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노출 '봄' 한없이 아름답고, 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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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0. 오전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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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김수정 기자] 전라 노출, 누드모델과 조각가, 그리고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 영화 '봄'(조근현 감독, 스튜디오후크 제작)은 자극적인 소재로 이뤄진 작품이지만 그 속살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말갛고 아름답다.



'봄'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한국 최고의 조각가 준구(박용우), 그에게 끝까지 삶의 의지를 찾아주려던 아내 정숙(김서형), 가난과 폭력 아래 희망을 놓았다가 누드모델 제의를 받는 민경(이유영), 세 사람에게 찾아온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준구는 한때 최고의 조각가였지만 죽음을 앞두게 되자 예술과 삶에 대한 의지를 놓아버린다. 그런 그를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는 아내 정숙은 우연히 만난 민경을 남편의 누드모델로 제안하며 준구가 생의 의지를 되찾길 바란다. 준구는 정숙의 바람대로 민경과 조각 작업을 하며 삶, 예술에 대한 스위치를 켠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하루를 버텨내던 민경 역시 준구의 누드모델이 되며 얼굴에 핏기가 돌기 시작한다. 그런 두 사람을 믿고 지켜봐주는 정숙의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영화는 생애 가장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세 사람이 서로에게 인생의 '봄'이 돼주는 과정을 담백하게, 그러나 깊이 있게 그린다. 인물들의 팔딱거리는 생의 의지가 스크린을 뚫고 객석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누드모델과 조각가, 그의 아내라는 막장 드라마로 치닫기 딱 좋은 소재지만 영화는 결코 한눈팔지 않는다. 이유영의 전라노출 장면이 지속적으로 등장하지만 외설적이긴커녕 한없이 아름답고 더없이 순수하다. 영화는 치정극, 섹스, 하나못해 그 흔한 삼각관계 없이 오로지 예술과 인생에 대한 탁월한 성찰로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호연이 인상 깊다. 파격적인 전라노출을 감행한 이유영은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담담하게 민경 캐릭터를 소화했다. 처음 준구 앞에서 옷을 벗고 누드모델로 섰을 때의 생경함부터 인생의 봄을 맞이하며 점차 만개하는 생동감까지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준구의 예술혼을 자극하는 뮤즈로서의 모습이나, 한 아이의 엄마로서 지독하게 삶을 버텨내는 어머니의 얼굴까지. 이유영은 한 작품 안에서 폭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로 예사 신인이 아님을 증명해냈다.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밀라노영화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쥘만한 연기력이다.



한동안 지독한 악녀 이미지로 소비됐던 김서형 역시 배우 인생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남편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헌신적인 외유내강형 아내로 분한 그는 어깨에 힘 툭 뺀 연기로 자연스럽게 작품 안에 녹아들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김서형의 편안한 연기에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비워내고 또 비워낸 그의 연기는 마드리드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인정받기도 했다.



박용우 역시 몸짓, 손짓, 말투 하나까지 고독하고 예민한 예술가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조각가 준구가 민경을 만나게 되면서 희망과 감동,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연기로 승화시켰다. 특히, 민경과의 우정을 관객에게 설득시키는 쉽지 않은 작업을 특유의 묵직한 연기로 보기 좋게 해냈다.




배우들의 연기도 연기지만 한폭의 수채화 같은 미쟝센은 '봄'이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호평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이다. 조근현 감독은 미술감독 출신답게 1960년대 말 한국의 공기와 정서를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겨 담았다. 페인트가 덜 발린 느낌의 건물, 탁 트인 시골길, 그 위에 쏟아지는 밤하늘과 따사로운 자연광, 배우들의 몸 위에 차르륵 떨어지는 1960년대풍의 의상까지. 오랜만에 눈이 호사한다. 꼭 극장의 넓은 스크린으로 관람하길 추천한다.



'봄'은 산타바바라, 아리조나, 밀라노, 마드리드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작품상 4개, 촬영상 2개 등 총 8관왕을 석권했다. '26년'(12)의 조근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청소년관람불가, 102분, 11월 20일 개봉.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영화 '봄' 포스터 및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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