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뷰] "은퇴가 왜 슬퍼야 하지?", 이상기의 은퇴가 행복할 수밖에 없던 이유

[Inter뷰] "은퇴가 왜 슬퍼야 하지?", 이상기의 은퇴가 행복할 수밖에 없던 이유

2018.02.25. 오전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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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풋볼=삼성로] 임재원 기자= "선수 유니폼을 벗지만 저는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아요. 오히려 기쁩니다. 왜 은퇴를 한다고 항상 슬퍼야 하나요?"

은퇴를 하는 순간 이렇게까지 긍정적일 수 있는 선수가 전 세계에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선수가 은퇴식에서 눈물을 쏟아내기 마련이다. 당연하게 연상되는 장면이다. 지난 선수생활에 대한 향수와 팬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앞으로의 막막함이 모두 감정으로 섞여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기는 그렇지 않았다.

서울 이랜드 FC는 24일 서울 삼성로에 위치한 SAC 아트홀에서 2018 시즌 출정식인 '퍼스트 터치' 행사를 가졌다. 인창수 신임 감독을 중심으로 선수단 및 코칭 스태프가 모두 참여했고, 200명에 가까운 팬들이 자리를 빛냈다.

이 행사의 백미는 2부였다. 서울E의 해피 바이러스였던 이상기의 은퇴식이 거행된 것이다. 구단 프런트가 팬들 몰래 준비한 깜짝 선물이었다. 이상기가 등장하자 팬들은 일제히 환호했고, 이상기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상기는 평소에도 팬들과 소통을 많이 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직접 블로그를 운영하고 각종 SNS를 통해 팬들과 대화를 서슴지 않게 이어간다. '주장' 김영광에 밀려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그가 김영광 못지않은 인기를 끄는 이유다.

겨우 만 30세. 이른 나이의 은퇴가 아쉬울 법도 하다.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상기는 달랐다. 오히려 이상기는 은퇴를 '행복함'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환한 미소로 은퇴식을 마무리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은퇴식이 모두 끝난 이후에 들을 수 있었다.

# 이유 하나: "팬이 있어 난 성공한 사람이에요"

-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하게 됐어요. 아쉽지는 않은가요?

사실 계약 기간도 남아 있는 상태였어요. 그러나 제게 너무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서둘러 은퇴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오히려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르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제 기준에서는 결코 아니거든요.

-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인 만큼 팬들이 많이 아쉬워했을 것 같은데요?

은퇴 기사가 간략하게 나갔을 때, 팬 분들께 연락이 많이 왔어요. 아직까지 팬들과 나도 실감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시즌이 시작돼야 내가 경기장에 없다는 것을 실감할 것 같습니다. 팬들이 먼저 아쉬운 표현을 많이 해주셨는데, 저는 절대 아니라고 말씀드려요. 오히려 긍정적인 부분이니까 많이 응원해달라고 요청하죠. 경기장에서 자주 뵙겠다고 했더니 다들 좋아해주셨어요.

- 성남을 시작으로 수원 삼성, 수원FC 등을 거쳐 서울 이랜드 FC까지 다양한 클럽을 거쳤어요. 그러면서 얻은 점도 많을 것 같아요.

팀마다 정체성과 색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어요. 선수로써 당연히 많은 경기에 뛰고 싶었고, 저만의 방식이 그런 것이었어요. 그런 경험들이 지금 일하는 것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어느 팀에는 어떻게 접근을 해야겠다는 것을 파악하는데 용이하더라고요. 좋은 효과로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 팬들과 가장 친한 선수로 유명해요. 당연한 부분이지만 실상은 어렵기 마련인데, 어떤 계기로 팬들에게 다가갔나요?

프로에 오자마자 그랬던 것은 아니에요. 어렸을 때부터 그런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았죠. 서울 이랜드 FC에 와서 많은 용기를 얻었어요. 그리고 팬들이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궁금해 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흔히 아이돌 가수들이나 연예인들에 대해 궁금해 하듯, 스포츠팬들은 선수들을 궁금해 하시더라고요. '아! 이것을 알려주면서 팬들과 가까워지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블로그를 시작했어요. 팬들에게 메시지가 오면 답변을 해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요. 그런 게 쌓이면서 팬들이 더 생겼고, 내가 아프거나 경기에 뛰지 못하더라도 응원을 많이 해주셨어요.

- 선수생활을 마치니까 난감한 질문 하나 할게요. '선수' 이상기는 성공한 사람인가요?

당연하죠. 제가 프로선수가 됐다고 성공했다는 것이 아니에요. 선수로서 첫 목표가 내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입는 것이었어요. 드래프트에 지명을 받아서 프로에 입단했고, 팬들에게도 괜찮은 선수라는 인식을 주게 됐어요. 국가대표급 선수도 아니었고, 많은 경기에 나선 것도 아니지만 팬들이 알만한 선수가 됐죠. 저를 알아본 팬이 있는데 당연히 제 선수생활은 성공한 것이죠. 저는 원하던 바를 모두 이룬 선수였습니다.

# 이유 둘: '공부하는 선수' 이상기, 확실한 비전이 있기에 서둘렀던 은퇴

- 선수 시절에도 꾸준히 공부를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요즘 '공부하는 선수'라는 분위기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지만 실상은 잘 되지 않고 있죠.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게 됐나요?

제가 성균관대학교 스포츠과학부 06학번이에요. 제가 대학을 다닐 때에도 학점은행제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경기를 못 뛰는 개념이 아니라 학점을 받지 못하면 등록금을 내야 했어요. 자연스럽게 공부를 접하게 됐죠. 그게 지금까지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수업에 들어가서 리포트를 제출하고, 경기가 끝난 후에는 경기에 대한 제 생각을 노트에 필기하기도 했어요. 메모, 책읽기는 쉬지 않고 편하게 취미 생활하듯 했죠.

프로에 와서도 이런 생각은 이어졌어요. 특히 자격증을 많이 따고 싶었어요. 은퇴 이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하고, 자격증도 많이 땄어요. 학회에서 상도 받았죠. 공부에 대한 욕심이 점점 커졌고, 대학원까지 들어가게 됐어요. 심리학을 주로 공부하고 있고 역학과 같은 다른 분야는 현장에서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건가요?

제 회사 이름이 'QMIT'에요. '현장의 문화를 질문, 기술, 정보 등을 통해 바꿔 보자!'라는 의미에서 시작했죠. 스포츠 과학을 상업적으로 방향으로 하면서도 우리만의 문화를 변화시키고자 해요. 우리나라 스포츠 과학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것이 바로 사회학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 구단들이 정치적인 성향을 안 드러낼 수가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감추려는 것에 급급하죠. 빨리 이것을 받아드리고 우리나라만의 스포츠 사이언스를 만들고자 했어요.

크게 세 가지 사업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IT사업이고, 두 번째는 영상 콘텐츠에요. 팬을 위한 콘텐츠, 선수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마지막은 선수들의 진로 지원이에요. 선수들의 미래를 컨설팅하고 교수님들과 함께 1년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흔히 선수들이 은퇴 후에 설정한 진로와는 다른 방향이에요.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인가요?

(웃으며) 세계 최초라고 말해주세요. 현장 출신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없어요. 지금 시기와 흐름에 빨리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직감이 머릿속을 관통했어요. 다른 사람들 눈에는 제 행동이 너무 조급하고 성급하게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저는 스스로 확신이 들었습니다.

- 이제 간편한 유니폼을 벗고 불편한 정장을 입었습니다. 제 2의 삶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인 목표는 즐기는 스포츠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에요. 흠을 잡을 수 있고, 비판할 수도 있으며 부정적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런 것조차 우리의 역사와 문화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과거에 많은 힘든 일이 있었고, 현대 사람들이 그것을 배우면서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저는 스포츠 역사에서 위기가 닥쳤을 때, 이상기라는 사람이 스포츠를 위해 많은 것을 기여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요.

- 아직 은퇴 후의 삶을 계획하지 못한 사람도 분명히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동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어요?

매년 4만 명의 운동선수들이 은퇴를 한다고 해요. 그리고 그 4만 명이 되기 위해 기다리는 10만 명 이상의 선수들이 있습니다. 숫자로만 봐도 엄청나죠? 안타까운 사실은 비자발적으로 은퇴를 한다는 것이에요. 자의든 타의든 간에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은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현실이 슬프죠. 저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낄낄 웃으며 은퇴하라고 전하고 싶어요. 제가 오늘 그랬잖아요? 저와 해외 사례를 많이 참고했으면 합니다.

사진= 서울 이랜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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