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 "남성 중심 충무로...본질적 접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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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6. 오전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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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윤지 기자] 배우 김혜수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카리스마’다. 건강한 아름다움에서 뿜어져 나오는 당당함, 똑 부러지는 말투에서 묻어나는 지성 등 그에겐 상대방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다. 스타 김혜수를 뛰어넘는 배우 김혜수는 더 매력적이다. 화투판의 꽃(영화 ‘타짜’, 2006) 혹은 섹시한 금고털이 도둑(영화 ‘도둑들’, 2012)으로서 관객들의 마음을 훔치는가 하면, 뛰어난 능력을 지닌 비정규직 직원(드라마 ‘직장의 신’,2013)이 돼 전국의 비정규직들을 위로했다. 과감한 도전, 즉 그가 충무로 여제(女帝)로 불리는 이유였다.

오는 29일 개봉하는 영화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 제작 폴룩스픽쳐스)에선 그런 김혜수의 이름값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차이나타운’은 지하철 10번 보관함에 버려진 소녀와 그를 입양한 사채업자 엄마의 이야기다. 김혜수는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비정한 엄마 역을 맡았다. 지금껏 잔혹한 남성 보스 캐릭터는 많았지만, ‘차이나타운’의 엄마처럼 극 전체를 압도하는 여성 보스 캐릭터는 보기 드물었다. 이를 위해 김혜수는 특유의 화려함을 지워내고 즐거운 모험을 감행했다. 그로부터 특별했던 작품, ‘차이나타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 중 언급한) 영화 ‘위플래쉬’를 최선을 뛰어넘는 혼신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차이나타운’은 혼신을 다한 작품인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데, 혼신을 다했느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못할 것 같다. 사람이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도 힘들다. 그럴 수 있는 작품을 만나서 그럴 순간이 있을까 싶다. 최근에 1년에 한 편 정도하고 있다. 까다로워서 그런 게 아니라, 작품을 택하기가 어려운 것도 있다. 물론 예전에는 열 작품이 들어와도 마음을 움직이는 건 많지 않았다. 요즘 들어오는 작품 수는 줄었지만, 대부분 진심으로 고민할 만한 작품들이다. 그 부분은 감사하고 기쁘다. 작품을 선택한다는 것은 연기 이상이다. 가까운 미래에 누군가를 만나서 어떻게 보내느냐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차이나타운’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무엇인가.

“캐릭터를 준비하던 시기가 그랬다. 분장팀장과 이야기를 하면서 맨얼굴로 연기하면 어떨지 이야기를 나눴다. 맨얼굴이라는 게 조명을 해놓으면 오히려 말갛게 보일 때가 있다. ‘차이나타운’ 속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사무실에서 멋있게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위장한 사진관에서 중국음식을 배달해 먹으면서 일하는 사람이다. 정장을 입고 하이힐을 신고, 영양크림을 사다 바르진 않았을 거다. 여성의 몸으로 비정한 세계를 겪어냈다면 그것이 육안으로 느껴져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피부는 피폐하고 늘 피로에 찌들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생활이 아니기 때문에 삶의 처참함이 겉으로 드러나길 바랐다. 거칠고 압축된 인생을 살았으니까 겉으로 보기에 나이나 성별을 짐작할 수 없길 바랐다. 늘 만나는 중년 여성이 아니라, 정말 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눈빛이 마주치는 것만으로 위압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랐다. 실은 스포츠머리를 했으면 했다. 그 상태에서 새치가 아주 많은. 그런데 그때 샴푸 광고를 하고 있었다. 작품에 앞서 광고를 계약했고, 인쇄 광고를 찍어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이런 부분들을 분장팀장과 이야기하면서, 많은 부분 서로 맞아떨어졌고 내가 생각한 게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준희 감독과 세부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게 맞았구나’ 싶었다. 내가 틀렸다거나, 다른 방향으로 꺾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와 흥분을 느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신났던 건, 분장팀장이 반백의 짧은 남자가발을 들고 왔을 때다. 속으론 굉장히 좋았다. 갑자기 촬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두근두근했다.”

=몸에도 변화를 줬다. 실제 체중을 늘린 것은 아니지만 극중 퉁퉁한 몸매를 자랑한다.

“육안으로 봤을 때 불편해보이길 바랐다. 몸을 매우 불리거나, 완전히 말랐으면 했다. 연기를 좀 더 유연하게 할 수 있길 바라서였다. 둥근 몸이라면 고혈압과 고지혈증, 당뇨가 있는 여자이길 바랐다. 사람 좋아 보이는 풍채 좋은 몸이 아니라, 내적으로 손상된 망가진 몸이길 바랐다. 그렇게 기름진 음식에 술을 자주 먹으니까 통풍도 있을 것 같다. 분장팀장도 그런 이야기를 해줘서 좋았다. 사실 먹는 것에 비해 체중이 많이 늘지 않는다. 일을 할 때 조금 덜 먹어서 2~3kg 정도 감량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상태에서 더 빠지지도 않는다. 그 정도로는 화면에서 극적인 효과를 낼 수가 없겠다 싶었다. 내 딴에는 죽도록 감량한 몸이 ‘타짜’의 정마담이었다. 정마담도 보기 좋은 정도이지 말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을 못 빼겠다고 했더니 분장팀장이 분장을 이야기했다. 자연스러운 분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반신을 좀 더 키우려고 옷을 더 입었다. 보드 탈 때 입는 보호복을 껴입어 엉덩이가 커보이게 했다. ‘김혜수가 뚱뚱한 척하고 나왔네’가 아니라, 골반이 벌어져 완전히 퍼진 몸이길 바랐다. 할 수 있으면 처지는 팔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엄마가 많이 가리고 나왔다.(웃음)”


=극중 엄마는 외적으로뿐만 아니라 캐릭터 자체로 독특하다. 일영(김고은)에 대해 양면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다. 일영을 엄마에게 데려온 탁(조복래)이 일영을 두고 ‘사람이 아니라 짐승 새끼 한 마리’라고 한다. 엄마는 ‘탁이 너 인생 꼬이겠다’라고 하는데, 그 순간 직관한다. 자신의 후임이라고 생각한 거다. 엄마 역시 과거에 그랬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다. 이미 그 순간 엄마는 일영의 존재를 알아봤다고 해석했다. ‘일해야지’라고 할 때 쏭(이수경)은 두고 일영만 깨운다. 엄마는 일영을 보는 순간 선택을 하고 기다린 거다. 엄마는 자신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강제하고 통제하고 응징한다. 일영에게 특별한 애정을 표현한다는 게 그런 방식이다. 감정의 기조는 같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상식적인데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이 작품은 마음을 묵직하게 누르는 게 있다. 영화에서 ‘네가 얼마나 쓸모있는지 증명해봐’라고 한다. 시나리오 처음 봤을 때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쓸모의 유무를 누가 어떤 근거로 왜 판단하면서 살아야 하지’라고 생각했다. 각자 방식으로 열심히 사는 것뿐이다. ‘차이나타운’에서의 식구들은 버려진 인간들이 어떤 계기가 되서 가족을 이룬건데, 여기서 버티려면 필요한 인간이라는 걸 증명하라고 한다. 단순히 잔인한 것이 아니라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후반부 엄마와 일영이 대치한다. 엄마는 일영의 감정을 흔들어 놓은 석현(박보검)을 언급하면서 “뭐가 좋았니”라고 말한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대사 같다.

“두 사람의 관계가 그렇게까지 된 이유가 궁금했을 수 있다. 어쩌면 엄마와 딸이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대화인데, 그런 이상한 상황과 관계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거다. 관객들에게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일영의 마음이 왜 그랬는지 말해주는 계기이기도 하다. 생존만 위해 살아온 일영은 석현을 통해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친절함을 느꼈다. 엄마가 물어보지만 제대로 설명을 못한다. 단어도 모르는 거다. 입 밖으로 꺼내고 살아 본 적이 없었던 거다. 차이나타운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지 않았고, 너무 힘들고 무서운 일만 시켰다. 위협을 하러 간 남자가 처음으로 낯설지만 따뜻한 감정을 보여줬다. 태어나서 처음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에게 일영은 놀란 거다. 그게 참 슬프더라. 그것이 그들의 삶을 방증하는 대사였다. 답을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하는 대사였다. 촬영할 때 엄마가 담배를 피면서 웃는 얼굴이 있었다. 아마 후반 감정에 집중하느라 편집했지만, 그 얼굴이 있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김고은과 호흡을 맞췄다. 김고은과의 첫 만남은 어땠나.

“첫 느낌부터 ‘참 예쁘다’였다. 나는 그렇지 않아서, 오목조목한 얼굴이 참 귀엽다. 배우로서 좋은 자질을 많이 가지고 있고, 작품에 접근하는 태도가 좋다. 한준희 감독도 그렇고, 지켜볼 수 있는 귀한 배우와 감독을 얻은 것 같다. 두 사람의 나이 때, 나는 그렇게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마주하지 못했다. 배우로서 자의식이 다듬어지지 않았다. 특별한 일을 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 틈에 있는 게 그저 좋았다. 앞으로 많은 파도가 있겠지만,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는 거다.”
=충무로가 남성 중심으로 흘러간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차이나타운’은 오랜만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 중심 영화다. 어떤 사명감이나 그런 것들이 있었나.

“그렇지 않았다. 사명감을 가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여자 이야기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하고, 그런 이야기를 수용해야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여야 한다. 여배우로서 현실을 잘 알고 있지만, 누군가의 책임이나 희생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본질적으로 접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렇다. 영화는 상업적인 예술인데, 남자배우들이 했을 때 카타르시스가 더 크다는 것, 그것을 대중들이 원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를 개선하기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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