 씨의 인생을 바꿨습니다.

[인터뷰:유한석, 파독 광부]
"독일에 갔다오면 벼락 부자가 될 것 같은 그런 상당한 봉급을 받을 수 있겠습니다."

부푼 꿈도 잠시 뿐, 독일에 첫 발을 내딛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첫 관문인 신체 검사에서 회충이 많다는 이유로 함께 떠난 청년 모두와 함께 다시 돌아와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개발된 약으로 치료를 받고서야 비로소 지하 갱도로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35도가 넘는 더위 속의 중노동은 상상 이상의 시련이었습니다.

막장이 무너져 눈 앞에서 동료가 숨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철판에 깔려 쓰러져도 망치질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인터뷰:유한석, 파독 광부]
"아이고! 내가 왜 무슨 팔자로 여기 독일까지 와서 이런 일을 하나. 차라리 돈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게 낫지."

고향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버틴 지 반 년만에 독일에 모인 8개 나라 광부들 가운데 우리 청년들은 최우수 광부로 선정됐습니다.

50년이 흘러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그때 그 광부들이 독일에 다시 모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백발의 노인이 됐지만 고통 속에 꽃핀 우정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인터뷰:한영준, 파독 광부]
"처음에 오신 분들은 고생을 많이 했어요. 이분들이 저희들에게 많이 교훈도 주고 생활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광부들 가운데 상당수는 독일 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등 새로운 터전에 정착해 안정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부상을 입거나 질병을 얻은 채 독일에 남은 일부 동포들은 70여 만원에 불과한 연금으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터뷰:홍윤표,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 부회장]
"하물며 짐승도 죽을 때가 되면 고향을 찾는다고 했어요. 나머지 생애를 대한민국 땅에 있다 죽겠다는데 거기에 대해 우리 대한민국에서 모른척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독일 사회에 한국을 심은 젊은 광부들.

한국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된 이들의 발자취는 역사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겁니다.

독일 에센에서 YTN 월드 김운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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