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김승현' 마르커스 힉스와의 마지막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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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8. 오전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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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서정환 기자] 김승현(36)과 마르커스 힉스(36)같은 콤비가 또 나올 수 있을까.


프로농구 최고의 '엔터테이너' 김승현이 지난 15일 코트를 떠났다. 김주성(35, 동부), 양동근(33, 모비스) 등 여러 번 우승을 차지한 선수는 많다. 하지만 누구도 김승현만큼 팬들을 열광시킨 선수는 없었다. 코트위에서 김승현은 동료들의 장점을 120% 끌어내는 선수였다. 특히 외국선수들과의 환상적인 조합은 농구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줬다.


김승현은 2001년 드래프트 전체 3순위로 혜성같이 등장했다. 당시만 해도 고려대출신 2순위 전형수가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승현은 데뷔시즌 12.2점, 8.0어시스트(1위), 3.2스틸(1위)로 신인상과 정규리그 MVP를 독식했다. 프로농구 역사상 아직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2001년 외국선수 트라이아웃에서 대구 오리온스는 전체 1순위로 마르커스 힉스를 뽑았다. 당시만 해도 힘과 덩치를 앞세운 ‘맥도웰형’ 외국선수가 대세였다. 강동희-클리프 리드, 이상민-조니 맥도웰, 주희정-아티머스 맥클래리처럼 국내 포인트가드와 외국 파워포워드 조합은 우승으로 가는 열쇠였다. 오리온스도 전통에 따라 김승현의 짝으로 힉스를 골랐다.


무지막지한 탄력을 앞세운 힉스는 KBL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특히 말도 안 되는 각도에서 패스를 척척 뽑아주는 김승현의 존재는 호랑이에게 날개를 단 격이었다. 힉스는 2001-2002시즌 평균 24.2점, 8.2리바운드, 3.7어시스트, 2.9블록슛으로 최고외인 반열에 올랐다. 특히 호쾌한 덩크슛과 블록슛은 프로농구에 새로운 재미를 선사했다. 김승현의 노룩패스가 힉스의 슬램덩크로 이어질 때 팬들은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오리온스는 챔피언결정전까지 승승장구했다. 김승현과 힉스에 김병철, 전희철, 라이언 페리맨이 주축이 된 오리온스는 서울 SK를 7차전에서 제압하고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 챔프전 평균 31.3점, 11리바운드, 4.1블록슛을 올린 힉스는 MVP로 선정됐다.


당시 오리온스의 농구는 전력도 좋았지만 볼거리가 풍성했다. 특히 김승현과 힉스의 '쇼타임'은 돈 주고 봐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리온스는 대구에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최근 고양으로 연고지를 옮겨 정착에 아직도 애를 먹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아쉬운 부분이다.


오리온스는 이듬해 정규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하지만 TG삼보와 만난 챔프전에서 결정적인 ‘잃어버린 15초’ 오심사건이 터지면서 우승의 꿈을 접어야 했다. 김승현과 힉스의 동거도 2시즌 만에 끝나고 말았다. 한국을 떠난 힉스는 베네수엘라, 프랑스를 전전하다 2006년 미국하부리그 WBA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김승현은 안드레 브라운, 아이라 클라크, 피트 마이클 등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하지만 힉스만큼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한 선수는 없었다. 신장제한이 없어진 KBL이 덩치만 큰 장신선수를 영입하면서 힉스같은 테크니션들은 자취를 감추게 됐다. 프로농구 인기가 시들해진 한 원인이다.

최근 프로농구는 틀에 박힌 패턴플레이와 강력한 수비가 대세다. 저득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현상이다. 10개 구단 모두 이기기 위해 색깔이 비슷한 농구를 하고 있다. 선수들도 창의적인 플레이를 찾아볼 수가 없다. 실수의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안전한 2점이 우선이다.


김승현은 “포인트가드는 실수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코트에서는 내가 왕이라는 생각으로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나와야 직성이 풀린다”는 나름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화려함을 독으로 생각하는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선입견을 보란 듯이 깨고 우승을 달성했다. 김승현이 유독 외국선수들과 호흡이 잘 맞았던 이유가 아닐까.


‘창의적인 농구를 하라’ 코트를 떠나는 김승현이 후배들에게 주는 마지막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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